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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쉬쉬하는 환자안전 사고, 실태 파악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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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친절한기자들]

의료진 실수에서 빚어진 환자안전 사고

유형·횟수 등 실태 파악은 아직 ‘미흡’

복지부, 심각한 사고 의무보고 시행키로

의무보고 범위 및 시행기구 논란 남을듯



한겨레

지난해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는 신생아 4명이 잇달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환자안전법이 시행된 뒤 올해 2월까지 1년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전체 환자안전 사고에 관한 실태파악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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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행’을 미리 뿌리뽑았다면, 신생아 4명이 이대목동병원에서 잇따라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대목동병원 사고와 관련해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통해 “의료진이 주사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Citrobacter freundii) 감염이 일어나 패혈증으로 숨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주사제 한 병을 여러 용기에 나누는 등 주사제 준비 단계에서 위법한 관행들이 있었다”고 지적했고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의료진의 실수 등 여러 사유로 건강을 위협받는 경우를 ‘환자안전(patient safety)’ 사고라고 합니다. 1999년 미국 의학한림원(Institute of Medicine)은 “미국에서 의료 오류로 숨지는 환자가 해마다 4만4천명~9만8천명이며, 예방 가능한 사고로 미국 총 보건의료비의 절반을 넘는 수준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렇듯 환자안전 사고는 세계 각 나라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내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환자안전 사고는 한해 몇 건이나 일어날까요?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2010년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치료를 받다 ‘빈크리스틴’이라는 정맥주사가 척수로 잘못 주사되는 사고를 겪은 뒤 숨진 정종현(당시 9살)군 사건을 계기로 2016년 7월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이 시행됩니다. 비슷한 환자안전 사고 내용을 공유하고 학습해,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의료기관을 규제하는 법이라기보다는 비밀보장을 조건으로 환자안전 사고 정보를 서로 공유해 문제와 취약점을 찾고 이를 개선하자는 취지이다. 이대목동병원 사고도 다른 병원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데, 감염 관리만이 아니라 초기 조처·인력·인증 체계 등 복합적인 문제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환자안전법이 시행된 뒤 올해 2월까지 1년7개월 동안 보고된 환자안전 사고는 5562건에 그칩니다. 아직 환자안전 사고의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지요. 이상일 교수는 “활발하게 내부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병원의 경우, 한달에 천 건 가량의 안전사고가 보고된다. 이러한 수치에 비춰볼 때 아직 보고 활성화가 안된 상태이다. 또, 보고된 사건을 통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고쳐나가야 하는데 이 부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26일 제1차 환자안전 종합계획(2018~2022)을 내놓았습니다. 환자안전사고 자율 보고를 활성화시키면서도 법 개정을 통해 ‘중대한 사고’에 대한 의무보고를 시행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의무보고 대상이 되는 ‘중대한 사고’가 무엇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사고 접수·관리 등 실무를 맡고 있는 ‘환자안전본부’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설치돼있는데요. 복지부는 법 개정을 통해 인증원 산하 조직인 환자안전본부를 국가환자안전본부로 확대·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한국병원협회를 중심으로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등이 꾸린 재단법인입니다. 이러한 기구가 환자권익 보호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환자안전 사고 실태파악은 필요하지만,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려고 또다른 기구를 만들 필요는 없다. 기존 질병관리본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현재 한국 환자 안전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건 간호사 인력부족 문제이지만 이에 대한 조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환자안전 사고가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을 텐데 이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 이라며 “수익성 추구하는 병원 운영에 대한 시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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