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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렇게 절절하고 사무치는 요리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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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래 에세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출간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인문학 저술가 강창래 씨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이 전부였다. 같은 분야에 몸담은 아내가 수년 전 큰 병을 얻으면서 강 씨는 자연히 부엌을 맡게 됐다. 부엌일은 낯설고 막막했다. 며칠 전 한 음식인데도 다시 만들려고 하면 재료와 순서가 생각나질 않았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감각과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페이스북에 간단한 요리 메모를 올리길 시작했다.

신간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루페 펴냄)는 짧게는 몇 줄, 길게는 여러 장에 걸친 부엌 일기를 모은 책이다. 남편은 부지런히 콩나물을 무치고 나가사끼 짬뽕을 만들고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을 굽고 망고주스를 짠다. 탕수육, 해물 누룽지탕 같은 고난도 요리에도 도전한다.

"통밀가루 입힌 전감을 달걀 푼 그릇에 넣고 달걀을 잘 입힌다.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조금 두르고 뜨거워지면 전감을 올린다." "전날 밤에 돼지 등뼈를 찬물에 담가둔다. 아침에 일어나 그 물은 버리고 등뼈는 찜통에 넣고 끓인다."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글은 간결하다. 어떻게든 독자 식욕을 자극해 보겠다는 욕구로 똘똘 뭉친 미사여구도 없다.

그런데도 글에는 잔잔한 슬픔이 스며 있다. 책에 등장하는 출판편집자 말처럼 "절절하고 사무치는" 요리책이다. 아내가 한 숟갈이라도 뜨는 순간을 위해 온 마음을 담아 밥상을 차리는 남편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음식과 요리를 매개로 한 단상도 구구절절 마음에 와 박힌다. 맛있는 음식은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좋은 식사는 '다른 생명을 적게 약탈하는' 소식일지 모른다. "세상에, 너무 맛있어!"라는 상대 말 한마디가 지친 몸을 풀어주는 법이다. 설날 떡국을 끓이던 저자는 "그리움만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그리던 얼굴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되뇐다.

점점 기력과 입맛을 잃어가던 아내는 나중에 남편이 만든 음식만 겨우 먹었다. 저자는 그런 아내를 결국 떠나 보냈다. 작가가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여" 곱씹으면 더 좋을 책이다.

248쪽. 1만3천800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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