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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트럼프, TPP-관세제외 거부… 빈손 귀국 아베 ‘성희롱 회오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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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美의 TPP복귀 추진했지만 트럼프 “양자협상이 좋다”에 불발

되레 꺼리던 ‘FTA 논의’ 혹 붙여… 정상회담서 ‘납북자 거론’은 성과

성희롱 논란 日재무성 차관 사임… 감싸던 아소 퇴진론도 거세져

동아일보

“다른 분들은 제 목소리라고 하는데, 저는 제 목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18일 오후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사진)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의 설명을 듣던 기자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지난주 한 주간지의 폭로로 여기자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을 한 의혹을 받던 후쿠다 차관은 이날도 “그렇게 지독한 말은 한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다만 그런 보도가 나온 것 자체가 부덕으로 직책을 완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주 시사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는 후쿠다 차관이 밤에 여기자들을 불러내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 “호텔에 가자”, “키스하자” 는 등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후쿠다 차관은 부인했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말로 충분히 주의를 줬다”며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13일 주간지 측이 인터넷에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녹음파일에서 후쿠다 차관이 “오늘 안아도 되느냐”, “손을 묶어도 되느냐”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쿠다 차관은 “업무가 끝난 뒤 가끔 여성이 접대하는 장소에 가서 말장난을 한 적은 있다”고 변명했으나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재무성은 16일 출입 언론사에 공문을 보내 “피해를 본 여기자가 있으면 조사에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무성 사무차관 낙마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일본의 뒤처진 인식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무풍지대였던 일본에서도 운동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자사 기자의 피해를 묵살한 언론사, 증거가 나와도 일단 부인하고 보는 가해자, 2차 피해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 등이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야당들이 아소 부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가운데 마이니치신문은 19일 “재무성 해체론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성희롱 사무차관의 사임으로 인한 후폭풍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도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아베 총리가 급히 미국 방문길에 오른 것은 국내적으로는 모리토모(森友), 가케(加計) 등 사학스캔들 재점화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반전시키고 국제적으로는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저팬 패싱(배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방미는 지난달 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과의 전격 회담 의향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17, 18일 이틀에 걸쳐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을 끝낸 아베 총리의 손에 남은 결과물은 “(5월 말∼6월 초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 하나인 셈이 됐다.

안보 분야에선 작은 선물을 챙겼지만 통상 분야에서는 ‘커다란 혹’을 붙인 채 귀국하게 됐다. 일본이 내심 기대했던 수입철강 고율관세 대상국 제외 요청을 사실상 거절당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일본이 꺼리는 미일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위한 협의체 마련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미일 통상 문제로 아베 총리를 몰아붙였다. 이미 회담 전 워킹런치 자리에서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크다”라며 “그것을 제거하고 가능한 한 가까운 미래에 균등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일 FTA 요청을 경계하며 미국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촉구할 방침이었으나, 트럼프는 전날 밤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및 한국은 미국의 TPP 복귀를 바라겠지만 미국에는 양자협상이 더 좋다”고 적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아베 총리와의 오찬장에서 “우리는 북한과 매우 높은, 극도로 높은 수준의 직접 대화를 나눴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자가 이달 초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과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간 대북 강경 일변도를 주장해 온 아베 총리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아사히신문은 19일 아베 총리가 한반도 문제에서 향후 대북 정책의 방향성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서영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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