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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하버드대도 진땀승… 美 전설의'죄수 토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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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포함된 노퍽 죄수팀 '선거인단제 폐지' 주제 대결

1933년 생긴 교도소 '토론클럽'… 맬컴 X도 토론팀 멤버로 활동

'미국 대선에서 선거인단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지난달 31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이 주제를 놓고 한 시간의 토론 대회가 열렸다. 낡은 강당의 나무 무대 한쪽엔 하버드대 토론팀 4명이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이들은 1급 살인범 3명을 포함한 종신 징역 기결수 4명. 장소는 주내(州內) 최대 교도소인 MCI-노퍽 교도소. 질 러포어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주간지 뉴요커 최신호에 이날 토론을 보고 기고한 글에서 "무대 위 토론자 책상에는 종이 외에는 일체의 펜도 허용이 안 됐고, 흉기로 변할 수 있는 사회봉도 없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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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팀은 열악한 상황에서 토론 대회를 준비했다. 교도소 운동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토론자들은 휴식 시간에 만나 토론 방향을 놓고 의견을 나눌 수 없었다. 교도소 측은 주 1회 4명이 한 시간 모이는 것만 허락했다. 인터넷 접근도 금지돼 모든 자료는 친지들이 외부에서 가져다줬다.

사회자가 밝힌 토론 규칙은 이랬다. "기절하거나 충돌이 없는 한 아무도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습니다." 토론은 서로 제안과 반박을 네 차례 번갈아 가며 하는 '영국 의회식'으로 진행했다.

하버드팀은 선거인단제 폐지 '찬성' 주장을, 노퍽 죄수팀은 '반대' 주장을 펼쳤다. 토론 과정에서 하버드팀이 논리의 흐름을 잃기도 했고, 죄수팀은 암기한 내용을 까먹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심판진의 최종 점수는 하버드 68점, 노퍽 61점.

사실 노퍽 죄수팀은 역사가 꽤 된 팀이다. 교도소 측은 1933년 수감자들의 교화·재활 목적으로 토론 클럽을 시작했다. 1948년 이 교도소에 수감된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X도 토론팀 멤버였다. 그는 나중에 "(토론팀 경험 때문에) 남을 설득하며 사는 인생을 결심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노퍽 죄수팀은 1966년까지 모두 144번 승리했고 8번 지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하버드·예일·프린스턴·육사 토론팀이 모두 한두 번씩 이 팀에 무릎을 꿇었다. 1959년 미 순회 토론 시합에서 무패(無敗) 행진을 벌이던 옥스퍼드대도 노퍽 교도소에서 기록이 깨졌다.

그러나 1970년대 '수감자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이론이 우세하면서 노퍽 죄수팀도 해체됐고, 2016년에야 재결성됐다. 노퍽팀은 첫해 보스턴 칼리지를 상대로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에 과세해야 한다'는 주제를 놓고 싸워 이겼고, 작년 9월엔 '진통제 중독 사태, 제약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제를 놓고 MIT대 토론팀과도 붙었다. 결과는 노퍽팀 한 명이 토론 시간을 초과하는 바람에 빚은 '기술적' 패배였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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