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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반값 알뜰폰 놔두고…보편요금 억지쓰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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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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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 모씨(47)는 매월 6만6000원씩 지출하던 무선통신비를 줄여보려고 한 달 전에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탔다. 과거에는 KT에서 음성·문자 무제한에 데이터 10GB(기가바이트)를 제공받았지만 계열사 알뜰폰 업체인 KT엠모바일로 갈아타면서 월 1만2100원에 음성 200분, 문자 200건, 데이터 2GB를 쓸 수 있게 됐다. 이씨는 "KT에서 제공하는 각종 멤버십 할인 혜택은 사라졌지만 보유 중인 신용카드 할인 혜택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회사와 집, 지하철에선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불편 없이 통신비를 크게 아낄 수 있어 주변에도 추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에 맞춰 정부가 월 2만원대 요금에 음성 200분·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우여곡절 끝에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과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무회의 등을 거쳐 올 상반기 중 국회에 법안을 이송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뿐만 아니라 실제 통신비 저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도 이씨 사례처럼 알뜰폰을 이용하면 정부가 약속한 보편요금제의 반값 수준으로도 얼마든지 무선통신비를 줄일 수 있는 상황이다.

알뜰폰 이용 고객은 이미 700만명을 넘었다. 상당수 이용자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통신비를 절약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나서서 일괄적으로 통신비용을 강제로 낮추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알뜰폰 업체들은 보편요금제보다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음성과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J헬로모바일은 24개월 약정하면 월 1만9635원에 음성 200분·데이터 1.5GB를 제공한다. 2만원대 요금을 내면 데이터를 10GB까지 주는 상품도 판매 중이다. U+알뜰모바일은 GS25편의점 등에서 가입할 경우 월 2만2000원에 음성 100분, 데이터를 10GB까지 준다. KT엠모바일도 월 2만7500원에 음성 100분·데이터 10GB를 준다.

통신비를 적게 내고 싶은 소비자로서는 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갈아탈 경우 동일한 음성과 데이터 제공량을 반값 이하에 쓸 수 있는 셈이다. 이들 알뜰폰 업체는 대기업이거나 통신사들 계열사여서 서비스 측면에서도 사용에 큰 불편함이 없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통신비를 깎아주겠다는데 반대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편요금제 도입과 함께 즉각적으로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통신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된 보편요금제 규제영향분석서에 따르면 보편요금제 도입에 따른 이통 3사의 직간접 매출 감소액은 연간 1조3581억원에 달한다. 의무제공사업자인 SK텔레콤이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KT와 LG유플러스도 유사 요금제를 내고, 상위 요금제에 연쇄효과를 미칠 것으로 가정한 결과다.

통신업계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통해 가격을 내리는 것 자체도 불만이지만 2년마다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을 과기정통부가 갖게 되는 것에 대해 더욱 우려하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추진 중인 보편요금제 안은 2년에 한 번씩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통신 협의체가 보편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과 요금 수준을 검토하는 의견 수렴을 거치게 돼 있다. 한마디로 협의체 회의 결과를 토대로 과기정통부 장관이 최종 요금을 결정하는 형식이다.

보편요금제가 통신사들의 여타 요금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면 통신비 책정 결정권을 사실상 정부가 갖게 되는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손익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정부에서 요금기준을 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되는 게 더 큰 걱정"이라며 "가격, 서비스 등을 통해 경쟁해야 하는 마당에 정부가 강제로 통신요금을 정하게 되면 기업 운영의 자율성이 현저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통신 3사의 매출과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이 같은 정책이 정작 알뜰폰 업계를 고사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1일 규제개혁위원회의 보편요금제 심사에 참고인으로 참석한 김도훈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네트워크 산업 특성상 보편요금제는 직접적으로 알뜰폰 시장을 침범해서 경쟁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격 인하 효과를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말자급제가 활성화되고 알뜰폰 활성화, 공공 와이파이 보급 등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경우 가계통신비 인하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라며 "훨씬 시장 친화적 대안이 있음에도 정부가 통신요금을 직접 정하겠다는 것은 공급 생태계를 교란하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손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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