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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미세먼지 분석은 코끼리 여기저기 만져 ‘코끼리 맞다’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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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측정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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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였던 지난 20일에도 미세먼지 농도는 전국이 ‘나쁨’이었다. 뿌연 공기를 뚫고 북한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을 따라 서울지하철 불광역 2번 출구를 나오자 아파트단지에 둘러싸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보였다. 이 건물 6층에선 국립환경과학원의 수도권대기오염집중측정소 연구원들이 대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먼지를 채집해 분석하고 있다.

옥상에 솟은 정체불명 기둥에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도


쿵덕쿵덕, 이이이잉….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분석실에 들어서자 고추 빻고 기름 짜는, 방앗간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책상들 위에 20개 남짓한 분석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장비마다 기다란 금속관이 눈에 띄었다. 천장을 뚫고 옥상으로 연결된 관으로 미세먼지를 모은다. 분석실을 가득 채운 소음은 먼지를 빨아들이기 위해 펌프질을 하는 소리라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아래층과 이어진 2m 높이의 기둥이 가로등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기둥 위쪽 흡입기로 입자가 빨려들어와 관을 따라 내려간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옥상에 솟아 있는 정체불명의 기둥들을 보고 청사에 민원을 넣은 적도 있다고 한다.

■ ‘코끼리 다리 더듬기’

“코끼리의 여기저기를 더듬어 ‘이게 코끼리가 맞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신혜정 측정소장의 말이다. 하늘과 바람은 결정적인 ‘스모킹건’을 남기지 않는다. 미세먼지를 모아 분석하려면 다양한 간접증거들을 끌어모아 종합적으로 추론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전국 6개 권역에 집중측정소

초미세 분석기계 7억원 달해


‘증거물’은 방대한 곳에서 수집한다. 서울, 백령도, 대전, 광주, 울산, 제주의 6개 권역에 측정소들이 있다. 내년에는 강원, 경기 남부, 충청 남부 3곳에도 생긴다. 이 측정소들은 미세먼지의 농도와 성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쌓고 있다. 물통이 달린 장비로는 물에 녹는 성분을 분석하고, 롤링페이퍼에 한 시간마다 1㎝ 크기의 먼지 점이 찍히는 장비로는 PM10(입자 지름 10㎛ 이하) 미세먼지를 분석한다. PM1의 초미세먼지를 분석하는 기계는 7억원에 이른다.

컴퓨터를 이용해 매 시간 성분별 정보들을 수치로 변환하면 도시 지역 미세먼지 입자에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디서 배출됐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올해 하반기에는 국외에서 화학사고가 일어났을 때 유입되는 유해한 휘발성 물질들을 측정하는 장비를 새로 도입할 계획이다.

전국 300여곳에는 무인 도시대기측정망이 구축돼 있다. 미세먼지, 오존 등 5가지 물질을 시간마다 측정한다. 에어코리아 웹사이트(airkorea.or.kr)를 통해 시민들도 실시간 대기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대기 중에 떠도는 고체나 액체의 미세한 입자를 에어로졸이라 부른다. 지구 밖 인공위성은 대기 중의 에어로졸을 측정한다. 구름이 많이 끼어 위성 측정이 어려울 때에는 라이다(LIDAR)를 이용한다. 지상에서 빛을 쏘아올려 산란되는 정도를 살펴보는 장비다.

습도, 온도, 풍속 같은 기상정보와 중국·일본 등 국외 자료도 미세먼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하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인천 서구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질통합예보센터에 모인다. 시료를 모으고 분석한 데이터가 ‘붓질’이라면, 대기질센터는 붓질을 합쳐 ‘그림’을 그리는 곳이다. 기상정보나 기류를 살펴 대략적인 예측을 하면, 관측을 통해 얻은 자료로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다. 측정소를 떠나 센터로 이동하면서 신 소장에게 미세먼지를 줄이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신 소장이 답했다. “원인이 있다면 해결책도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한반도만 한 미세먼지 덩어리

“저기 서해를 덮은 띠 좀 보세요. 중국 연안에서 한국까지 1000㎞ 정도이니까, 한반도만 한 미세먼지가 이동하고 있는 거죠.” 장임석 대기질통합예보센터장이 상황실에서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지난달 22~27일의 대기 흐름을 보여주며 말했다. 하늘색으로 보이는 굵은 띠가 이동하는 모습이 시간대별로 화면에 나타났다. 다른 화면을 띄우자 중국 상공의 붉은색 영역이 서해안으로 번져오는 모습이 보였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지난 1월15~18일과 3월22~27일의 고농도 미세먼지(PM2.5) 원인을 분석해 최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외 기여율’이 1월15일 57%로 시작해 17~18일에는 38%까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3월에는 22~24일 국외 기여율이 58~69%였다가 25~27일에는 32~51%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짙은 미세먼지의 원인 중 중국 등 국외 요인과 국내 요인의 비중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는 뜻이다.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과 소셜미디어에도 한바탕 ‘먼지 폭풍’이 몰아쳤다. 중국이 미세먼지 주범인데 왜 국내 요인을 탓하냐는 비난이 많았다.

하지만 미세먼지 원인을 분석한 이재범 연구관의 설명은 달랐다.

“봄철 미세먼지의 중국과 한국 기여율은 6 대 4 정도이며, 기간별로 분석해보면 한국 기여율이 결코 적지 않다”고 했다. 지난달의 고농도 미세먼지는 이 연구관과 수도권집중측정소의 신 소장, 환경위성센터의 윤종민 연구관이 함께 분석했다. 하늘과 땅의 자료를 취합해 컴퓨터 모델링을 거쳐 내놓은 결과다.

바람과 먼지를 어떻게 컴퓨터에 담을까. 최근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된 ‘코딩’이 쓰인다.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수학적으로 표현한 미분방정식이나 대기화학반응 모델을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해 넣는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모델의 뼈대가 만들어지면, 여러 관측 수치들을 집어넣어 모의 산출을 한다. 가스 배출량을 집어넣어 농도가 얼마나 짙어지는지도 계산한다. 최종 결과가 화면에 나타나는 시각화된 그림이다.

■ 북극이 따뜻해지면 짙어지는 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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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기여율’을 추정하는 작업은 더욱 복잡하다. 첫 단계는 기상학적 분석이다.

지난달 22일 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졌다. 당시 바람이 중국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북서풍이 불었던 이날 백령도의 미세먼지 농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이런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중국발 미세먼지 유입’을 추론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미세먼지 측정자료를 통해 성분을 살펴본다. 황산염은 대부분 중국에서 온다. 미세먼지 중 황산염 비중이 10%였다가 50%로 치솟았다면 늘어난 40%포인트는 국외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국내외 기여율을 따진다.

센터에 찾아간 20일에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지만 이재범 연구관은 “오늘은 국외 영향이 크지 않다”고 했다. “중국 영향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미세먼지가 심해질 수 있는 거죠.” 먼지는 고체이지만,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질소나 이산화황은 기체다. 이 기체들이 대기 중에서 화학반응을 거치면 황산염, 질산염 같은 고체로 변한다. 우리가 미세먼지라고 부르는 물질로 변하는 이 과정을 미세먼지의 ‘2차 생성’이라 부른다.

기후변화로 바람 약해져서

미세먼지 실린 대기 정체돼


2차 생성으로 미세먼지가 얼마나 만들어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다르다. 중국의 짙은 미세먼지가 모두 한국으로 흘러오지는 않는다. 얼마나 올지는 바람이 결정한다. 이동성고기압이 중국 대륙을 천천히 지나 지난달 22일 한국으로 향하면서 미세먼지를 싣고 왔다.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불어오는 찬바람이 강했다면 먼지를 실은 대기는 하루 만에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바람이 약했다. 대기가 정체되면서 2차 생성이 일어났고 미세먼지 농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외국에서 오는 먼지양, 국내 대기 상황, 국내에서 2차로 생성되는 먼지양이 합쳐져 미세먼지 농도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 연구관은 “결국 책임은 반반이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바람 탓을 해야 할까. 기후연구자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언급한다. 지표면의 바람은 대기권 위쪽 바람에 따라 달라진다. 상층부의 대기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온도차다. 북극 지역이 몹시 추우면 고위도 지역과 저위도 지역의 기온차가 커져 바람이 강하게 분다. 북극 기온이 올라가면 온도차가 줄어 바람이 약해진다. 북극 기온은 해마다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대기정체에 따른 고농도 미세먼지가 한국의 봄철 연례행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공기는 갈수록 깨끗해지고 있다?

사실 시민들의 체감과 달리 국내 미세먼지 농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연도별 서울 총먼지 농도(PM10과 비슷)를 보면 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에는 183㎍/㎥,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179㎍/㎥였다가 1994년 78㎍/㎥로 떨어졌다. PM10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기 시작한 1995년 이후에는 2002년 76㎍/㎥를 정점으로 꾸준히 낮아져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세먼지 ‘나쁨’인 날짜 수도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예전엔 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는데”라는 기억은 1960~1970년대 이야기이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1980~1990년대에는 지금의 중국보다도 한국의 대기 상황이 나빴다.

그런데도 미세먼지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 건 시민들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고 이듬해에는 미세먼지로 인해 수명이 줄어든 ‘조기사망자’가 연간 700만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2013년 8월부터는 국내 미세먼지 예보가 시작됐고 관련 보도가 폭증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분석 결과를 보면, 2000년대까지 1000건 안팎이던 미세먼지 기사가 2013년에는 2683건이 됐고 지난해에는 2만2205건으로 늘었다.

중국 주요 도시의 대기질은 최근 5년 새 30% 정도 개선됐다. 중국 환경보호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 74개 주요 도시의 PM2.5 농도는 2013년 72㎍/㎥에서 지난해 50㎍/㎥로 떨어졌다. 베이징 주변 공장이 대거 옮겨갔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산둥성의 경우도 2013년 98㎍/㎥에서 2017년 57㎍/㎥로 감소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시민들의 반감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지난 23일 종료된 청와대 국민청원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 대한 항의’에는 27만8128명이 참여했다. 청원자는 “미세먼지가 10년 전에 비해 상당히 자주 몰려오는데 정부는 중국에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단교까지 주장했다.

■ 바람이 하는 일, 사람이 할 일

과학적 근거와 통계를 들이대도 설득은 쉽지 않다. 미세먼지는 생활 속에서 직접 체감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름의 타당한 이유도 있다. 중국도 한국도 대기질이 나아지고 있다지만, 대기정체로 인한 ‘고농도 미세먼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느끼는 미세먼지의 심리적 크기는 커져만 간다.

바람은 바람의 일을 할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 이 연구관은 “중국에 항의하는 정도로는 실익이 없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으면서 국가적 역량을 쏟아 대기질을 개선하고 있는데 손가락질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연구관은 미래를 희망적으로 본다. “PM2.5 기준으로 중국이 2015년 50㎍/㎥이고 우리가 지난해 25㎍/㎥였죠. 한국은 40에서 25로 떨어트리는 데 10년 정도 걸렸어요. 중국도 비슷하게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보다 앞서 개선할 방법이 있어요. 국내 감축 목표를 더욱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거예요. 앞으로 몇 년 걸릴 거라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우리 노력에 따라서 4~5년 내에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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