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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삼성그룹 노조에 '봄'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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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삼성전자서비스는 불법파견 논란을 빚던 협력사 소속 직원 8000명을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하고 이들의 합법적인 노조활동도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파괴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관련 임직원 소환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삼성이 공식 발표를 통해 노조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밝히면서 언론은 ‘삼성 무노조 신화 종결’, ‘삼성 계열사 노조도 인정할 듯’ 등과 같은 전망을 쏟아냈다.

헤드라인만 보면 그 어렵다는 삼성그룹 내 노조활동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 사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삼성그룹의 다수 계열사 노조들은 활동의 어려움과 사측의 노조 파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노조 파괴활동의 본부로 지목되고 있는 각 계열사 내 ‘신문화팀(신문화그룹)’의 해체와 성과연봉제 폐지 등 구조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향신문

■“노조 파괴활동 분명 더 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4월 초. 도심에서 삼성 A계열사 노조 관계자들이 느닷없이 ‘추격전’을 벌였다. 미션은 사라진 신문화팀 직원을 찾는 것이다. 직원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리에 있다고 했던 그 직원이 막상 사무실에 가보니 없었던 것이다. 근태관리가 엄격한 삼성에서 근무시간에 직원이 외유를 나갔을 리는 없다. 노조 관계자들은 이 직원이 외부 별도 사무실에서 노조 관리·감독 작업을 할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었다.

마침 회사 주변에 삼성의 소유로 알려진 사무실이 몇 군데 있다는 데 착안하고 관계자들은 해당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중 의심되는 사무실을 두세 곳 찾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무실 대부분에 출입 제한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직원을 미행해보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발각될 경우 논란의 소지가 있어 관두기로 했다.

노조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평소 신문화팀이 노조활동을 감시하고 방해한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직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회사를 비판하거나 노조를 홍보하는 글을 올리면 귀신같이 악성댓글과 ‘비추천’ 클릭이 수십여 개씩 달렸다. 비추천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해당글은 삭제되거나 블라인드 처리된다.

A사 노조 관계자는 “회사 신문화팀 사무실의 경우 워낙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아 노조 파괴활동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별도 외부 사무실을 의심한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심증은 가득한데 정말 물증이 없어 답답하다. 검찰이 A사도 수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사측의 노조 파괴활동과 관련해 물증은 없지만 심증으로 충분한 사례는 여럿 더 있다. 삼성 B계열사의 경우 사측의 감시를 피해 설립 초창기 폐쇄형 SNS인 ‘블라인드’를 통해 노조 가입을 홍보했다. 하지만 글을 올리면 곧이어 악성글로 신고가 뒤따랐고, 홍보글은 블라인드 측의 정책에 따라 삭제되길 반복했다. 블라인드가 어려워지자 인터넷 카페를 통해 노조를 홍보하고 조합원을 받으려 했다. 사측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카페의 ‘정회원’ 인증 시 사번을 통해 신분을 확인키로 했다. 특이한 건 카페에 하루에도 10여차례씩 들어오는 한 ‘회원’의 존재였다. 그는 카페에 가입만 했을 뿐 정회원 신청은 하지 않은 채 카페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B사의 노조 결성을 도왔던 민주노총 관계자는 “당시 카페는 일단 가입만 하면 정회원 인증을 안 받아도 공지사항 등을 볼 수 있는 상태였다”며 “사측에서 노조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들락거렸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B사 노조의 카페 활동은 결국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노조를 설립해 올해 삼성그룹의 첫 단체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웰스토리지회의 임원위 지회장은 2017년 인사고과 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았다. 입사 11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최하등급이었다. 삼성웰스토리는 ‘성과연봉제’를 운영 중인 회사다. 인사고과에 따라 다음해 연봉 수준이 결정된다. 임 지회장처럼 최하등급을 받게 되면 연봉이 동결되거나 깎인다. 임 지회장의 경우 연봉 동결이었다.

임 지회장은 최하등급을 받은 이유와 근거를 사측에 요구했지만 사측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임 지회장은 “사측에 트집 잡힐까 걱정돼 노조활동을 많이 할 때는 개인 휴가를 써가며 했다”며 “명확안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걸 보고 노조활동에 따른 불이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삼성 노조에 봄이 왔다”는 장밋빛 전망이 일부 제기돼도 현장에서 노조활동을 이어가는 관계자들은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몇 달째 단협에서 사측과 노조가 큰 시각차를 보여온 삼성웰스토리만 해도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를 허용한다고 밝힌 직후인 4월 18일 열린 협상에서도 입장차를 전혀 좁히지 못했다. 18일 협상에서 경총 관계자들이 내민 사측의 단협안에는 노조가 요구한 사안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룹 조직문화 근본적 개선해야

삼성전자서비스의 사례가 다른 그룹 계열사로 전파될 수 있다는 전망에도 역시 비관적이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삼성전자의 자회사이긴 해도 주력 계열사는 아닌 데다, 그룹의 ‘상징’인 삼성전자의 경우 여전히 노조가 없다. 차라리 그룹의 인사·노무를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이라도 있다면 노조 허용을 확대적용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도 있지만 미전실 해체 후 인사·노무관리 업무는 각 계열사로 모두 넘어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노조에 어떻게 대응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각 계열사가 판단해서 할 문제”라며 “삼성전자서비스의 사례가 그룹에 일반화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룹 내 일부 계열사의 사례를 확대적용하기보다는 노조활동에 부담을 주는 삼성그룹의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삼성의 노조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조직문화 개선책으로 거론되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게 이번에 노조 파괴활동으로 논란이 된 각 계열사의 신문화팀 해체와 성과연봉제의 폐지 문제다.

신문화팀의 경우 노조 파괴활동 의혹만으로도 해체 요구를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성과연봉제의 경우 삼성의 일부 계열사에서 도입 중인 급여체계로, 노조 관계자들이 “노조활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 제도다. 성과연봉제는 인사고과에 따라 직원들의 등급을 상대평가한 뒤, 이 결과에 따라 급여에 차등을 둔다. 직원의 역량고과와 업적고과를 각각 산정해 평균낸 점수가 상대평가의 기준이 된다. 예컨대 삼성의 계열사인 C사의 경우 2016년에 최고등급인 ‘가’ 등급을 직원의 상위 7%가 받았고, 최하등급인 ‘라/마’ 등급을 6%가 받았다.

노조 관계자들은 성과연봉제의 ‘기준’이 명확지 않다보니 사측의 입맛대로 직원들을 컨트롤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의 한 노조 관계자는 “노조에 가입하려고 해도 회사에 찍힐 경우 성과연봉제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무엇보다 크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업무에 복귀할 경우 내놓을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3월 조직문화 혁신안을 통해 직급 단순화와 수평적 기업문화 도입 등을 공표했다. 당시 이 혁신안은 ‘이재용의 뉴삼성’을 상징하는 경영철학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사법처리 대상이 되면서 동력을 잃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복귀할 경우 새로운 조직혁신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 혁신안에 노조문제가 포함될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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