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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왕실견의 세계]②조선의 왕들은 어떤 동물을 길렀을까?...실록 속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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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선시대 화가 이암이 그린 강아지그림(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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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안에 사냥개를 많이 길러서 때로는 조회(朝會) 때에 함부로 드나드니,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사냥개들이 궁궐 뜰에 무리를 지어 짖는다 하는데, 남이 보기에도 또한 아름답지 못할 뿐더러 이것들을 길러 장차 어디에 쓰시려는 것입니까"/"왕은 항상 내정(內政)에 강아지 한 마리를 길렀는데, 그 턱밑에 방울을 달아 강아지가 방울 소리를 듣고 놀라 뛰면 이것을 매양 재미로 여겼다"

위에 나온 내용들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기록들로 개를 좋아하던 연산군에게 신하들이 상소하거나 당시 정황을 기록한 내용들이다. 특히 사냥에 쓰이던 동물들을 무척 좋아했다는 연산군은 매와 말, 개를 많이 길렀으며 특히 사냥개들은 대전에서 조회할 때도 드나들정도로 궁에서 많이 풀어서 길렀다고 한다. 조정대신들이 극력 항의했지만, 이에 아랑곳않고 그의 동물사랑은 이어졌다.

이것은 단순히 연산군이 동물을 좋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 성종 때 구축된 강력한 신권(臣權)을 최대한 견제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성종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해서 매를 기르거나 몽골에서 낙타를 수입해보려하거나 말을 키우려 하는 등 동물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는 기록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그때마다 신하들은 이에 반발하며 축생에 관심을 쏟다간 망국의 길로 빠진다고 공격했다. 결국 성종은 자기 마음대로 새 한마리조차 길러보지 못하고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연산군에게 동물을 마음대로 기르는 것은 단순히 순수하게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대놓고 마음껏 반려동물을 길렀던 임금은 드물다. 대부분 왕권이 신권을 완전히 압도해 전제 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임금들만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다. 대부분 왕권이 막강했던 태조, 태종, 연산군 등 왕조 초창기 임금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

조선 후기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임금으로 알려진 숙종 역시 오늘날에는 조선시대 고양이 집사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애묘가였다. 그는 금덕이와 금손이란 이름의 고양이를 길렀다고 알려져있는데, 정사를 볼때도 끌어안고 쓰다듬었으며 먹이도 손수먹여 길렀다고 한다. 금덕이가 죽자 장례식도 치뤄주고 애도시도 지어줬다. 금덕이의 자식인 금손이도 사랑을 받다가 숙종이 먼저 죽자, 음식을 거부하고 왕을 따라 죽었다. 이에 당시 대왕대비의 명으로 숙종의 묘인 명릉 옆에 묻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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