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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뒷북경제]꼬리를 무는 대한항공 밀수 의혹···비단 여기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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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 대상 VIP 불시 검사 사실상 안 받아

서울경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대한항공을 활용해 세관 신고를 거치지 않고 각종 물품을 들여왔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고 제기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있다면 귀국 비행기에 내려 손바닥 만한 세관 신고서를 써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부친 짐을 찾아 마지막에 입국장으로 향할 때 세관 직원들에게 제출하는데요, 대부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과하지만 신혼여행객이나 일부 해외여행 중 과하게(600달러 이상) 물건을 산 경우라면 그 순간 가장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술이나 기념품을 기준 이상으로 들여오다 걸리면 가산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마음이 약한 많은 귀국 승객들은 아예 세관에 신고하고 초과분에 대한 세금을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밀수 의혹들은 왜 나왔을까요. 바로 마지막 순간 세관의 불시검사를 받을 일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유유히 각종 물건들을 들여올 수 있었다는 게 세정당국과 공항, 항공업계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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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밀수 방법은 이렇습니다. 특정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게이트 앞에 의전직원 A가 대기하다 짐을 넘겨받습니다. 승객이 출입국 심사를 받는 동안 의전직원 A는 짐을 들고 상주직원용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합니다. 수하물(부치는 짐) 찾는 곳에서 다시 만난 의전 직원 일행은 마지막 세관을 지나는데 별다른 제지 없이 입국장으로 빠져나갑니다. 일반 승객들의 경우 세관 직원이 불시검사자로 지정하면 가방을 개방해 샅샅이 내용물을 보여줘야 하는 것과 다르지요. 입국 체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세관 직원과 공항에 상주하는 항공사 직원들은 서로 얼굴을 잘 안다”며 “의전 직원이 붙으면 당연히 항공사 최고위급이나 내로라할 사람이란 것을 세관에서도 잘 알기 때문에 불시 검사를 하지 않는 게 관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항 직원이라고 누구나 탑승구역에서 입국장까지 쉽게 물건을 가져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면세점이나 은행 환전소 등에서 일하는 일반 공항 근무자는 승객과 분리된 별도의 출입구를 이용하는 데 이곳을 지나려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휴대품도 엑스레이 촬영을 합니다. 일반 직원이 면세품을 몰래 들여오다가는 적발되는 구조죠. 또 비행기 화물칸으로 부치는 짐은 반드시 엑스레이 검사를 받는다. 세관은 해외 주요 쇼핑지역이나 테러우범국가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에 대해 탑승객 전체의 수하물을 살펴보는 불시 전수검사도 시행하지만, 의전 대상 승객이 전수검사를 받는 일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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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의전 직원이 들어주는 특별한 짐만 공항 밖까지 무사통과가 보장되는 셈입니다.

이런 관행은 오래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립니다. 수년 전까지 최고위층이 아닌 공항·항공사·세관 직원들도 반입 허용규모 이상 물품을 들여오며 ‘눈인사’만으로 불시 검사를 피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한 관계자는 “항공사 의전직원이나 요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깔린 점도 암묵적으로 불시검사를 피하는 요인이었다”며 “최근 문제가 제기된 이상 세관의 검사도 강화되겠지만 이런 시스템에서는 언제든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항공사 의전직원들은 자사 임원들만 마중나가는 게 아닙니다. 정관계 인사나 대기업 총수들도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 잠재적 고객이기 때문이죠. 결국 대한항공 뿐만 아니라 다른 항공사, 혹은 다른 주요 고객들도 이런 방식이라면 유유히 관세를 물지 않고 값비싼 사치품을 들여올 수 있다는 겁니다.

비단 수하물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화물기 편이나, 아예 상주직원을 통하는 방식으로 해외에서 각종 물품을 밀반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위층의 이런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합니다. 만일 600달러를 살짝 넘겨 값비싼 세금을 물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노가 더 클 수도 있겠습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법 앞에서는 평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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