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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못 가는 길 없는 럭셔리냐, 원조 오프로더 존재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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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다른 매력’ 최신 SUV 2종 타보니

벤틀리 벤테이가 - 첨단 기술에 최고급 내장·장비…강력한 ‘심장’으로 가볍게 질주

지프 랭글러 ‘JK 에디션’ - ‘레저용 자동차’ 명가의 자존심…험한 산길·1m 깊이 하천 거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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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벤테이가는 가장 빠르고 화려하며 파워풀한, 세상에 없던 SUV를 목표로 기획된 차다.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레이싱 트랙에서도 잘 달리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지프 랭글러는 벤테이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차다. 탄생한 지 8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조금씩 진화해왔다. 최고 속도는 벤테이가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산과 강, 암반과 모랫길에선 대적할 상대가 없다. 같은 SUV지만 지향점은 ‘극과 극’을 달리는 벤테이가와 랭글러 언리미티드 JK 에디션을 비교 시승했다.

■ 럭셔리 SUV의 정점 ‘벤테이가’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하고 빠르다는 벤틀리 SUV 벤테이가로 트랙을 달릴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레이싱으로 명성을 얻은 벤틀리지만 차고가 레이싱카의 2배쯤 되는 SUV 아닌가. 하지만 벤틀리는 그들만의 레이싱 유전자(DNA)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벤틀리의 제안으로 벤테이가를 용인 스피드웨이 트랙에 올려봤다.

벤테이가는 공차 중량이 3.2t이 넘는다. 웬만한 콤팩트 사이즈 세단 2대쯤 되는 체중이다. 2.6t 안팎인 풀사이즈 대형 SUV보다도 훨씬 무겁다. 무게가 나갈 수밖에 없다. 시트는 황소 가죽과 진짜 목재를 사용한다. 실내를 장식하는 빛나는 금속성 부품들은 플라스틱에 크롬도금을 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알루미늄이거나 진짜 금속 소재다. 럭셔리하게 만들다 보니 차가 무거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 럭셔리한 SUV는 스피드웨이 아스팔트 트랙을 콤팩트카처럼 가볍게 달렸다.

벤테이가에 사용된 6.0ℓ 트윈터보 W12 엔진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최고출력 608마력, 최대토크 91.8㎏·m를 내는 강력한 ‘심장’은 V형 6기통 2개를 합쳐 W형 12기통으로 재탄생됐다. 연료를 상황에 따라 직접 또는 간접 분사하는 방식을 사용해 출력은 높이고 배출가스는 최소화했다고 한다. 실제 일정 조건에서는 엔진이 절반만 구동돼 연료 효율을 높인다.

용인 스피드웨이의 최고속이 나오는 직선로 구간에서 벤테이가는 가볍게 시속 210㎞에 터치했다. 이 차의 제로백(시속 100㎞에 이르는 시간)은 4.1초다. 하지만 시속 100㎞를 체감할 새도 없이 200㎞를 찍더니 250㎞ 언저리로 바늘이 돌아간다. 용인 스피드웨이를 시속 200㎞ 이상으로 달린 가장 무거운 차로 기록된 벤테이가의 최고속도는 시속 301㎞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SUV인 셈이다.

그렇다고 운전자를 놀라게 하거나 등이 시트에 ‘쫙’ 달라붙는 ‘촌스러운’ 가속은 아니다. 촉각보다는 시각으로 급가속을 먼저 체험한다. ‘차창 밖 차들이 뒤로 사라져 속도계를 보니 시속 200㎞를 지나고 있었다’는 식이다.

출력이 좌우하는 ‘직빨’(직진 코스에서의 가속력)은 흉내 내기 힘든 기술은 아니다. 트랙에서는 코너링이 관건이다. 차고가 1.8m에 가깝고 성인 남성 4명이 탔음에도 좌우로 쏠리는 롤링, 전후로 출렁이는 피칭이 거의 없다. ‘SUV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다. 헤어핀 같은 코너에서도 여름날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돌아준다. 벤테이가 앞에는 벤틀리 세단인 ‘플라잉 스퍼’가 페이스카 역할을 하며 트랙을 선도했는데, 벤테이가에 탄 모든 사람들이 플라잉 스퍼의 롤링이 훨씬 컸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벤테이가에 처음 적용된 ‘벤틀리 다이내믹 라이드 시스템’ 덕분이다.

벤테이가에는 기본적으로 에어 서스펜션이 사용된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전기모터가 코너 때 쏠림을 보정한다. 급하게 왼쪽으로 돌면 차가 오른쪽으로 쏠리는데, 전기모터로 덜 쏠리게 만든다고 보면 된다. 야외 오프로드를 달릴 때 네바퀴가 거친 노면에 따라 과격하게 오르내릴 때도 이 장치가 최적의 주행을 이끌어낸다.

트랙 주행을 마친 뒤에는 인공 경사로에서 등판 능력을 테스트했다. 32도쯤 되는 경사로의 정점 바로 아래에서 벤테이가를 정지시킨 뒤 가속페달에서 발을 완전히 뗐다. 벤테이가는 미동도 없이 30도 안팎의 경사를 네바퀴로 버텨냈다. 바퀴가 얹혀진 폭은 50㎝쯤으로 좁아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아 휠 스핀이 일어나거나 하면 4m쯤 되는 높이에서 영락없이 추락할 상황이다. 하지만 벤테이가는 끈끈이주걱처럼 철제 경사판에 딱 달라붙은 채 경사로 정점에 모든 바퀴를 올려놓았다.

내리막 경사에서의 주행은 지금까지 타본 SUV 가운데 최고였다. 32도 경사를 점성 강한 꿀이나 조청이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듯, 절대 미끄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끔 하강했다. 벤테이가는 성능만으로 운전자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3억4000만원부터 시작하는 가격표에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쯤 돼야 벤틀리다.

■ SUV의 원조 랭글러 ‘JK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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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란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용어다. 세단보다 차고가 높고 4륜구동을 적용해 야외에서의 활동성을 높인 자동차를 말한다. 요즘은 이런 차를 SUV라 부르지만 좀 오래전엔 ‘지프’나 ‘지프차’라 불렀다. 말하자면 지프가 곧 SUV의 ‘원조’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지프는 8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몇 가지 모델로 가지치기됐다. 당시 전장을 누비던 윌리스 지프의 성능과 디자인을 가장 많이 계승한 랭글러, 도심형 SUV 체로키, 체로키의 럭셔리 버전인 그랜드 체로키, 콤팩트 SUV 레니게이드가 그것이다. 랭글러는 다시 2도어인 루비콘과 4도어인 사하라로 나뉜다. 시승한 ‘JK 에디션’은 사하라의 고급모델로 보면 된다.

랭글러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도심 도로를 달리면서 만나는 유명 프리미엄 브랜드의 SUV를 완전히 압도한다. ‘원조’의 힘이다. 기다란 홈이 파인 7슬롯 라디에이터 그릴, 원형의 헤드램프, 갈고리 형태의 개폐 장치로 여닫는 보닛, 테일 게이트에 달린 스페어 타이어…. 어떤 SUV도 지프의 존재감을 꺾긴 힘들다. 운전을 하다 보면 풀사이즈의 대형 SUV를 제외한 대부분의 SUV와 세단들이 JK 에디션 아래에 있다. 1.9m에 이르는 차높이 때문이다. JK 에디션은 국산 유명 미니밴보다도 전고가 높다. 그만큼 운전자의 시트 포지션이 높아 도심 도로에서 운전하기 쉽다.

JK 에디션은 도심에서는 수사자처럼 ‘어슬렁거린다’. 기동성 있게 앞차를 따돌리거나 쉽게 급차로 변경을 하면서 1차로에서 마지막 차로로 끼어드는 가속력을 맛보긴 어렵다. 엔진은 V6 3.6ℓ 가솔린으로,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토크는 35.4㎏·m를 낸다. 적잖은 출력이지만 2.2t에 이르는 SUV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압도할 만한 힘은 아니다. 고속국도에서는 가속페달을 제법 밟아도 속도가 그리 빨리 붙지는 않는다. 말해 뭣하랴마는, 이게 다는 아니다. 고속 주행을 하기 위해 이 차를 구입한 사람은 없을 터이니.



랭글러는 오프로드를 달려야 제맛이다. 진입각과 이탈각이 예리해 바윗덩이가 솟구친 험로를 주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서울 근교에서 험한 돌길을 찾기 힘들어 흙더미가 군데군데 쌓인 공사 현장을 찾았다. 운전대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흙길을 내달렸다. 헐거운 신발을 신은 듯하던 주행감이 오프로드에서 오히려 타이트한 러닝화를 착용한 것처럼 편했다.

강력한 프레임 보디의 차체는 모노코크로 만든 도심형 SUV와는 확실히 다르다. 요철이 끊임없이 이어진 비포장도로에서도 서스펜션 같은 차량 ‘관절’에 무리가 가는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하체가 불안해 허둥대는 움직임도 없다. 몰아붙이는 대로 돌더미 위에 오르고 쾌속정처럼 모래를 가르며 치닫는다. 실제 랭글러를 타고 암벽을 올라본 사람들은 평생 그 맛을 못 잊어 다시 랭글러를 구입한다고 한다.

오프로드뿐만 아니다. 얕은 하천은 물론 1m가 넘는 제법 깊은 하천을 건널 수도 있다. 보닛을 열어보면 엔진 왼쪽에 에어 인테이크가 있다. 그것도 높이가 보닛과 딱 닿아 있다. 실개천에만 들어가도 시동이 꺼지는 세단과는 다르다. 스노클을 장착하면 더 깊은 하천도 건널 수 있다. 칭찬받을 만한 장점이 또 있다. 뒷좌석이 제법 넓다. 웬만한 체구의 성인 남성 3명이 앉을 수 있다. 무릎공간도 부족하지 않다.

과거 프리미엄 카오디오로 제법 이름을 날렸던 알파인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된다. 안전한 주차와 후진을 돕는 파크뷰 후방카메라, 블루투스 핸즈프리 같은 편의 장치도 있다. 차로 유지 시스템, 운전자 피로 경보 같은 장치는 당연히 없다. 정글이나 사막에 차선이 어딨으며, 오지를 달리는 탐험가들이 피로하다고 휴게소에 들르지 않을 테니. 그만큼 가격이 착하다. 5390만원이지만 다양한 프로모션을 활용하면 이보다 나은 값에 구입할 수 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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