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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정일 ‘총대 정신’ 지우기…아버지 사람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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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북한, 변하지 않은 북한] ③ 김정은의 사람들 당·정·군 장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맞아 그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김정은은 새해나 각종 기념일에 당·정·군 고위 간부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이번엔 군부 인사들이 수행 명단에서 빠졌다. 관영 매체 보도나 공개 사진 어디에도 군 관계자는 나오지 않았다. 군부 인사는 김정은이 2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을 맞아 참배했을 때도 보이지 않았다. 북한 체제 속성상 최고지도자 수행 여부는 권력의 한 척도다.

김정은은 3월 말 전격 방중 때도 군 고위 간부를 배제했다. 2000년 김정일이 집권 후 처음 방중할 때는 군부의 쌍두마차인 조명록 총정치국장과 김영춘 총참모장이 수행했다. 조명록은 김정일 집권기에 사실상의 2인자였다. 총정치국은 군 내 인사와 사상 통제권을 갖는 ‘군(軍) 안의 당’으로 불린다. 하지만 올해 들어 위상이 뚝 떨어졌다.

군 위상 저하, 김정은 방중 때도 배제
중앙일보

김정은 시대 핵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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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각 총정치국장은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국회) 인사에서 세 명의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에 들지 못했다. 부위원장이던 전임 황병서(현 노동당 부부장)와 달리 평위원에 보임됐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은 지금까지 최고인민회의 주석단을 당→군→정(내각) 순서로 보도했지만 이번에는 당→정→군으로 바꾸었다”며 “당과 국가 체제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군의 위상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 권력 엘리트 내 군부의 위상 저하는 김정은 시대의 특징이다. 당 우위의 사회주의 정권 원점으로, 김일성 시기로 돌아갔다. 집권 내내 군부를 우대하고 선군정치를 폈던 김정일 때와는 딴판이다. 김정일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등 국가 비상상황에서 군부를 통치와 건설의 핵으로 삼았다. 김정일은 96년 “믿을 수 있는 건 군대뿐”이라고 했다. ‘총대 정신’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김정은의 당 중심 체제 정비는 내치의 정상화로 보인다.

인민무력상 6번 교체, 충성심 유도
군부 인사의 부침은 어지러울 정도다. 국방부 장관 격인 인민무력상(현 박영식)은 김정은 집권 이래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1년에 한 명꼴이다. 그동안 김영춘·김정각·김격식·장정남·현영철이 맡았지만 단명하거나 처형됐다. 김일성 집권 46년 동안 5명이, 김정일 17년 동안 3명이 인민무력상을 맡았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총참모장도 마찬가지다. 이영호→현영철→김격식→이영호→이명수로 교체를 거듭했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김정은은 군부 인사를 수시로 단행해 간부를 긴장시키면서 충성심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일선 지휘관이 군벌로 비유될 정도로 비대해진 군부 길들이기와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당·정·군 요직도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 일정 기간 후견인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은 빗나갔다. 2011년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를 지켰던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이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상 당시 직책)의 운명은 엇갈렸다. 이영호와 장성택은 2012년과 2013년 반당 종파 분자로 몰려 처형됐고, 나머지도 하나둘씩 물러났다.

8년 전 정치국 32명 중 5명만 남아
이후론 ‘삼지연 8인방’이 등장했다. 장성택 처형 직전인 2013년 11월 김정은의 삼지연 방문을 수행했던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 김양건 당 비서(사망),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당 부부장), 한광상 인민군 중장(전 당 재정경리부장), 박태성 당 부위원장, 김병호 노동신문사 책임 주필, 홍영칠 당 부부장, 김원홍 전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그들이다. 김정은 사람들의 안위도 무사하지만은 않다. 황병서와 김원홍은 군복을 벗었다. 황병서는 잔뼈가 굵은 조직지도부로 복귀했지만 김원홍은 북한 언론이 ‘동지’라고 하지 않는 점에 미뤄보면 일단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돈줄과 건축물 설계를 책임졌던 한광상과 마원춘도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의 지시에 토를 달았다가 사상교육을 받고 복귀했다. 김정은이 평양의 얼굴인 순안공항을 화려하고 국제적인 수준으로 지으라고 지시했지만 ‘형편에 맞게’ 건설하려다 지시 불이행에 따른 처벌을 받은 것이다.

세대교체는 선명하다.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에 오른 32명 가운데 지난해 10월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용해 당 부위원장 등 5명에 불과하다. 김정일 때 국정 최고기관인 국방위원회(현 국무위원회·12명)는 전원 교체됐다. 인민무력성, 총정치국, 총참모부, 해공군사령관 및 전략군 사령관 등 군의 주요 지휘관도 마찬가지다. 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공안 조직인 국가보위성과 인민보안성 수장도 새 얼굴이다. 원로 그룹을 통치의 병풍으로 활용하는 대신 가차 없는 처형과 형벌을 통한 공포 정치와 발탁·승진의 채찍·당근으로 권부 내에 김정은 사람을 심고 있는 셈이다.

‘후견인 정치’ 관측 벗고 권력 공고히
김진무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김정일 정권 말기 공개활동 수행이 가장 많았던 31명 중 24명은 현재 활동을 중단하는 등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며 “김정일 시대의 각종 기구는 상징적 의미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사에선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있거나 현장 경험이 많은 인물들을 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대교체로 정치국 구성원 나이는 2010년 72.73세에서 지난해 68.9세로 3.83세 낮아졌다. 정부 당국자는 “7년이 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성원들이 11세가량 젊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당 비서였던 김기남·최태복 등 80대 후반 인물들이 퇴진하고 60대의 인물 충원과 더불어 30대인 김정은과 김여정이 포진했기 때문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정용수 기자 jeong.yongsoo@joongang.co.kr


<글 싣는 순서>

① 김정은의 선택, 왜 바깥으로 나왔나

② 삼시세끼 해결 목표 대북제재가 발목 잡다

③ 김정은의 사람들 당·정·군 장악

④ 결국은 남북관계 통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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