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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남자다움은 변하는 거야”… 꽃꽂이에 빠진 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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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까talk]性 고정관념 벗는 新남성성 부상

동아일보

링 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은 7일 방송된 SBS 예능 ‘살짝 미쳐도 좋아’에서 꽃꽂이를 즐기는 취미를 공개했다. 이처럼 대중문화 속에서 강인하고 묵묵한 남성의 모습 대신 감성적이고 섬세한 ‘신(新)남성성’이 부각되고 있다. SB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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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땀 한 땀 십자수를 시작한다. 금세 유아용 신발을 만들어 낸 주인공은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 지난달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승리의 일상은 한류를 이끄는 화려한 무대 위 모습과 사뭇 달랐다.

#2.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은 아침에 눈뜨면 화분에 물 주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이 ‘근육남’이 빠진 취미는 꽃꽂이. 꽃을 활용한 소품으로 집을 꾸미는 ‘플랜테리어’로 변신하기도 했다. 7일 SBS ‘살짝 미쳐도 좋아’에서 그의 모습은 ‘순수 소년’ 그 자체였다.

강인함, 리더십, 묵묵함…. 그동안 대한민국 남성에게 표준지표처럼 요구된 ‘남자다움’의 대표적 덕목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던져버린 남성의 모습이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과 함께 대두된 ‘페미니즘’과 함께 남성 역시 고정된 성 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신(新)남성성’이 부각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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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속에서 강인하고 묵묵한 남성의 모습 대신 감성적이고 섬세한 ‘신(新)남성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제프리 스타’는 팔로어가 670만 명(22일 기준)이 넘는다.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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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경계 허무는 문화 콘텐츠

더 이상 뷰티와 패션은 여성 아티스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67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최고의 뷰티크리에이터는 미국 남성 아티스트 ‘제프리 스타’다. 화려한 색조 화장과 현란한 붓 터치, 과감한 스킬이 그의 전매특허. 국내 역시 이런 ‘맨스 뷰티(Man’s Beauty)’가 폭발적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레오제이(정상규)와 개그맨 김기수 등 팔로어 수십만 명을 거느린 이가 많다.

남성의 새로운 역할 찾기를 분석한 서적들도 눈에 띈다. 미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토니 포터는 기존 남성성의 굴레를 ‘맨 박스(man box)’란 용어로 규정지었다. 동명의 책에서 “‘남자다움’을 강요받는 남성들 역시 자연스러운 고통과 감정을 억압받고, 부양 의무라는 부담감에 짓눌린 성차별의 피해자”라고 설명한다. 이 밖에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책담) ‘남자는 불편해’(원더박스) 등도 최근 화제작이다.

이런 분위기는 일상으로도 번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간호사는 여성 직업으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 하지만 간호사 국가고시 합격자 현황을 보면 2007년 2%였던 남자 간호사 비율이 지난해 처음 10%를 넘겼다. 손인석 남자간호사회장은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남자 간호사들이 대거 의료 현장에 투입되며 오히려 능력 중심의 새로운 직장문화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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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의 적(敵)은 여성이 아니라 기존의 ‘남성성’

새로운 ‘남자다움’이 떠오르는 것은 기존 남성주의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세계를 이끈 성장논리는 ‘남성성’을 강조한 강한 카리스마와 묵묵한 리더십 등이 대표적이었다”며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더 이상 기존의 패러다임이 통하지 않는 시기로, 남성도 ‘더 이상 우리를 옥죄지 말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자칫 여성과의 대립으로 치닫는 반(反)페미니즘으로 흘러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회학 박사인 오찬호 작가는 “여성이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남성 역시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해 불편과 힘듦을 강요받은 것”이라며 “남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라 기존의 ‘남성성’이란 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장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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