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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새소리-별빛이 주인공… 재미없어 뜨는 ‘다큐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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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다큐 같은 예능’ tvN ‘숲속의 작은 집’은 출연자들이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책 읽기’ 등 느리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마치 사회과학 분야의 실험 기록 같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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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능은 시끄럽기만 하던데, 자연과 함께하니 잔잔하고 좋네요.”

“눈을 감고 소리만 들으니 어느 순간 피곤했던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미션과 게임, 버라이어티 쇼 중심이던 한국 예능 사이에서 최근 고요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10초가 지나기도 전에 카메라 앵글이 휙휙 달라지던 기존 예능과 달리 20초가 지나도 다음 컷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사람과 동물을 작게 그려 넣어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한 영국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의 그림 같다. “예능의 종착지는 다큐”라던 개그계 대부 이경규의 말이 실현된 셈이다.

‘다큐 예능’은 지난해부터 ‘잠 오는 영상’ ‘멍 때리는 영상’ 등의 제목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 콘텐츠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미지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시각적인 피로는 줄이고 청각을 통한 힐링을 원하는 경향과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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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우주를 줄게’는 변화가 적은 화면 영상 덕분에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채널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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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처음 방송된 채널A ‘우주를 줄게’는 국내 청정 지역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슬로 예능’을 표방한다. 출연자의 표정이 드러나게 얼굴이 꽉 찬 화면은 없고, 대신 하늘과 나무, 시냇물 등 멀리서 찍은 자연의 영상미를 담는다. 시청자는 카메라의 눈으로 먼 거리의 피사체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이성규 PD는 “웃음소리를 깔아 웃어야 하는 장면에서 웃으라고 압박하는 주입식 연출을 배제했다”며 “화면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달 초부터 방송된 tvN ‘숲속의 작은 집’은 장르상 ‘예능’으로 분류되지만 그 형태는 기록 영화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자칫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이 프로그램은 편집부터 소박하다. 나영석 PD도 “자기 전에 틀어놓으면 잠들기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유호진 PD의 신작인 KBS ‘거기가 어딘데’도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는 ‘탐험’에 초점이 맞춰져 게임보단 광활한 자연을 조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프로그램에선 보통의 예능에서 강박적으로 존재하던 이벤트나 사건, 사연, 상황 같은 ‘발생’도 없다. ‘정글의 법칙’이나 ‘삼시세끼’처럼 자연이 등장하는 유사한 프로그램과 달리 ‘생존’도 ‘요리’도 주안점이 아니다. ‘숲속의 작은 집’ 제작진은 “출연자와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편”이라며 “자막은 최소화하고 사용되는 폰트의 가짓수나 색상을 단순하게 사용하려고 한다. 배경음악을 덜 쓰고 현장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며, 새 소리나 비 소리 같은 자연음은 전문 장비를 빌려 수음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이 “예능에서 재미있는 반응을 유도하는 억지 장치들을 부담스러워하던 중 ‘심심함’ ‘재미없음’이 역설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며 “단조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흐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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