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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갑질 대신 최전방 자원한 부자집 청년 부시, 전쟁만 나면 참전한 정치명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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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치명문 부시가, 전쟁만 나면 참전

17일 별세 전 미국 영부인 바버라 부시

남편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전쟁영웅

2차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미 대통령

항모 뇌격기 조종사로 일본 군함 공격

추락해 바다 표류하다 잠수함에 구조

시아버지, 예일대 졸업 뒤 1차대전 참전

서부전선 최전방 포병과 정보 부대 근무

베트남전 세대 아들 조지 W 부시는 주방위군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중앙일보

고교 졸업 직후 미 해군에 입대해 항공모함의 뇌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1944년 무렵의 조지 HW 부시의 모습.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사립 교고를 졸업하고 예일대 입학허가서를 받아놓은 상태에서 가장 치열한 전선에서 군 복무를 하며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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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바버라 부시(1925~2018) 전 영부인이 지난 4월 17일 세상을 떠나면서 부시 가문에 관심이 쏠린다. 부군인 조지 HW 부시(93)와 장남인 조지 W 부시(71)를 각각 미국의 41대와 43대 대통령이 되도록 도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차남인 젭 부시(65)는 플로리다주 주지사를 지냈다.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그야말로 미국을 대표하는 공화당 정치 명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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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전 영부인 바버라 부부의 2012년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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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부시 가문의 정치적 성공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이 가문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노력을 했고, 어떻게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는지는 비교적 덜 알려졌다. 부시의 화려한 경력과 함께 그 바탕이 된 그의 헌신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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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별세한 바버라 부시 전 미국 영부인(왼쪽)이 생전에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한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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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의 경력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1924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 명문사립고교인 필립스 아카데미를 마치고 군 복무 뒤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 뒤 전 가족이 텍사스로 이주해 석유사업을 벌이자 정계에 입문해 1967~1971년 텍사스주를 지역구로 연방하원의원을 지냈다. 그 뒤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1971~1973년 주유엔 대사를 지냈으며 1973~1974년에는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1974~1975년에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행정부에서 주중 대사를 지냈고 이어 1976~1977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았다. 여세를 몰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해 1981~1989년 자리를 지켰다. 마침내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41대 대통령(1989~1993)을 지냈다.

여기까지는 부시의 화려한 성공 이력서다. 그 뒤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섰던 청년 부시의 패기와 희생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부시는 1941년 12월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당시 필립스 고교 학생이었다. 그 뒤 6개월이 지난 1942년 봄 필립스 고교를 졸업한 그는 그 직후 미 해군에 입대했다. 예일대에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미국의 필립스 고교나 영국의 이튼, 해로, 덜리치 등 명문 사립고교에서는 대부분 여유 있는 집안 출신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너희는 좋은 집안에 태어나 혜택을 받고 성장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명문 고교에 들어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최선을 다하며 남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히 국민과 국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출신들은 1,2차 세계대전에서 숱한 희생을 치렀다. 미국의 필리스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다. 청년 부시는 그렇게 해서 기꺼이 군에 입대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부시는 2차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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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 최고 정치 명문가 부시 가문을 움직였던 안주인 바버라 부시는 친화력과 유머 감각과 함께 겸손한 태도로 이름 높았다. 통찰력 있고 지혜로운 인물로 미국민의 기억에 남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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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미 해군 항공모함의 뇌격기(어뢰를 투하해 적의 군함을 공격하는 폭격기) 조종사로서 태평양 전선 최전방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는 당시 미 해군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 중 하나였다.

특히 1944년 9월에는 자신이 몰던 뇌격기가 일본 남쪽 오가사하라 제도 인근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해상에 추락하는 사고까지 당했다. 낙하산으로 간신히 탈출해 해상에 4시간 동안 표류하다 마침 인근에 있던 미 해군 잠수함에 구출됐다. 그는 당시 입은 부상으로 전상자들이 받는 퍼플하트 훈장 수훈자가 됐다. 1945년 중위로 명예 전역했다.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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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뇌격기 조종사로 작전 중 격추돼 해상에 표류하다 미 해군 잠수함에 구조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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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웅이 된 부시의 군사 경력은 부시 집안 분위기에선 그리 특별하지도 않다. 부시의 아버지이자 바버라 부시의 시아버지인 프레스컷 부시(1895~1972)는 예일대를 졸업한 뒤 1917년 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프랑스에 파병돼 서부전선에서 근무하면서 전방 포병 장교와 후방 정보 요원 교육 담당을 번갈아가며 맡았다. 1919년 대위로 전역한 뒤 기업과 은행에서 일하다 정계에 뛰어들었다. 1952~1963년 코네티컷주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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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 아버지 프레스컷의 묘비명. 특출한 지도자, 육상인, 군인, 은행가. 정치인, 교회인, 동료, 친구, 아버지 남편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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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조지 W 부시는 베트남전 기간에 베트남엔 가지 않았지만 텍사스주 방위군 공군 조종사로 근무했다. 차남 젭은 신체검사를 받고 대기하다 1971년 징병제가 폐지되며 입영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부시 가문 소속원들은 선대에서 쌓은 재산 덕분에 부와 명예, 교육의 기회를 대물림했다. 이들은 이에 상응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도 함께 물려받았다. 부시 가문 사람들이 전쟁만 나면 군대에 달려간 이유다. 부와 명예, 기회를 가진 자는 이를 얻게 해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의무도 함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 모든 혜택이 사회에서 잠시 위탁한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비인륜적이고 비인권적인 ‘갑질 파문’이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지금 더욱 생각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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