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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설계는 좋았는데…짓고 나면 후회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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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는 평생의 꿈이다. 하지만 ‘집짓다가 10년 늙는다’는 말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땅집고는 예비 건축주들의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개설한 ‘제1기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의 주요 강의 내용을 엮은 건축 지침서 ‘실패하지 않는 내집짓기’(감씨)를 최근 출간했다. 건축계 드림팀으로 불리는 5인의 멘토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건축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패하지 않는 내집짓기] “재료 선택과 사용법 모르면 원하는 결과물 안나와”

“설계를 몇 개월에 걸려서 굉장히 잘 해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공하면 그게 제대로 안 나오기도 했습니다.”

디자인을 아무리 잘해도 재료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사용법을 모르면 결과물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윤재선 팀일오삼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시공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시공 자체에 대한 컨트롤이 안된다”면서 “재료는 비용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자신의 사례를 직접 들며, 재료에 대한 이해 여부가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설명했다. 윤 대표는 자녀들에게 집에 대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직접 집을 짓기로 했다. 평소 좋아하는 재료인 벽돌과 나무를 쓰기로 했다. 문제는 건축 전문가인 윤 대표조차 당시에는 재료를 잘 몰랐다는 것. 당연히 목수에게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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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마감한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주택 내부. /감씨 제공


외부에 깔기 위한 나무였는데, 튼튼해서 외부에 쓰기 괜찮다고 목수가 알려줬다. 그 말을 믿고 시공했지만 6개월이 지나자 검은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해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 이때부터 윤 대표는 재료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됐다고 한다.

윤 대표는 다른 사례도 들었다. 일반적으로 바닥에 쓰는 재료와 벽에 쓰는 재료가 다르다. 타일 시공을 할 때 보통 바닥에는 자기(磁器)질을, 벽에는 도기(陶器)질을 쓴다. 자기질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고 단단하다. 하지만 도기질 타일 가운데 더 예쁜 게 있다고 그걸 바닥에 쓰면 작은 충격에도 깨지고 만다. 용도에 맞는 재료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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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를 용도에 맞게 자르고 다듬는 과정.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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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업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추천하는 재료가 상황에 정확히 맞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방수(放水) 공사의 경우 A 업자와 B 업자가 서로 다르게 시공하기도 한다. 이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이다. 건축가들조차 재료에 대해서는 잘 몰라 시공 후 언제든지 하자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윤 대표는 “제가 제 집을 지을때만 해도 재료를 잘 몰라 현장에서 컨트롤을 못했고, 결국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재료는 비용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집 하나 짓는 데 대략 100여 종의 재료가 들어간다. 콘크리트와 철근 등 골조 관련 재료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 중 20% 정도는 건물주가 컨트롤할 수 있다. 이 20% 재료의 유통 정보를 잘 알고, 유통 과정을 몇 단계만 줄이면 그만큼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재료비를 컨트롤할 수 있으면 인건비를 줄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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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에 벽돌을 사용한 경기도 판교신도시의 주택. /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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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누가 시공하느냐에 따른 편차가 크지 않다. 현장 매뉴얼이 훌륭하고 재료마다 시공법이 알기 쉽게 설명돼 있는 덕분이다. 공장에서 나온 재료를 딱딱 끼워 맞추는 조립식이 많아 사용설명서에 따라 시공하면 된다.

우리나라도 최근 조립식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민원이다. 윤 대표는 “집을 짓기 시작하면 옆집 사는 주민은 민원을 준비한다. 심하게는 어떻게 돈을 뜯을까 궁리하는 사람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조립식이면 그 사람이 민원을 생각하는 동안 공사를 끝낼 수 있다는 것. 재료비가 비싸 비용은 더 들지만 공사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인건비는 줄어든다. 공정도 간단해 위험 부담도 적다. 예컨대 임대용 건물이라면 공기를 5개월에서 3개월로 줄이면 2개월 더 임대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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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프로젝트. 하얀 외벽이 인상적이다. /ⓒ남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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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는 “건물은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기능과 안전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운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 기능에 충실하려면 재료의 적절한 사용이 필수적이다. 즉 올바른 재료와 정확한 시공이 중요하다.

건물 완공 이후에는 유지관리에 대한 기초 지식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직접 관리하지는 못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유지관리는 대개 비슷하다. 1년 동안 꼭 거치는 매뉴얼이 있다. 정화조 청소, 펌프 확인, 방충 작업, 동파 방지 등이 기본적인 사이클이다.

윤 대표는 건축주는 경영자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결국 건축은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건축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지만 건축주 대부분 직접 공사를 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누구인지 찾고 사람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오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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