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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장애, 차별없는 세상 下-해법은 없나]소리치는 아이, 쳐다보는 사람들…엄마는 세상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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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엄마 동행 취재…험난한 일상

-덩치 큰 아들과 손잡고 걷자 주변에선 수근수근

-아들에게 ‘괜찮아’ 타이르지만 …애끓는 속마음

-주말에 집에만 있는 아들…“갈 곳 없어요” 한숨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자폐성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현우(26) 씨의 어머니 김경미(52)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서울 송파구의 자택 근처 놀이터 앞에서 바닥에 웅크려 아들의 신발 끈을 묶어주고 있었다. 짧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호소하는 삭발식에 참여했다. 해놓고 낯설고 초라해 보여 최근 노랗게 염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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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전 발달장애인 현우 씨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고 있는 어머니 김경미 씨. [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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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이날 유일한 일정은 근처 교회에 가는 일이었다. 엄마는 다 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걸었다. 김 씨는 아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손을 잡고 걷는 게 낯설 정도라고 했다. 평소엔 아들이 한번 뛰기 시작하면 그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 애를 먹었었다. 그런데 최근 현우 씨가 계속해서 크게 소리를 치는 상동행동을 보여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먹였더니 다리를 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절뚝거리면서 걷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에서 교회까지는 단 두 정거장. 현우 씨는 교회 가는 길이 익숙한 듯했다. 단번에 지하철 승강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수시로 튀어나오는 “악”소리가 문제였다. 지난 2월부터 나타난 이 증상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있다. 한창 증상이 심할 때는 24시간 소리를 지르고 고온으로 숨을 못 쉬어서 탈진을 했다. 결국 지난달에는 응급실에 실려갔다. 하지만 병원은 저소득층에게는 1인병동을 줄 수 없다고 내쫓았다. 갈 곳이 없었던 현우 씨는 결국 정신병동에 일주일간 입원하기도 했다.

지하철 안에서 그가 현우 씨가 큰소리를 내자 사람들은 일제히 쳐다봤다. 다 큰 아들을 달래는 어머니를 보면 그가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속 됐다. 몇몇 사람들은 뒤를 돌아가며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썼다.

김 씨는 아들의 이러한 행동이 어쩌면 ‘나를 쳐다보지 말라’는 아들만의 표현방식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교회에 도착하자 마자 현우 씨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예배가 시작하자마자 그는 앞에 나가 마이크를 들고 찬송가를 불렀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한 달에 한번 엄마와 함께 노래방을 찾는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이기찬의 ‘바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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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씨가 교회 예배시간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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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 30분. 점심시간에 뭐가 먹고 싶느냐고 묻자 현우 씨는 “돈가스!”라고 웃으며 말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 현우 씨의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살짝살짝 뛰었다. 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아프기 전에는 저보다 훨씬 빠르게 뛰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현우 씨의 유일한 취미는 서울 시내 방송국을 찾아 다니는 것. 방송국 투어를 나서면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아 어머니가 그를 찾아 헤맨 적도 많다. 방송국에서 그가 주로 보는 것은 ‘뉴스’다. 왜 뉴스가 좋으냐고 물으니 ‘뉴스’라고 따라 말했다. 그의 밝은 미소를 보니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오후 2시. 집으로 돌아온 현우 씨는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아 유튜브를 켰다. 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에 눈을 떼지 못했다. 보통 집에선 유튜브 방송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면서 여가 시간을 보낸다. 한 20분쯤 지나자 그는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들고 MBC를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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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현우 씨는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유일한 취미다. [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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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 집에만 있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답답할 뿐이다. 요즘에는 몸이 안 좋아 방송국 투어도 하지 않자 더욱 안쓰럽다. 경미 씨는 “발달장애인은 정말 갈 곳이 없다. 센터에 가려고 해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하루빨리 지역사회에서 어울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삭발식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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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경미 씨. [정세희기자/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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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한 엄마를 보고 현우 씨는 “군인? 군대가?”라고 물었다. 엄마의 눈물을 쏙 들어가게 하는 질문이었다. 현우 씨 어머니는 ‘평소와 다른 엄마가 걱정돼요’라는 말로 들렸다고 했다. 서로를 마주한 둘은 한참을 말 없이 웃으면서 쳐다봤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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