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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No work, No pay… 뭐라도 해야 복지수당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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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접기로

최근 조건부 복지 법안 통과, 직업훈련 받거나 일해야 혜택

美·캐나다 일부 州 아직 실험중

지난해 1월 국가 차원으로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던 핀란드가 더 이상 실험을 확대하지 않고 끝내기로 했다. 국가가 개인에게 조건 없이 '공돈'을 주는 실험은 사실상 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핀란드의 실험엔 시행 초기부터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섰다. 찬성론자는 최소한 먹고살게는 해 줘야 실업자가 제대로 된 좋은 일자리를 찾는 욕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엔 세금으로 놀고먹는 베짱이를 대거 양산할 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기본소득 신중파의 우려가 틀리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기존 실업수당 제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핀란드에선 실업자들이 허드렛일자리라도 찾으면 실업수당이 대폭 깎인다.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할 유인이 별로 없어 장기 실업자가 양산됐다. 일자리를 찾아도 기본소득을 뺏지 않으면, 실업수당이 줄어들까 봐 구직 활동을 포기했던 실업자들이 일용직으로라도 일할 것이라고 핀란드 정부는 기대했다. 기존엔 실업·육아·질병 등 각종 복지 수당 심사·지급 과정에 과도한 행정 비용이 들었는데, 기본소득으로 한 방에 지급하면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하지만 시범 사업을 더이상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제에 회의적인 판단을 내렸으며, "실험은 실패했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기본소득 시범 사업을 주관한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 올리 캉가스 수석연구위원은 "(기본소득에 대한) 정부 의지가 사라졌다"고 BBC에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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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정부는 시범 사업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정확한 이유를 아직 밝히지 않았다. 시범 사업의 공식 평가 결과는 2019년 말 공개된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가 '조건 없는 복지'에서 '조건부 복지'로 노선을 변경한다는 신호는 지난해 말부터 나왔다. 지난해 12월 실업자가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3개월 동안 최소 18시간 이상의 직업 훈련을 받거나 일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된 것이 대표적이다.

외부 평가도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3월 핀란드가 기본소득제를 국가 전체적으로 확대하려면 소득세를 기존보다 30% 높여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핀란드 시민들도 '증세'에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지난해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소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0%가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높은) 소득세를 증세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는 찬성 응답이 35%로 떨어졌다. 기본소득제를 검토했던 다른 나라에서도 재원(財源)이 역시 문제였다. 2016년 스위스에서는 성인 한 사람에게 매월 2500스위스프랑(약 275만원)을 주는 내용의 기본소득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비율이 77%에 달해, 압도적으로 부결됐다. 대다수 국민은 재정 부담이 커지고, 기존 복지제도가 축소되고, 이민자가 급증할 것을 우려했다.

핀란드가 기본소득 시범 사업을 중단하면, 기본소득제를 국가 단위로 시행하는 곳은 없다. 인도 정부가 기본소득제 도입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앞으로 기본소득제가 꾸준히 실험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등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시대적 흐름상, 대규모 실업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기본소득'밖에 없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올리 캉가스 KELA 수석연구위원은 "(기본소득 시범 사업 기간) 2년은 결론을 내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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