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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무너지고 있는 英민주주의 전당… 5조원 들여 수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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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된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빅벤 멈추고 조각상도 부서져

각종 전선들 뒤엉킨 지하에선 10년간 크고작은 화재 60건 발생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산실(産室)인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22일 외벽에 설치된 석조 천사상(像)의 받침대 일부가 70m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아무도 안 맞았지만, 작년 10월 다른 돌 조각이 떨어졌을 땐 한 하원의원의 차량 앞 유리창이 박살 났다. 15분마다 울리는 빅벤(Big Ben)도 멈춘 지 오래다. 시계탑이 들어선 엘리자베스타워 내부 벽지가 곰팡이로 얼룩지고 시계의 안전성도 보장할 수 없어, 작년 8월부터 4년간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의사당 지붕은 곳곳이 녹슬고 뜯겨, 심한 날엔 건물 안에 빗물받이 양동이들을 갖다 놓는다.

조선일보

시계침 사라진 '런던 명물' 빅벤 - 지난 12일(현지 시각) 곳곳이 보수 공사 중인 영국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전경. 의사당에 설치된 시계탑 빅 벤(Big Ben)도 멈췄다. 19세기 중반 지어진 의사당은 지붕에서 물이 새고 화려하게 장식된 내부 벽과 로비에 균열이 가는 등 너무 낡아, 영국 의회는 지난 1월 최소 5조원이 드는 대규모 수리를 하기로 결의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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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군 공습도 견뎌냈던 이 건물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1834년 대화재 이후 약 30년에 걸쳐 새로 지었을 때에는 난방용 증기관(管)과 에어컨도 갖춘 당대 최고의 고딕 양식 건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유리 수만 장을 끼운 구리 창틀은 제대로 닫히지도 않아 에너지 효율은 엉망이다.

영국 언론은 진짜 심각한 것은 건물 지하라고 전한다. 1800년대 중반에 설치된 증기관과 환풍구를 따라 상하수도관·전기선·전화선·인터넷 케이블 등이 계속 덧붙여졌다. 2차대전 때 윈스턴 처칠 총리 시절 설치된 수㎞의 전화선이 여태 있지만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직 작동하는지 아는 이는 없다고 한다.

또 금이 간 증기관과 물 새는 상하수도관이 온갖 전선과 한데 모여 있어, 최근 10년간 크고 작은 화재가 60건 발생했다. 축구장 17개 면적의 의사당 건물 전체가 1100개의 방과 총길이 5㎞의 복도 중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현재 의사당 외벽 곳곳에 설치된 공사용 비계(飛階)는 그저 '성형수술'에 불과한 것이다.

2015년 정밀 진단 끝에 산출된 수리 비용은 최소 35억파운드(약 5조2700억원). 의원들은 긴축 재정 속에서 '자기들 직장은 그 엄청난 돈을 들여 고치느냐'는 시선을 의식해 계속 결정을 미뤘다. 하지만 1년 미룰 때마다 1억파운드의 수리비가 추가되자, 결국 지난 1월 말 대대적인 수리를 결의했다. 2025년쯤 상·하원이 6년간 각각 다른 건물로 이주한다는 것이다. 이주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의원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또 있다. 가디언은 "일부 의원은 다른 건물에서 새로 선출된 의원들이 좌석과 의사 진행, 발언 방식 등이 모두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하다 보면 의회 전통도 잊고, 결국 '골동품 가게' 같은 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을까 봐 걱정한다 "고 보도했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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