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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중간상은 후리고 정부는 뒷짐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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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한판(30개)에 1만원까지 치솟았던 달걀값이 1년 만에 큰폭으로 떨어졌다. 일부 매장에선 1000원대에 팔리기도 했다. 왜일까. 지난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산란계 36%가 살처분되자 이후 양계농가가 무분별하게 생산량을 늘린 탓이다. '자업자득'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농가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상황이 쉽게 나아지긴 어려워 보인다. 60g 작은 달걀에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많아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양계농가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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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겠다."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살충제 달걀로 몸살을 앓았던 양계농가가 이번엔 생산과잉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며 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부도, 소비자도 반응이 영 마뜩잖다. "스스로 해결하라" "달걀값이 폭등할 땐 실컷 배 불리더니 이제와 죽겠다는 소릴 하냐"는 날선 비판 때문이다.

하지만 양계농가가 처한 환경이 딱히 좋지만은 않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0일 달걀 평균 소비자가격은 4072원(특란 30개 기준)이었다. 지난해 4월 10일 가격인 7509원보다 45.8% 떨어졌다. 한때 금란金卵이라고까지 불리며 귀한 대접 받던 달걀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는 공급이 부족했고, 지금은 공급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시간을 2016년 말로 돌려보자. 당시 발생한 AI로 전체 산란계 중 30% 이상이 살처분됐다. 시장에서 달걀이 구하기 힘들어진 건 당연지사. 달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12일엔 평균 소비자가격이 9543원까지 급등했다.

시장에 유통할 달걀이 부족하자 살아남은 양계농사는 계사를 신축하거나 증축해 사육 마릿수를 늘렸다. 일부에선 병아리를 수입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도 고공행진하는 달걀값을 막아보겠다며 수입란을 시장에 풀었다.

공시가격 그 이면의 '흥정'

욕심이 지나쳤던 걸까. 무분별하게 늘어난 산란계 탓에 달걀이 과잉 생산됐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6년 4분기 7104만 마리였던 사육 산란계 마릿수는 살처분으로 2017년 1분기 5151만 마리로 크게 줄었지만 이후 점점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4분기엔 7271만 마리로 급증, 1분기 대비 무려 41% 증가했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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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격도 가격이지만 산지가격 상황은 더 안 좋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10일 달걀 산지가격은 783원(특란 10개 기준)을 기록했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10일 1881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58.4% 떨어졌다.

문제는 실제 양계농가가 거래하는 실제 가격은 공시가격보다 더 낮다는 데 있다. 중간상인들(수집상)이 가격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달걀 개당 가격은 20~30원씩 더 떨어진다. "공시가격이 100원이라고 하면 실제 농가가 거래하는 가격은 70~80원"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달걀값이 떨어지면 양계농가 안팎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가격 하락의 원인인 넘쳐나는 닭과 달걀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별다른 게 아니다. 산란계 수를 조절하고, 양계농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불투명한 유통과정을 손보면 된다.

일단 양계협회는 10만 마리 이상을 사육하는 농가에 15%를 자율감축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양계협회가 계산하는 적정 산란계는 4700만 마리인데, 현재 그 수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다 같이 살아야 하는데, 지금 이대로 가다간 다 힘들어진다"면서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55주령 이상 닭은 렌더링(닭을 고온으로 소각 처리해 비료로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한 예다. 닭장(케이지)에 입주시킬 때 기존 대비 10%씩 감축하는 방법도 꾸준히 계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농가에 자율로 맡기는 것이지 강제성이 없다. 양계협회가 정부에 팔리지 않는 달걀을 가공하거나 보관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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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처럼 여겨지는 중간상인들의 '가격 후려치기'를 막기 위해선 달걀유통센터인 GP센터(Grading and packing Center)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농가에서 출하하는 달걀을 GP가 관리하면 중간상인들이 농가와 직접 거래하는 걸 막을 수 있고, 농가로선 위생적인 달걀을 투명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정부도 지난해 "농장에서 출하하는 모든 달걀을 GP를 통해 수집ㆍ판매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협회 관계자는 "약 50% GP가동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유통 과정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만 보는 농식품부


정부가 '유통조절명령'을 발동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농수산물 가격 폭등이나 폭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유통에 개입해 해당 농수산물의 출하량을 조절하거나 최저ㆍ고가를 임의로 결정하는 제도다. 2003년 제주도 감귤에 5년간 적용된 적이 있지만 축산물에 검토된 적은 없다. 양계협회 측은 산란계 조절을 위해선 농가와 협회뿐만 아니라 정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자율적으로 감축하라"며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달걀값이 폭등했을 때와는 정반대 태도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는 "농식품부가 과연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는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살충제 파동으로 가격이 폭등했을 때 정부는 바로 '수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시장에서 가격 조절을 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한데, 소비자들 눈치만 보느라 정부는 수입란을 들여왔다. 그러더니 이번엔 손을 놓고 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는데도 정부는 정책적으로 전혀 대응하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장관 자리가 공석인 것도 지금 위기에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아울러 정 연구자는 "정부가 생산농가들이 따라갈 수 없는 프로세스를 자꾸 내놓는다"고 지적했다. "'유통조절명령' 'GP센터' 등 다양한 얘기들이 거론됐지만 큰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반짝하고 후속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달걀자조금' '렌더링 지원' 등 농가에서 요구하는 것과 달리 정부는 농가들이 따라가기 힘든 난각코드(생산정보 식별표기) 같은 프로세스만 짜고 있다. 그래놓곤 또 '나 몰라라'다. 이렇게 정부가 정책적으로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가뜩이나 달걀업계를 넘보는 대기업들이 힘 잃은 소규모 양계농가를 덮칠까 우려스럽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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