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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임성일의 맥] '내로남불'과 '네 탓이오'만 줄여도 나아질 축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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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축구장의 빈자리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내탓'을 말하는 이들은 없고 '네탓'만 나오고 있다. © News1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이다.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비난하다가도 스스로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거나 합리화하는 모습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조어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않은 채 상대 비방만 급급했던 정치권에서 먼저 쓰였다는데 지금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스포츠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열고 대전시티즌 구단에 K리그 상벌규정 2조 4항(심판 판정에 대한 과도한 항의, 난폭한 불만 표시 행위)에 의거, 제재금 2000만원을 의결했다. 김호 사장에 대한 징계였다. 김 사장은 지난 14일 아산 무궁화와의 경기 후 통제구역인 심판실에 들어가 신체 접촉과 비속어를 포함한 과도한 항의를 해 문제를 일으켰다.

김 사장은 당시 후반 37분에 나온 아산의 결승골 과정 속에 공격자 반칙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판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연맹 심판위원회가 해당 판정을 사후 분석한 결과 정심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맹 측은 경기 영상을 언론에도 공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재차 알렸다. 사실 판정이 정심이냐 오심이냐는 이번 행위와 징계의 본질이 아니다.

프로축구 관계자는 "출입이 제한된 사람이 심판실에 들어가 소란을 일으킨 것이 언제였는지 기록을 찾아봐야 할 정도다. 적어도 10여년 안에는 없었던 일"이라면서 "판정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을 때나, 자신의 어떠한 권위를 통해 경기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좌우하려던 때에도 드물었던 일이 2018년에 벌어졌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또 다른 축구인은 "결과적으로 오심도 아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룰을 아무렇지 않게 깨뜨렸다는 사실"이라면서 "아실 만한 분이,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어줘야 할 분이 그렇게 당당하게 심판실까지 들어간 것은 여러모로 아쉽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호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축구의 전설이다. 선수 때는 아시아를 호령한 수비수였고 지도자로도 명장 반열에 올랐다. 축구계 발전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강직한 목소리를 낸 '미스터 쓴 소리' 이미지도 빼놓을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대상이 대한축구협회장이든 K리그 총장이든 단장이든 스타플레이어든 지적에 서슴없던 인물이다.

그런데 자신이 규칙을 깨는 것은 자주 일어나고 있다. 김 사장은 "도대체 심판실에 들어간 것이 뭐가 문제냐"고 되레 따진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연맹 측은 "김호 사장은 감독 재임 시절에도 경기지연과 심판 대상 난폭한 행위 등으로 4차례(2000년, 2002년, 2003년, 2008년) 출장정지와 제재금 징계를 받았다"고 알렸다.

상대방과 자신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축구판과 스포츠계가 가장 강조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예외'가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데 이기적인 공기로 가득하다. 맞물려 '내 탓이오'가 아닌 '네 탓이오'에도 능한 축구계다. 최근 박주영의 SNS 논란도 '네 탓이오'와 '내로남불'의 경계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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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위기라고 공감하면서도 답을 내려는 노력 없이 선고만 내리고 있다. © News1


박주영은 지난 14일 울산현대와 원정경기에서 FC서울이 0-1로 패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중략) 2년 동안 아무것도 나아진 것 없는 FC서울이 미안하고 죄송하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당시 울산 원정명단에 박주영의 이름은 없었고 나아진 것 없다는 '2년 동안'이 황선홍 감독 재임 기간과 맞물리며 화제를 일으켰다.

말들이 떠돌자 이틀 뒤인 16일에는 "팀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팀에 피해를 끼치는 선수가 됐다.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그런 선수는 되고 싶지 않다. 내가 피해를 보더라도 그것만은 지키고 싶고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일종의 반격으로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워낙 황선홍 감독을 향한 서울 팬들의 여론이 차가워진 때라 박주영의 글에 대한 호응도 적잖았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커졌다. 박주영이 펄펄 날고 있는 상황에서 기용하지 않는 것이라면 감독의 선택에 의구심을 표할 수 있으나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엔트리 제외에 불만을 표출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관련해 한 스포츠 관계자가 롯데 자이언츠의 리더 이대호를 빗댄 것은 꽤 공감이 된다.

그는 "야구 인기구단 롯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원우 감독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고 팬들에 대한 비난도 강하다. 심지어 이대호는 팬이 던진 치킨 박스에도 맞았다"면서 "자존심도 상하고 괴로웠을 텐데 이대호가 묵묵히 절치부심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그러더니 지난주 폭발적인 타격감을 보이며 되살아났다"고 전했다.

이어 "운동선수가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줄 곳은 결국 운동장이다. 특히 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리더급이라면 더더욱 필드에서 표출해야한다"는 말로 에둘러 박주영의 행동을 지적했다. 과거부터 '원팀'과 연이 깊던 선수인데, '자신이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한 것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살펴보면 축구계 곳곳이 '내로남불'과 '네 탓이오'에 물들어 있다. 원래 감독들이 색깔을 내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이해해야 진정한 축구팬이라 주장하다가 몇 경기만 흔들리면 '행동'하려는 서포터들이 적잖다. 축구 팬들은 원래 좀 거칠어도 괜찮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가족 단위나 라이트팬들이 다시 경기장 찾는 것을 방해하는 문화도 수정이 필요하다. '애들과 축구장 가기가 두렵다'는 이들이 많다면 문제가 있다.

팬들에게 재밌는 경기를 보여줘야 판이 살아난다면서 당장 자신의 입지 보존을 위해 선수들에게 웅크리라 지시하는 감독들, 자신들도 존중해 달라면서 어느 순간 권위적인 모습으로 선수와 경기를 지배하려는 일부 심판들, 프로연맹은 탁상공론에 그친다는 구단들과 구단은 전체 판을 도무지 모른다는 프로연맹, 그런 프로축구계의 아우성을 뒷짐 지고 바라보는 대한축구협회 등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는 축구계다.

축구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인물 모두가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든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답을 내기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나 적어도 축구인을 자처하거나 축구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이들이 '절망적'이라 선 긋고 혀만 차는 것 역시 이기적인 자세라는 생각이다.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복합적이다. 이럴 때 필요한 단초가 '내 탓이오'다. '내로남불'과 '네 탓이오'만 줄여도 나아질 수 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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