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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커지는 거실, 만능 주방…'리비주'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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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의 맨션(아파트)에 사는 혼마 히데오씨. 그는 최근 집 구조를 맘먹고 바꿨다. 원래 방 3개와 거실, 부엌이 있었는데 주방과 안방 벽을 모두 헐어 거실을 기존보다 2배쯤 더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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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과 주방을 개조한 집. /리쿠르트스마이 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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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씨 가족3명은 이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대부분 시간을 거실에서 보낸다. 히데오씨는 퇴근 후 거실에서 책을 읽고, 맞벌이하는 아내는 미처 못 끝낸 업무를 본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한켠에서 카드 놀이에 푹빠져 산다. 이따금 대화를 나누지만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히데오씨는 “가족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자기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어 프라이버시(사행활)도 지켜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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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리쿠르트스마이 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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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 일과 여가 생활이 가능한 ‘리비주’(Living 充·리빙 공간의 디자인과 기능이 알차다는 뜻)가 새로운 주거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에서 확산 중인 리비주는 방 개수를 줄이는 대신 거실을 최대한 늘리는 공간 배치가 특징. TV나 보던 거실을 업무·공부·놀이 등 다용도로 활용하고 가족들은 같은 공간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일본식 리비주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가족 공간인 거실과 주방 기능을 대폭 강화한 평면과 인테리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공부하고 밥도 먹고…점점 커지는 거실

리비주 현상은 거실 기능의 확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기존 주택의 거실과 주방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 대세다. 인테리어 중개업체인 집닥 관계자는 “거실과 주방을 통합하는 방식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주방에서 거실이 잘 보이도록 하거나 거실에 큰 다용도 테이블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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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거실과 거실에 놓인 테이블. /레브드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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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자녀를 둔 황모(42)씨. 최근 거실에서 TV를 치웠다. 대신 커다란 책장과 테이블 들여 북카페처럼 꾸몄다. 그는 “요즘은 아이들 과제가 노트 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PPT(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거나 직접 과학 실험을 하기도 한다”면서 “각종 도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좁은 방보다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거실까지 아이들 공간을 넓혔다”고 했다. 황씨 부부는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 거실에서 각자 업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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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카페같은 서재형 거실. /현대리바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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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인 박모(33·여)씨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자녀를 위해 놀이 테이블과 책장을 거실로 옮겼다. 그는 “요리하는 동안 아이가 방에서 다치기라도 할까봐 늘 겁이 났다”며 “주방 일을 하거나 거실에서 TV를 볼 때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이런 공간들은 모두 부모와 자녀가 자기 일을 하면서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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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용 놀이 테이블을 거실에 뒀다. /더어반인테리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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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업무 등 결합한 ‘만능 주방’ 확산

주방도 달라지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일을 하며 함께 있기 좋은 공간으로 변신했다. 요즘은 USB포트가 달려있거나 다양한 전자기기를 쓸 수 있는 주방 가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방에서 요리뿐만 아니라 독서, 스마트폰과 컴퓨터 이용, 음악감상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엄마는 주방 한 켠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아빠는 조리대에서 구첩반상을 만들며, 아이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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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능을 하는 부엌가구. /에넥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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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ㄷ’자 대면형 구조로 바꾸는 사례도 많다. 아일랜드 식탁을 놓는 방법이 대표적. 각자 일을 하느라 교류가 뜸해진 가족들이 서로 관계가 어색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예를 들면 부부가 출근 준비 후 등교하려는 자녀들에게 주스를 따라주는 몇 초 동안 하루 일과를 묻고 대화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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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식탁. /까사미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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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미아씨랩 관계자는 “아일랜드 테이블의 인기는 최근 몇 년 간 식을 줄 모른다”며 “기능이 추가된 다용도 테이블은 부엌에서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고 서로 마주보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가족간 효율적인 소통을 돕는다”고 했다.

■“‘따로 또 같이’ 공간 계속 늘어난다”

리비주 공간이 부상한 이유는 예전과 달리 가정에서도 자신만의 시간과 영역을 확보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단절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경향도 반영됐다. 일본 주택정보업체 ‘SUMMO’의 이케모도 요이치 편집장은 “가족이 지나치게 긴밀한 관계를 갖기는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소원해지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에 서로를 유연하게 이어주는 리비주가 탄생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180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리비주 확산의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과거엔 엄마가 집에서 가사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아빠는 밖에 나가 돈을 벌었다. 낮에 각자의 공간에서 일을 본 가족들은 저녁에 모여 화합하고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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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TV를 시청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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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각종 사교육 받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점차 가족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가 힘들어졌다. 온 가족이 모인 테이블에서 자신의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는 풍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이케아코리아의 안톤 허크비스트 총괄디자이너는 “가족 구성원이 온종일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면서도 서로 함께 하는 리빙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집 구조는 가족과의 유대를 완전히 끊어놓는 폐쇄적인 모습이 아니다.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리비주는 결국 가족들이 서로의 존재를 틈틈히 확인하면서도 구성원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주거 문화”라며 “가가족들이 한지붕 아래 ‘따로 또 같이’ 사는 주거 방식이 점차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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