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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찌가 쭉 올라올 때의 쾌감, 막판 역전슛처럼 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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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이중생활] '50년 낚시광' 농구대통령 허재

"다혈질 허재가 낚시한다고 하면 술 먹으러 가는 것 아니냐며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아내가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 왜 살생하냐며 싫어하긴 하죠

농구와 낚시, 뭐가 더 좋냐고요? 당연히 농구죠, 제 밥줄이니까"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 짜증 나게."

허재(53)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 2011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당시 중국 기자에게 "중국 국가가 나올 때 한국 선수들이 움직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다. '농구 대통령 허재'의 다혈질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 일화다.

그래서 놀랐다. 그의 취미가 낚시란다. 최근 경기도 안성의 한 저수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채 조용히 앉아 있는 허 감독을 찾아갔다. 그가 불같이 화를 낼 걸 각오하고 '허재와 낚시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낚시 좋아한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네가 술 마시러 가는 거지, 무슨 낚시냐'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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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기도 안성의 한 저수지에서, 꽃은 물론 낚시와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허재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이 자리를 폈다. 농구장에서 그렇게 호통을 치던 허 감독이 낚싯대 앞에선 조용히 찌만 바라봤다. 허 감독은“다들 안 어울린다고 하지만 낚시는 유치원 시절부터 이어온 취미”라고 말했다. 올해 그의 나이가 53세이니 낚시와 반백 년 가까운 인연을 맺은 셈이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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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감독은 낚시 경력을 뜻하는 조력(釣歷)이 50년 가까이 됐다고 한다. 농구공보다 낚싯대를 더 일찍 잡았다는 얘기다. "유치원 시절부터 낚시광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그 매력에 푹 빠졌어요. 주말마다 아버지가 낚시 안 가면 그게 정말 싫을 정도였으니까."

허 감독 농구 인생의 결정적 두 순간을 좌우했던 것도 낚시다. 용산고 시절 이미 초고교급 스타였던 허 감독은 명문대들의 스카우트 공세에도 중앙대 입학을 결정했다. 당시 중앙대 정봉섭 감독이 허재 아버지와 낚시 친구로 지내며 마음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허 감독이 1997~98 시즌 준우승팀(기아) 소속으론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뒤 외부 연락을 끊고 보름 동안 머물다 이적을 결심한 곳도 바로 낚시터였다. "밤에 낚싯대 대여섯 개 펴놓고 찌 보고 있으면 너무 예뻐요. 거기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삼겹살 두 줄 올려놓고 소주 한 잔 마시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이 싹 정리된다니깐."

한번 말문을 여니 낚시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골프채는 절대 안 사는데 낚싯대 사는 데 수천만원 쓴 거 같아요. 내 낚싯대가 포인트까지 안 닿으면 성질 나서 새로 사버렸거든. 예전에 낚시 월간지에서 표지 모델 나오면 풀 세트 준다고 했는데 귀찮아서 거절한 게 지금 조금 후회가 되네. 참, 조만간 낚시 조끼를 만드는 회사와 홍보 모델 계약을 해요.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이 내가 낚시광이라고 알려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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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가운데) 감독이 지난 2016년 진천선수촌에서 첫째 아들 웅(왼쪽), 둘째 아들 훈과 함께한 모습.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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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감독이 지금껏 잡은 최대어(最大魚)는 43㎝짜리 붕어다. 당시 찍은 동영상이 그의 휴대폰에 소중하게 저장돼 있다. 허 감독은 "소주 한 잔 마시고 자다가 새벽 3시쯤 일어나 낚시하는 맛이 최고"라며 "찌가 쭉 올라올 때 쾌감은 농구 막판 역전슛처럼 짜릿하다"고 했다.

낚시는 허 감독과 그의 아버지를 이어줬지만, 허 감독이 꾸린 가정에서 낚시는 환영 받지 못하는 취미다. 허 감독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아내는 낚시 간다고 하면 매번 '왜 살생을 하느냐. 애들한테도 안 좋다'고 말한다"며 "두 아들도 낚시를 영 재미없어하더라"고 말했다. 그의 아들 허웅(25·상무)과 허훈(23·KT)은 아버지에 이어 프로 농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허 감독은 두 아들 대신 은퇴 후 음식점을 운영하는 중대 농구부 후배와 낚시 여행을 다닌다.

화제를 낚시에서 '본업'인 농구로 바꿨다. 그러자 허허실실 했던 얼굴이 진지한 대표팀 감독으로 확 바뀌었다. 허 감독은 오는 8월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 사상 첫 2회 연속 우승을 해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다. 선수 시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보지 못한 그는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특별 귀화로 대표팀에서 뛰게 된 라틀리프(29)와 다른 선수들이 팀워크를 맞추는 게 관건"이라며 "아시안게임에서 전 국민적 스타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끊임없이 따라붙는 게 '두 아들 특혜설'이다. 20일 대한농구협회는 남자 대표팀 훈련 참가 대상자 16명을 발표했다. 그중엔 허 감독의 두 아들이 포함됐다. 허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평생 욕을 먹은 사람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런 말 들으면 상처를 받네요. 기술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감독 마음대로 뽑는 건 불가능해요. 가끔 '걔네(두 아들)가 못하면 욕할 수도 있는데, 하는 거 보지 않고 욕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인터뷰와 낚시를 겸한 지 다섯 시간. 취기가 약간 오른 그에게 '농구와 골프, 낚시 중 어떤 게 가장 좋으냐'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골프보다는 낚시가 확실히 더 좋지. 농구랑 비교하면? 음, 그러면 농구! 내 밥줄이니까."

[안성=석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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