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북한, 변하지 않은 북한] ③ 김정은의 사람들 당·정·군 장악
김정은은 3월 말 전격 방중 때도 군 고위 간부를 배제했다. 2000년 김정일이 집권 후 처음 방중할 때는 군부의 쌍두마차인 조명록 총정치국장과 김영춘 총참모장이 수행했다. 조명록은 김정일 집권기에 사실상의 2인자였다. 총정치국은 군 내 인사와 사상 통제권을 갖는 ‘군(軍) 안의 당’으로 불린다. 하지만 올해 들어 위상이 뚝 떨어졌다.
군 위상 저하, 김정은 방중 때도 배제
김정은 시대 핵심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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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권력 엘리트 내 군부의 위상 저하는 김정은 시대의 특징이다. 당 우위의 사회주의 정권 원점으로, 김일성 시기로 돌아갔다. 집권 내내 군부를 우대하고 선군정치를 폈던 김정일 때와는 딴판이다. 김정일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등 국가 비상상황에서 군부를 통치와 건설의 핵으로 삼았다. 김정일은 96년 “믿을 수 있는 건 군대뿐”이라고 했다. ‘총대 정신’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김정은의 당 중심 체제 정비는 내치의 정상화로 보인다.
인민무력상 6번 교체, 충성심 유도
김정은은 당·정·군 요직도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 일정 기간 후견인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은 빗나갔다. 2011년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를 지켰던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이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상 당시 직책)의 운명은 엇갈렸다. 이영호와 장성택은 2012년과 2013년 반당 종파 분자로 몰려 처형됐고, 나머지도 하나둘씩 물러났다.
8년 전 정치국 32명 중 5명만 남아
세대교체는 선명하다.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에 오른 32명 가운데 지난해 10월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용해 당 부위원장 등 5명에 불과하다. 김정일 때 국정 최고기관인 국방위원회(현 국무위원회·12명)는 전원 교체됐다. 인민무력성, 총정치국, 총참모부, 해공군사령관 및 전략군 사령관 등 군의 주요 지휘관도 마찬가지다. 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공안 조직인 국가보위성과 인민보안성 수장도 새 얼굴이다. 원로 그룹을 통치의 병풍으로 활용하는 대신 가차 없는 처형과 형벌을 통한 공포 정치와 발탁·승진의 채찍·당근으로 권부 내에 김정은 사람을 심고 있는 셈이다.
‘후견인 정치’ 관측 벗고 권력 공고히
세대교체로 정치국 구성원 나이는 2010년 72.73세에서 지난해 68.9세로 3.83세 낮아졌다. 정부 당국자는 “7년이 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성원들이 11세가량 젊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당 비서였던 김기남·최태복 등 80대 후반 인물들이 퇴진하고 60대의 인물 충원과 더불어 30대인 김정은과 김여정이 포진했기 때문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정용수 기자 jeong.yongsoo@joongang.co.kr
<글 싣는 순서>
① 김정은의 선택, 왜 바깥으로 나왔나
② 삼시세끼 해결 목표 대북제재가 발목 잡다
③ 김정은의 사람들 당·정·군 장악
④ 결국은 남북관계 통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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