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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friday] 내 쉴 곳 내 취향대로… 남자들의 '집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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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가구·조명 직접 골라 집 꾸미기… '멘즈테리어' 신조어도 등장

연립주택 거실을 전망 좋은 카페로, 한옥 다락방을 나만의 아지트로…

퇴근하면 재깍 집에 가고 싶죠

인테리어 매장 발품, 인터넷 검색 손품 팔아 집 꾸미기…

인증샷 인터넷에 올려 '랜선 집들이'

"저보다 더 잘 알아서 가끔 피곤해요(웃음). 얼마 전엔 신혼집 벽지랑 바닥재 고르러 갔다가 취향이 달라서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했어요. 브랜드나 상품명도 웬만한 여자들보다 잘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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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된 연립주택을 자신과 아내의 취향을 담아 꾸민 장인성 ‘우아한형제들’ 마케팅팀 이사의 집. 벽에 건 액자 하나, 낡은 멋의 거실 조명 모두 그가 골랐다. 아래 사진들은 장 이사의 취향을 반영한 거실 속 인테리어 제품들이다./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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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경기도 광명시 이케아 광명점에서 예비 신부 박혜나(30)씨가 예비 신랑 윤재상(35)씨와 함께 거실가구 코너에서 가구를 고르며 말했다. "이케아도 벌써 몇 번째 방문인지 몰라요. 요즘 주말마다 인테리어 전문 매장을 구경 다니고 있어요."

주방가구 코너에서 만난 이기영(45)씨는 아내보다 더 적극적으로 싱크대 조립에 대해 상담받고 있었다. 싱크대 실측부터 싱크볼, 수전 하나까지 직접 고르는 이씨 모습을 옆에서 아내 이정은(42)씨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케아 광명점의 한 직원은 "제품 살 때 거의 커플이 같이 온다"며 "혼자 매장에 오는 남자들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했다.

아내가 집을 꾸밀 때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던, 심하게는 집에 어떤 액자가 걸려있는지조차 관심 없던 남성들이 달라졌다. 살림의 영역에서도 단순 노동을 요하는 빨래나 설거지와 달리 미적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집 꾸미기' 분야에 지각 변동이 생겼다. 여자의 고유 영역처럼 여겨졌던 이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디자인이나 건축을 전공해본 적 없는 이들도 직접 가구를 고른다. 커튼, 조명 하나도 제대로 골라 집을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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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성 이사의 집 인테리어 엿보기.(좌측부터) 1. 거실장 밑에 숨어있는 스피커 / 2. 커피잔 모양의 조명은 독일의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 제품 / 3. 독서 공간의 조명은 책 모양 / 4. 빈티지 숍에서 건져 직접 고쳐 단 루이스 폴센 조명 / 5. 그가 좋아하는 술을 넣어둔 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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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도 집 꾸미는 남자들의 영향력이 커가고 있다. 인테리어 관련 블로그를 운영해 파워 블로거가 되고, '랜선 집들이'(온라인 인테리어 정보 공유 사이트에 집을 공개하는 것)로 인테리어 관련 질문 공세를 받는다. 취미는 인테리어 전문 잡지 보기. '찜'해 둔 소품을 '득템'하기 위해 몇 날 며칠 인터넷을 검색해 해외 직구(직접 구매)도 불사한다. 기성품 중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으면 공방에 다니며 직접 만들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최근엔 '멘즈테리어(mensterior·남성을 뜻하는 'men'과 인테리어 'interior'를 합친 말)'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1인 가구의 싱글남뿐 아니라 30~50대 가장들 사이에서도 집 꾸미기가 더는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인테리어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온라인 오픈 마켓 'G마켓'에 따르면 올 1월 1일~4월 22일 인테리어 관련 상품 남성 구매율은 '집방'(집 관련 방송) 유행 전인 2015년 동기 대비 75% 상승했다. 인테리어 관련 제품 구매 비중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50%로 같았다. DIY 가구, 매트리스, 소파, 식탁·밥상, 책상, 침대 중 특히 직접 조립하거나 만들어 쓰는 DIY 가구 비중이 61%로 여성보다 높았다.

남성의 인테리어 제품 구매 비중이 늘면서 인기 품목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진영 G마켓 리빙레저실장은 "이전엔 따스한 느낌의 파스텔톤 가구가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엔 회색이나 남색·밤색 등 중성적 색상의 가구 판매량이 늘었다"고 했다. 온라인 인테리어 DIY 전문 사이트 '손잡이닷컴'에서도 지난해 남성 회원이 전년 대비 2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사회적으로도 이슈인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변화됐다는 증거"라며 "집이 단순히 먹고 자는 생존의 공간이 아닌,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케렌시아(querencia·나만의 휴식 장소) 공간으로 주목받으면서 남성들도 자기 영역을 취향에 맞게 적극적으로 꾸미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7조원 규모에서 지난해 12조원으로 급성장한 홈퍼니싱(집을 뜻하는 'home'과 꾸민다는 의미의 'furnishing'을 합친 말)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집 꾸미는 남성들, 그들의 집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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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을 때 다락방은 꼭 만들고 싶었어요.”콘셉트 디렉터 김정훈‘컨셉추얼’이사의 한옥 다락방엔 책, 술, 아기자기한 소품 등 그의 취향으로 채워져 있다./양수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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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 집들이’하는 남자들

지난 13일 인테리어 정보 공유 인스타그램 ‘꿀하우스’엔 ‘수의학과 대학생의 꿈을 설계하는 공간’이란 제목의 오피스텔 사진이 올라왔다. 25㎡(7.5평) 정도의 신축 오피스텔을 싱글용 가구와 큼지막한 일러스트 액자, 피규어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집 사진엔 순식간에 2600여 개의 ‘좋아요’가 클릭됐다. 사진 속 집주인은 서울 광진구 능동에 사는 싱글남 이단(34)씨. “집 사진이 공개되고 나서 인스타그램 메시지 등으로 노하우와 제품 정보를 공유해 달라는 문의를 많이 받았어요. 메시지 보내온 사람 90%가 여자분들이었어요.”

디자인이나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그로선 인테리어로 주목받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이씨는 “잘 꾸몄는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상 공개된 인테리어 정보를 보며 안목이 업그레이드된 것만은 사실”이라며 웃었다.

꿀하우스 관계자는 “인터넷상 ‘랜선 집들이’가 유행하면서 사는 집을 꾸민 뒤 공개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며 “취향이 확실한 남성의 집일수록 댓글 반응이 더 좋다”고 전했다.

대전시에 사는 직장인 송병철(36)씨는 얼마 전 전셋집을 탈출해 아파트로 이사 가며 인테리어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한 달을 고민해 고른 조명이 도착하자마자 설치해 인증샷을 찍어 친구들과 실시간 공유했다. 이른바 ‘카톡 집들이’. 얼마 전 출산한 아내 대신 북유럽 인테리어 편집숍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센터’와 해외 인테리어 전문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팁을 얻어 자신만의 공간을 채워 나가고 있다. 아파트의 ‘알파룸’이라고 불리는 다목적 공간은 자신만의 서재로 꾸몄다. “집에 온전히 편히 쉴 공간이 생기니 퇴근하면 무조건 집으로 향하게 되더라고요. 여자들이 인테리어 소품 하나에 왜 목숨을 거는지 이제야 이해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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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파워 블로거‘김반장’김동현씨가 직접 인테리어한 그의 아내 카페‘화이트브릭’에서 액자를 걸고 있다(왼쪽). ‘알파룸’이라 불리는 아파트의 다목적 공간을 서재로 꾸민 송병철씨. 좋아하는 책과 농구화 등으로 장식한 책장을 둔 서재가 그에겐 ‘맨 케이브(man cave·‘남자의 동굴’즉 자신만의 공간)’인 셈이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송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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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할 땐 취향 우선

서울 종로구 40년 된 ‘옥인연립’에 사는 장인성(44) ‘우아한형제들’ 마케팅 이사는 집에 이름을 붙였다. ‘ㅇㅇㅇㄹ’. 옥인연립의 초성을 따 만든 이름. 동료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인테리어로 이름난 집이다. 5년 전 이사하며 전체 리모델링을 한 집은 곳곳에 취향이 숨어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용 계단, 천장의 등 하나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취향을 철저하게 반영해 연립 꼭대기 집을 새로 짓다시피 했다. 천장을 뜯어내 박공지붕 형태를 살렸고, 붙박이장도 사선 형태로 짜 천장과 이어지는 듯한 디테일을 살렸다.

가장 많은 공력을 기울인 공간은 거실이다. “거실은 오로지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꾸몄어요. 침실은 집에서 최소의 공간만 차지하고 있죠.” 발코니를 없앤 대신 평상 같기도 하고 다락방 같은 공간을 꾸몄다. 이태원의 소공연장 겸 음악감상실 ‘스트라디움’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확 트인 창 너머로 강북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이곳에 앉아 술 한잔 마시며 책 읽고 음악을 듣는다. 거실은 멋스러운 카페 같다. 무게감을 주는 1960~70년대풍 거실 가구는 아내가 골랐다. 그 주변을 채운 건 그의 취향이다. TV장을 열면 TV 대신 위스키 등 각종 술이 보관돼 있다. 각 잡고 있어야 할 스피커가 붙박이장 위에 누워 있거나 거실장 아래 숨어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장 줄리앙(Jean Jullien) 그림을 좋아해요. ‘나중에 집을 꾸밀 때 꼭 저 그림을 거실에 걸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이 집에 이사 오며 꿈을 실현했어요. 독일 산업디자이너 잉고 마우러(Ingo Maurer)가 디자인한 벽 조명도 나름대로 스토리를 담아 책상 위쪽 자리에 단 것이에요. 책상 위로 커피가 쏟아지는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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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성 ‘우아한형제들’ 마케팅팀 이사의 집 거실. 반듯반듯한 공간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박공지붕 천장 아래 붙박이장은 사선으로 짰다(왼쪽). 반려묘가 있는 김정훈 이사의 집 다락방 계단은 공간 박스 겸‘캣타워’로 만들어 수납률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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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중앙에 예사롭지 않은 자태로 매달린 낡은 듯한 루이스 폴센 ph5 펜던트 조명은 5년 전 홍대 부근 단골 빈티지 조명 가게에서 건진 것이다. “배송 과정에서 망가져 매장 구석에 방치돼 있던 걸 ‘착한’ 가격에 사 와 전선 작업을 다시 해 살려낸 거예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죠.” 장 이사는 “집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집 꾸미기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집을 옮긴다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의미하며 집을 꾸민다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가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경험을 위해 탐험하듯 이사하고 집을 꾸미는 사람도 있다. 컨셉 플래닝 회사 ‘컨셉추얼’의 콘셉트 디렉터 김정훈(45) 이사와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사는 서울 종로구 누하동 한옥은 ‘모든 취미가 집약된 시스템 한옥’이다. 묵직한 나무 대문을 열면 커다란 테이블이 놓인 마당 너머로 자전거가 설치미술품처럼 걸려 있다. 대들보와 창틀엔 다 마시고 난 위스키 병이 길게 줄 서 있다. 한눈에 봐도 자전거 마니아에 위스키를 즐기는 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다락방. 김 이사는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책, 위스키, 맥북, 틴케이스, 소품들이 박물관처럼 전시돼 있었다.

안방 천장 문을 열면 비밀 창고가 숨어 있다. 3단 접이형 ‘파크로’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면 수납공간이 펼쳐진다. 한옥 특성상 수납공간이 좁아 구석구석 수납 모듈을 만들었다. 김 이사는 “적당한 시기에 ‘리셋’하지 않으면 짐을 안고 살아가야 하니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이사를 한다”며 “다음 이사 갈 집은 마포구 광흥창에 있는 아파트인데 어떻게 꾸밀지 벌써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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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가 취미인 직장인 김동현씨가 꾸민 일산동구 카페 ‘화이트 브릭’(왼쪽). 전남 영암 서영봉씨 ‘컨테이너 집’을 장식한 일러스트 액자. 서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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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하다 책 내고 집도 지어

집을 꾸미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작업실이나 공방, 카페를 직접 꾸미기도 한다. 전남 영암에 사는 서영봉(33)씨는 컨테이너에 자신만의 공간을 꾸몄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하고 귀향해 대를 이어 축산 농가를 운영하다가 컨테이너 하나를 사 사무실 겸 자취방으로 쓰고 있다. 목수를 고용해 전체 구조를 짰고 타일 작업 등은 직접 했다. 무인양품 가구로 일본풍으로 꾸민 컨테이너는 ‘랜선 집들이’를 하며 유명해졌다. 컨테이너 인테리어에 자신감을 얻어 집짓기에도 도전 중이다.

블로거들 사이에서 ‘김반장’으로 통하는 ‘전셋집 인테리어’의 저자 김동현(42)씨는 한 달 전 일산동구에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 겸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화이트브릭’의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꾸미느라 문 열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김씨는 2008년 신혼집으로 들어간 전셋집 인테리어 체험기를 블로그에 올려 유명해졌다. 10년 동안 집 안 가구부터 아이 장난감까지 직접 만든 ‘셀프 인테리어 1세대’. “당시만 해도 여성스러운 취향의 프로방스풍 인테리어가 대세였어요. 남자가 인테리어 블로그를 운영하니 신기하다는 반응도 있었죠.” 김씨는 “셀프 인테리어는 남자들이 참여하면서 가벽 세우기, 욕실 타일 작업, 페인트 칠 등으로 작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소규모 공사에 버금가는 이런 작업들은 체력이 필요해 남자들의 취미에 가깝다”고 했다.

인테리어의 시작은 마음에 드는 TV장이 없어서였다. “샐러리맨으로 살다 보니 마음이 팍팍했어요. 그런데 하나씩 셀프 인테리어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결과물이 눈으로 보여 성취감도 느껴졌고요.” 그는 “10년 전만 해도 인테리어 정보도, 자재 판매하는 곳도 드물었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칙칙한 몰딩의 색상 하나 바꾸기만 해도 가족들의 표정이 바뀐다. 인테리어는 집에 대한 건전한 관심”이라고 했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남의 집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고, 클릭만 하면 해외 가구들을 집에서 받아 조립해 볼 수 있는 세상의 중심에서 남성들은 외친다. “참 집 꾸미기 좋은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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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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