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인프라, 생산기반 없으면
언제든지 한국 시장 떠날 수 있어
“10년 이상 체류” 요구하기 이전에
수소·전기차 관련 청사진 제시해야
김도년 산업부 기자 |
최근 ‘한국GM 사태’를 취재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나라는 독일이다. 미국 GM에게 한국은 ‘떠나고 싶은 나라’일 테지만, 독일은 해외 자동차 기업이 ‘떠날 수 없는 나라’가 돼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 등이 한국GM에 대한 5000억원 규모 신규 투자 조건으로 “10년 이상 한국에서 체류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을까. 노조와 정치권은 ‘먹튀 자본’이란 딱지를 붙이고, 정부는 좀 더 오래 머물러 주길 강제하려는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독일과는 다른 이유로 한국은 해외 자동차 회사들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
GM이 한국에서 계속 일자리를 유지하고 사업을 할 수 있게 할 방안을 찾다 보면 결국 한국 자동차 산업 전반을 혁신해야 한다는 숙제와 마주하게 된다. 수출 기업인 한국GM이 한국에서 사업하기 어렵다면, 같은 수출 기업인 현대·기아차 등 다른 국내 완성차 기업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린카·스마트카 등 미래형 자동차로 방향을 정한 GM이 한국 시장을 떠나려는 것은 결국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시장으로서 한국이 매력적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세계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GM이 이를 좀 더 빨리 보여준 것뿐이다.
이런 이유로 ‘GM 사태’를 그저 일자리 대란을 가까스로 넘긴 사건으로만 봐선 안 되고, 한국 자동차 산업을 혁신할 절호의 기회로 봐야 한다. 정부가 GM에 10년 이상 머무르라고 억압 조로 얘기하기보다는, 언제까지나 머물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면 된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현재 친환경·자율주행 차로의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그 속에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상황이 앞으로 10년은 더 진행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이 핵심 경쟁력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대기업으로 성장한 자동차 제조사들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해외 자동차 기업이 인건비 부담이 만만찮은 한국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을 하는 것은 질 좋은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사가 많은 까닭도 있다. 이들 협력사가 미래 차 부품 생산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또 수소차·전기차 충전소와 자율주행 차 전용 무선 통신 인프라를 전국적으로 갖추고 이에 기반을 둔 서비스가 등장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다. 이번 GM 사태가 불편한 기억이 될지,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김도년 산업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