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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 1년…노동자 일터 여전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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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충돌방지센서 도입·안전관리책 마련…노동계 "근본 대책 아냐"

전문가들 "안전 도외시하는 다단계 하청구조 등 우선 개선해야"

(거제=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가 발생한 지 오는 1일로 1년이 된다.

삼성중공업 참사는 사상자 규모 면에서 역대 최악의 크레인 사고로 기록됐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양대 노총 등이 꼽은 지난해 '최악의 살인기업'이라는 오명도 썼다.

사측은 사고 이후 안전대책을 잇따라 내놨지만, 노동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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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지난 10년간 크레인 충돌사고 7번…대책 안 세워 '인재' 지적

근로자의 날인 지난해 5월 1일 오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야드 내 7안벽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 크레인이 충돌했다.

타워 크레인 와이어와 붐대(지지대)는 골리앗 크레인 몸체에 부딪혀 끊어지거나 부러져 해양플랜트 구조물 위를 덮쳤다.

당시 구조물 위에는 인도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해양플랫폼 건조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출근한 노동자들이 몰려 있었다.

찰나의 사고는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25명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혔다.

역대 크레인 사고 중 최악의 피해였다. 피해자 모두는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당시 사고는 안전 수칙 미이행 등 현장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탓에 참사가 인재란 지적을 받았다.

검·경 수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관리·감독을 해야 할 안전관리자는 작업 현장을 벗어나 있었다.

골리앗 크레인 기사는 타워 크레인이 작업 중이라는 것을 알고도 신호수와 연락하지 않고 골리앗을 주행시켰다.

신호수들도 두 크레인의 작업 반경이 겹치지 않는지 살펴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 충돌사고가 7차례 발생한 전력을 감안하면 사측에서 그간 아무런 대책 없이 안전을 도외시해왔다는 비판이 나왔다.

삼성중공업 측은 사고 위험이 큰 크레인 작업 반경 안에 간이화장실을 설치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받았다.

경찰로부터 지난해 중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최근 삼성중공업 전 거제 조선소장 김 모(62) 씨 등 전·현직 임원과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 16명을 기소하고 9명은 기소유예, 1명은 무혐의 처분했다.

사고 이후 유일하게 구속됐던 골리앗 신호수 이 모(47) 씨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기소유예된 9명은 "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고 발생이나 피해를 키운 데 직접 또는 주요 원인이 됐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검찰은 30일 설명했다.

이밖에 안전 총괄 책임자였던 김 씨는 조선소 안전업무를 소홀히 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삼성중공업 법인도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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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작업조건·하청구조 바뀌지 않으면 사고위험 상존"

사고 이후 삼성중공업은 각종 안전대책을 내놨다.

오일메이저 사에서 35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안전전문가 피터 헤이워드를 지난해 9월 안전경영본부장으로 영입, 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 전반을 수행하도록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자체 개발한 위치·형상 기반 크레인 충돌 방지 센서를 크레인 8대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중공업은 오는 9월까지 성능 검증·안정화 작업을 거쳐 올해 안에 조선소 내 전체 옥외 크레인에 센서를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크레인 기사와 신호수에 대한 기술 교육 주기는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역량 강화 교육은 분기별로 진행한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이런 대책이 중대 재해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크레인 충돌 예방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대책이 빠져 재해 재발 우려가 여전하다고 노동계는 지적했다.

노동계는 다단계 하청, 무리한 공정 강행 등 조선업 노동 구조 개선에 원청 등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다단계 하청 구조는 안전보건관리에 사각지대를 발생시켜 재하도급 노동자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조선업 중대산업사고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조선업 사고 사망자는 324명이고, 사망자 80%인 258명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무리한 공정 진행 역시 적절한 업무량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혼재작업 금지 등 안전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혼재작업은 조선소 내에서 화기·도장작업 등 사고 위험이 있는 작업을 동시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지난해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현장에 있던 노동자는 사고 직후 "원래 혼재작업을 하면 안 되는데 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업 중대산업사고 국민참여 조사위원으로도 참여한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삼성중공업이 내놓은 대책은 크레인 충돌사고에만 국한돼 있고 산재 예방을 위한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멀어 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제2의 사고'를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크레인 사고만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유형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며 "현장 작업조건, 하청구조 등이 바뀌지 않는 한 사고 위험은 상존한다"고 덧붙였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고착화되다보니 상당수 노동자에 대한 안전을 총괄하는 기능이 없다"며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하고 원청은 사내 협력업체 대상 안전 지원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다단계 하청 구조가 문제라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의사소통 부재가 사고 원인이라고 판단한다"며 "회사에서는 5월 1일을 안전의 날로 지정해 작업장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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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삼성중공업 관계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k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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