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민주주의 위협하는 공룡 포털]②실검 조작·포털 뉴스 감시…박근혜 정부 ‘빅브러더’ 되려 했나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포털 장악 계획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인 2013년 8월 조윤선 장관이 있던 여성가족부는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여론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비밀문건을 만들었다. 제목은 ‘온라인 이슈에 대한 전략적 대응방안’. 문건 작성 시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에 댓글부대를 만들어 18대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직후였다.

원 전 국정원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 ‘댓글부대는 국내 여론 통제가 아니라 대북심리전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여가부는 새로운 형태의 댓글부대를 조직하고 있었다.

26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입수한 해당 문건은 첫 페이지에서 “주요 포털 검색 시 카페, 블로그 등에 루머 및 부정확한 사례가 노출되고 있는 반면 모니터링 전담인력 부족으로 신속한 대응이 곤란하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해결책으로는 취약시간대(평일 새벽 1~5시와 휴일)에도 온라인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인력을 충원하고 전문용역업체를 동원해 포털과 SNS 실시간 이슈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전문용역업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온라인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댓글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건은 부정적 게시물 대응 방법으로 △연관 검색어 내리기 △브랜드 검색어 노출(광고 개념) △실시간 검색어 내리기를 제시했다.

이 중 ‘실시간 검색어 내리기’의 경우 “루머 발생 시 실시간 검색어가 상위에 랭크될 경우 하위에 랭크된 키워드를 다수의 사람이 검색하여 루머 검색순위를 내리는 방법”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문건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할 경우 실시간 검색어로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비노출되는 장점이 있다”고 적었다.

단순히 포털 기사나 블로그에 올라온 글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눌러 추천순위를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포털 초기화면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까지 조작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문건은 이를 위해 중장기 과제로 민간 포털사 담당자, 기획홍보 대행사 SNS 담당자, 홍보자문위원 등으로 온라인소통팀을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

단기적으로는 외부 용역업체를 댓글부대로 활용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포털사 직원까지 끌어들일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외부 용역업체 활용 계획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여가부로부터 해당 문건을 전달받은 ㄱ사는 2013년 10~12월, 2014년, 2015년 3년 연속 온라인 홍보 대행사업자로 선정됐다. ㄱ사의 역할은 문건에 나온 그대로 ‘댓글부대’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었다.

여가부 용역에 투입됐던 ㄱ사 직원 ㄴ씨는 “온라인대변인실 직원이 포털에서 부처나 장관 이름 검색 시 마음이 안 드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수시로 전화나 문자, e메일로 작업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 지시가 내려오면 이미 확보한 파워블로거나 수백개 카페 아이디를 활용해 비판적인 콘텐츠를 초기화면에서 밀어내기 위한 작업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리고 결과를 휴대폰으로 찍어 전송했다”고 했다.

ㄴ씨는 2013년 11월 용역 수행기간 중 여가부 직원에게 받은 문자를 공개하기도 했다. “인포·웹툰 등은 하나도 진행 안 하나요.” “키워드나 검색광고 이런 것도 일정대로 안되는 것 같은데요.”

“(위안부) 할머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내용을 (장관님이) 포함하라고 하십니다.”

ㄱ사에 소속돼 여가부 ‘댓글부대’ 용역에 투입됐던 실무자들은 문체부(2012년), 특허청(2013~2015년), 산업부(2013년, 2015년)에서도 용역을 진행했다. 과업지시서나 결과보고서만 보면 통상적인 온라인 홍보용역을 수행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들은 수시로 ‘댓글부대원’ 같은 취급을 받아야 했다. 여가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3개 부처는 모두 “용역업체에 불법적인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3개 부처를 모두 돌아다니며 일한 용역업체 직원 ㄷ씨의 말은 달랐다.

ㄷ씨는 “부처마다 약간씩 차이는 났지만 정부에 비판적인 글은 가려달라고 하고 정부 홍보 게시물이나 유튜브 영상 등의 조회수를 올려달라거나 블로그 방문자를 매크로를 써서 올려달라는 요청이 수시로 있었다”고 했다. 그는 “비정상적인 지시가 상시 이뤄졌고 온라인대변인실 직원들이 돈도 안 주고 커피 심부름까지 시켜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일을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ㄱ사가 여가부에 시험적으로 제공한 1단계 ‘댓글부대’ 용역이 마무리될 무렵인 2013년 12월30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대해 여러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SNS 등을 통해 퍼져 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개혁의 근본 취지는 어디로 가버리고 국민의 혼란만 가중될 것입니다. 초기부터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온라인 여론을 유언비어로 규정하면서 신속한 선제적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문체부가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16년 1월부터 일명 ‘정책여론수렴시스템’의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작성한 내부자료에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해당 시스템의 도입 배경으로 기록했다. 이 시스템은 포털과 SNS의 여론동향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24시간 실시간 수집·분석하고 실시간 온라인 이슈를 전 부처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체부 내부 자료는 ‘2014년 2~7월 사업 기획’ ‘2015년 1~3월 관계부처 협의’ ‘2015년 5월 사업자 선정’ ‘2015년 6~12월 시스템 구축’ 등 단계별로 2년간의 시스템 준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 구축에 맞춰 2014년 7월 청와대에 뉴미디어비서관실이, 같은 해 11월 문체부에 뉴미디어홍보지원과가 신설됐다. 2015년 3월에는 문체부 국민소통실 내에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언론담당 차관보 자리가 만들어졌다. 초대 언론담당 차관보는 극우성향의 친정부 온라인 매체인 미디어펜의 이의춘 대표가 임명됐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문체부 내부에서도 드물다. 그는 임명 후 4개월간 무려 162건의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공식적으로 장차관에게 보고한 문서는 단 1건도 없다.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신문과 방송 장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 박근혜 정권이 2016년 총선 일정에 맞춰 포털과 SNS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빅브러더’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높였다고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문체부가 구축한 정책 여론 수렴 시스템이 수집·분석하는 하루 정보량은 포털 뉴스 2만5000~2만9000건, 커뮤니티 7000~9000건, 트위터 20만~25만건, 블로그 2000~3000건, 페이스북 800~1000건 정도로 제시돼 있다

강장묵 남서울대 빅데이터산업보안학과 교수는 “포털 뉴스 2만5000건 정도면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뉴스들이 수집·분석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시스템에 접속하면 현재 정권 차원에서 관심을 갖는 실시간 이슈, 주요 뉴스, 기사별 주요 댓글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실시간 급상승 키워드 자동알림 기능도 설정이 가능하다. 또한 긴박한 실시간 이슈가 발생하면 팝업창을 띄워 간단한 상황 설명과 함께 조치 결과를 정리해서 보고할 수도 있다.

민간 댓글부대원이나 용역업체 직원들이 시스템에만 연결돼 있으면 국정원이나 부처 공무원들로부터 일일이 작업 지시를 받을 필요도 없고 자동적으로 성과 체크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2013년 말 문체부가 정책 여론 수렴 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친정부 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 대거 네이버와 다음 뉴스 검색사로 등록됐다. 문체부 이의춘 전 차관보가 1억여원을 주고 인수한 미디어펜이 네이버에 등록된 것도 이때였다. 실제로 다음과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하면 이들 매체 기사가 주요 매체 기사보다 상단에 배치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또한 2014년 초부터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별관에서는 글로벌이코노믹이라는 신생 온라인 매체가 중소기업에 실시간으로 수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이해하기 어려운 용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10여명의 용역 참여자들이 KTL 별관에 별도의 서버를 가진 ‘짐스(GIMS)’라는 시스템에 기사를 올리면 글로벌이코노믹 홈페이지에 기사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실험을 반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당시 해당 용역에 참여했던 ㄹ씨(36)는 “기자를 뽑는다고 해서 갔더니 구글번역기를 돌려서 만든 기사를 짐스에 올리고 글로벌이코노믹 홈페이지에 기사가 뜨는지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ㄹ씨가 더 놀란 것은 비상식적인 용역에 KTL이 10억원 넘는 예산을 배정하고 해당 용역을 추진한 글로벌이코노믹이 2015년 네이버의 뉴스 검색사로 정식으로 등록된 일이다.

KTL 별관에서 용역팀이 ‘짐스’를 통해 올린 기사가 글로벌이코노믹을 통해 네이버에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글로벌이코노믹과 같은 온라인 매체들이 한꺼번에 짐스에 연결돼 있으면 KTL 별관 용역팀들이 만든 기사를 순식간에 포털에 노출시키고 실시간 검색순위도 바꿔놓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2013년 8월 여가부가 ‘온라인 이슈 대응 문건’을 만들 때만 해도 다수의 인력을 투입해 수공업적으로 이뤄지던 ‘댓글부대’ 용역이 모두 자동시스템을 통해 가능해진 셈이다.

강장묵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댓글부대에 비해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식으로 포털과 SNS 여론을 장악하려 했는지는 밝혀진 게 거의 없다”며 “빅데이터 기술 등을 이용해 새롭게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은 박근혜 정권 시절 댓글부대에 대해서도 좀 더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경향비즈 바로가기], 경향비즈 SNS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