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이슈추적]日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 모였지만…재무성 몰락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야당에서 재무성 해체론,자민당도 "재편 검토"

"뇌물로 대장성 해체된 98년보다 심각" 시각도

성희롱 차관 동기 27명중 16명이 도쿄대 법대

4년전 아베가 내각인사국 신설해 인사 장악

정치 바람 불며 충성 경쟁하다 결국 몰락의 길

날개없는 추락.

일본의 ‘최강 부처’로 불리는 일본 재무성의 처참한 현주소를 요약하는 말이다.

중앙일보

도쿄의 일본 재무성 건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년이 넘도록 각종 사학재단 관련 스캔들에 휩싸인 데 이어, 재무성 관료들중 최고위직인 사무차관이 최근 여기자에 대한 성희롱 파문으로 사퇴하는 등 불상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졌다.

중앙일보

성희롱 파문에서 가해자인 재무성 사무차관을 계속 감싸고 있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겸 재무상을 비롯한 재무성 수뇌부들이 그 고비때마다 상식밖으로 대응하면서 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조직 내부에서도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모리토모(森友)사학재단이 초등학교 부지로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이는 과정에서 재무성은 국유재산을 재단에 매각한 당사자였다.

중앙일보

모리토모 스캔들과 관련해 문서 조작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가와 노부히사 전 국세청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부인 아키에(昭?)여사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의 개입 의혹을 감추려 재무성내 결재 문서를 조작한 사실이 이미 들통났다. 이 과정에서 재무성 직원이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재무성 이재국장 출신인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전 국세청 장관은 사퇴했다.

또 헐값 매각과 관련해 "국유지에 포함된 쓰레기를 처분하느라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말해달라"며 모리토모 재단측과 사전에 입을 맞추려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재무성 담당 간부들은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국회에서 매일 사죄했다.

중앙일보

성희롱 파문으로 사퇴의사를 밝힌 후쿠다 준이치 사무차관(가운데)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사무차관의 성희롱 파문과 관련해선 음성파일이 이미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는 성희롱을 부인하고 있으니 여기자가 직접 나서 피해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니 야당에선 연일 아소 부총리에 대한 사퇴 요구와 함께 “이제 재무성의 해체를 본격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비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야당에서 쏟아지는 재무성 해체 주장과는 별도로 자민당내에서도 행정개혁본부를 중심으로 재무성 개편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모리토모 사건에서 논란이 된 국유재산 관리 업무를 재무성에서 떼어내고, 세금 관리 업무의 일부도 ‘세입청’이란 별도의 기구에 맡기자는 구상이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가 결집한 '꿈의 직장'이 국민들 공분의 대상이 된 데 이어, 조직이 갈기갈기 찢겨나갈지 모르는 칼날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이와관련, "현재 재무성의 상황은 대장성(오쿠라쇼·재무성의 전신)이 해체의 칼바람을 맞았던 1990년대 후반에 비해 결코 녹록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장성은 메이지 유신 즈음(1869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의 재정과 금융을 이끈 핵심 기관이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대장성 간부들이 금융기관 등에게서 받은 과잉 접대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관료들이 수뢰 혐의로 연거푸 체포됐고, 수장인 대장상도 그만뒀다. 자살하는 사람도 나왔다.

결국 98년 4월 간부를 포함해 112명이 정직과 감봉 처분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대장성 해체론이 높아져 결국 그해 6월 금융감독청(현 금융청)이 대장성에서 분리됐다. 또 정부 조직 개편이 단행된 2001년 대장성의 이름은 재무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재무성은 대장성 시절부터 이어온 ‘최강 관청’,‘관청 중의 관청’으로서의 지위를 이어나갔다.

관료들 중에서도 최고의 수재와 에이스들만 모인다는 자존심은 여전했다.

여기자에게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한 후쿠다 차관, 모리토모 문서 조작으로 물러난 사가와 전 국세청 장관은 1982년 대장성 입성동기다.

이 82년 동기들만 해도 전체 27명 가운데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 16명,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이 6명이다.

그 밖엔 교토(京都)대,오사카(大阪)대, 와세다(早?田)대,게이오(慶應)대,히토츠바시(一橋)대가 각각 1명씩이었다.

특히 이중 후쿠다 차관의 경우 도쿄대 법학부 출신으로 공무원 시험뿐만 아니라 사법시험까지 합격한 ‘초 엘리트’다.

일본을 대표하는 이런 엘리트 군단이 황당한 스캔들에 잇따라 휩싸이는 원인과 관련해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2014년 이뤄진 아베정권의 내각인사국 신설이다.

과거 각 부처의 판단에 맡겼던 정부부처 심의관급 이상 간부직원 600명의 인사를 '아베 총리관저'가 사실상 장악했다.

중앙일보

국회에 출석한 아베 신조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인사권앞에 관료사회는 ‘충성 경쟁 모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머리 좋은 재무성이 그 경쟁의 선두에 섰다.

아베 총리와 총리 관저의 뜻을 미리 헤아려 ‘알아서 긴다’는 이른바 관료들의 ‘손타쿠(忖度)’문화가 모리토모ㆍ가케학원 스캔들에서 속출했다.

격해진 충성 경쟁속에서 79년 재무성에 함께 들어온 동기들 중 세 사람이 연이어 사무차관에 오르는 전례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기형적인 인사가 속출한 것이다.

정치가 인사로 관료를 주무르면서 재무성에 정치 바람이 덮쳤고, 결국 조직이 박살날 위기로 내몰렸다.

재무성의 추락은 단순히 조직의 위기에만 멈추지 않고 재무성이 주도하는 정책의 위기로도 번지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6월까지로 예정했던 새로운 재정건전화 계획 책정,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된 사회보장제도 개혁 방안 마련, 특히 2019년 10월로 미뤄진 소비세 인상을 단행할지의 최종 결정 등에도 큰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무성은 "재정건전화를 위해선 소비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사고만 치는 재무성이 왜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느냐”는 국민들의 불만은 더 커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