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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한강 작가 “소설 ‘흰’…고독과 고요·용기 불어넣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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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강 작가(48)의 2016년 발표작 <흰>(난다)이 올해 영국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라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한강 작가는 <흰>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덧붙인 ‘작가의 말’에서 “고독과 고요, 그리고 용기. 이 책이 나에게 숨처럼 불어넣어준 것은 그것들이었다. 나의 삶을 감히 언니-아기-그녀에게 빌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생명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야 했다”고 밝혔다.

<흰>은 소설이면서 시 성격도 지닌 작품이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달, 쌀, 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을 묶었다.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 작가의 친언니였던 아기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작가는 첫 출간 때 ‘작가의 말’을 붙이지 않았다가 2년 만에 나온 개정판에 새로 썼다. “이 책의 끝에 붙일 ‘작가의 말’을 쓰겠느냐고 편집자가 물었던 2016년 사월에,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 책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이 년이 지나 개정판을 준비하며, 비로소 어떤 말을 조용히 덧붙여 쓰고 싶다는―쓸 수 있겠다는―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에는 자신의 소설을 번역한 폴란드 번역가의 초청으로 전작 <소년이 온다> 출간 뒤인 2014년 8월 말 열네 살 아들과 함께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난 이야기, 아이가 한 학기 학교를 다니는 동안 도시 곳곳을 틈 날 때마다 산책하며 <흰>의 내용을 구상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바르샤바 항쟁 박물관을 보러 갔다가 부설극장에서 1945년 미국 공군기가 촬영한 그 도시의 영상을 본다. 당시 독일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돼 ‘흰’ 도시 모습을 보며 “그 도시의 운명을 닮은, 파괴되었으나 끈질기게 재건된 사람을. 그이가 내 언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 그 책의 시작은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의 기억이어야 할 거라고, 그렇게 걷던 어느 날 생각했다. 스물 네 살의 어머니는 혼자서 갑작스럽게 아기를 낳았고, 그 여자아이가 숨을 거두기까지 두 시간 동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계속해서 속삭였다고 했다.”

누군가 “당신이 어릴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고 물을 때마다 작가는 언니의 죽음을 떠올린다고 했다. 작가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79)는 최근 자신의 산문집을 소개하는 간담회 자리에서 “(첫 아이가) 팔삭둥이인데 요즘 같으면 인큐베이터에서 살았을 텐데, 24시간 울다가 죽었다. 가난한 시절이라서…. 마나님이 죽지 마라 죽지 마라 그랬는데….(한)강이는 그 아이가 성장했으면 자신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도 하고 있는 것 같더라. <흰>은 눈물겹고 슬픈 일, 신화적인 이야기를 다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에선 작가가 이 작품 출간을 앞두고 ‘흰’을 주제로 행한 퍼포먼스 사진을 새로 담았다. 이 퍼포먼스는 죽은 언니-아기를 위한 옷을 만들고(‘배내옷’), 다하지 못한 말을 가두는(‘밀봉’) 행위를 표현한 것이다. 출판사 측은 “작가의 고요하고 느린 퍼포먼스들은 최진혁 작가가 제작한 영상 속에서 그녀의 언니-아기를 위한 행위들을 ‘언어 없는 언어’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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