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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week&] 스마트폰 카메라로 3년을 기록했다…화담숲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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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리조트 옆 수목원 화담숲

권혁재 사진전문기자가 본 사계절

봄꽃이 가을 단풍보다 다채로와

연분홍 철쭉 아래 금낭화 하트

중앙일보

지난해 4월 29일 촬영한 화담숲의 소나무 정원. 기품 어린 소나무 아래로 선홍색 영산홍과 분홍색 철쭉이 흐드러지고, 정원을 에운 숲은 신록을 머금어 연둣빛으로 반짝인다. 화담숲의 봄은 화려하되 요란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명품이 그러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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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 안의 수목원? 아니다. 스키장 옆의 수목원이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 옆의 ‘화담숲’은 엄밀히 말해 곤지암리조트와 무관한 수목원이다. 화담숲의 주인은 스키장이 아니라 LG상록재단이다. 화담숲은 자연생태계 보전을 위한 LG그룹 차원의 공익사업이다. 여느 수목원과 달리 겨울이면 문을 닫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름에서 화담(和談)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으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호(雅號)이기도 하다.

화담숲은 공공연한 비밀 같은 수목원이었다. 2007년 발이봉(512m) 서남쪽 자락에서 조성을 시작했고, 2010년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소문은 무서웠다. 알음알음 알려진 화담숲은 이내 명소로 거듭났다. 그로부터 3년 뒤 화담숲은 공식 개장을 선언했다. 그 첫 소식을 week&이 알렸다. 가을 들머리, 화담숲의 명물 단풍나무원이 알록달록 물들 무렵이었다. 이제 화담숲은 종종 예약을 받는다. 사람이 너무 몰려서다.

세월이 흘렀고, 마침내 화담숲의 봄을 말한다. 단풍 지는 나무처럼 꽃 피우는 풀도 제법 기운이 붙었기 때문이다. 화담숲의 봄을 3년째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중앙일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화담숲의 사계절을 묵묵히 담아왔다. 남몰래 쟁여놨던 화담숲의 봄을 예 풀어놓는다.

숲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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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숲에서 피는 봄꽃을 개화 시기에 따라 배치했다. 금낭화와 황매화(아래 사진) 모두 지난 15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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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숲에서 피는 봄꽃을 개화 시기에 따라 배치했다. 금낭화(위 사진)와 황매화 모두 지난 15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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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은 풀과 나무로 이루어진 정원이다. 인간이 부러 흉내 낸 자연이란 뜻이다. 하여 수목원과 숲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숲은 인간보다 자연과 훨씬 가까운 존재이어서이다.

그러나 화담숲은 숲으로 불려야 외려 마땅하다. 일단 보기에도 숲이다. 수목원은 대체로 평지에 들어서는데, 화담숲은 발이봉 가파른 산자락에 얹혀 있다. 산의 허리, 중턱, 골, 기슭, 마루금이 나무로 빽빽하고 풀로 촘촘하다. 나무 무성했던 산에 다시 나무를 심었고 풀 우거진 흙에 다시 풀을 심었으니 숲이라 해야 맞다. 지금은 사람이 심은 나무가 더 많지만, 사람이 심은 나무도 애초부터 이 산자락에 살았던 나무처럼 자연스럽다. 2013년에도 자연스러웠다. 올해는 5년 전보다 더 자연스럽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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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꽃. 2년 전 4월 30일 촬영했다. 흰 꽃잎과 빨간 꽃잎이 같이 핀 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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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의 화담숲은 벚꽃이 흩날려 어지러웠다. 꽃 진 자리마다 연두색 잎이 올라오겠지만, 연두야말로 봄의 색깔이다. 봄의 숲은 신록으로 다채롭다. 푸른색은 하나의 색깔이 아니다. 봄날의 숲에 들면 알 수 있다. 단풍보다 신록이 더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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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 꽃. 지난해 5월 10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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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꽃. 지난해 5월 14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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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아래 진달래는 붉고, 철쭉은 푸르다.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꽃보다 먼저 돋는다. 두 꽃나무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화담숲 서경섭(54) 숲지킴이가 귀띔했다. 철쭉의 종류인 영산홍이 소나무 아래에서 핏빛으로 흥건하다. 진달래와 철쭉은 화담숲의 봄을 대표하는 꽃나무다. 수목원 어귀 기슭을 따라 7만 그루가 넘는 진달래와 철쭉이 모여 있다. 지난 13일 시작한 진달래·철쭉 축제가 한 달 동안 이어진다.

봄이 농익어도 자작나무숲은 사람이 많았다. 푸르죽죽한 자작나무 꽃은 축축 쳐져 볼품없었지만, 하얗게 빛나는 줄기의 자작나무 아래로 노랗고 하얀 수선화 수천 송이가 만개해 강렬한 색감을 연출했다. 자작나무도, 수선화도 사람이 심은 것이어서 우리의 봄치고는 채도가 높았다.

들여다보다
숲에 들면 나무가 보인다. 이름난 봄꽃도 실은 나무꽃이 대부분이다. 산수유, 매화, 벚꽃 등등 죄 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인간은 크고 화려한 것에 먼저 반응한다.

하나 봄은 땅에서 시작한다. 겨우내 얼었던 흙이 봄바람에 풀어진 틈을 타 잎이 돋고 그 잎에서 꽃망울이 터진다. 봄꽃이 반가운 건 이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이 대견한 자연의 힘을 목도할 수 있어서이다. 진짜 봄꽃은 흙에서 피어난다. 새로운 시작은 낮고 그늘진 곳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화담숲의 봄을 알리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녀석들 덕분이다. 화담숲은 어느새 풀꽃 세상이 되었다. 처음부터 이 산자락에 터를 잡았던 풀꽃과 나중에 사람이 심은 풀꽃이 어울려 자연스러운 숲을 이루었다. 이제는 하나씩 풀꽃 이름을 불러도 될 만큼, 화담숲은 넓어졌고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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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초. 꽃을 촬영한 연도는 다르다. 그러나 꽃을 찍은 계절은 하나다. 4월 중순~5월 중순 핀 봄꽃을 개화 시기대로 나열했다. 개별초가 제일 이르고 매발톱이 제일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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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리매발톱. 꽃을 촬영한 연도는 다르다. 그러나 꽃을 찍은 계절은 하나다. 4월 중순~5월 중순 핀 봄꽃을 개화 시기대로 나열했다. 개별초가 제일 이르고 매발톱이 제일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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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풀꽃을 들여다봤다. 풀숲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하얀 꽃은 개별초고, 바위를 노랗게 덮은 이끼 같은 꽃은 꽃다지다. 개별초도, 꽃다지도 꽃이 새끼손톱보다 작다. 우리 꽃은 이렇게 죄 잘다. 하여 풀꽃을 바라보려면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야 한다.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긴 숨을 참아야 한다. 꽃이 작고 여려 실바람에도 꽃이 흔들린다. 풀꽃은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것도 한참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풀꽃이 어여쁘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인이 아니어도 알 수 있다. 아니다. 어쩌면 꽃을 들여다보는 당신이 이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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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 꽃을 촬영한 연도는 다르다. 그러나 꽃을 찍은 계절은 하나다. 4월 중순~5월 중순 핀 봄꽃을 개화 시기대로 나열했다. 개별초가 제일 이르고 매발톱이 제일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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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남성. 꽃을 촬영한 연도는 다르다. 그러나 꽃을 찍은 계절은 하나다. 4월 중순~5월 중순 핀 봄꽃을 개화 시기대로 나열했다. 개별초가 제일 이르고 매발톱이 제일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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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들여다보니 반가운 얼굴이 한둘이 아니다. 봄꽃의 여왕 얼레지가 특유의 기품 어린 자세로 오도카니 서 있고, 가장 독성이 강하다는 천남성이 뱀대가리 모양의 꽃을 쳐들고 있다. 빨간 하트 모양의 금낭화와 은빛 방울 매단 은방울꽃도 어렵지 않게 띈다. 하나같이 귀한 봄꽃들이다. 이 녀석들 보겠다고 봄이면 강원도고, 제주도고 깊은 숲을 헤집고 다녔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서울에서 30분 거리의 수목원에서도 쉬 만날 수 있으니.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이용정보=화담숲은 곤지암리조트 정문 안에 있다. 리조트 곳곳에 화담숲을 왕복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정차한다. 화담숲 개장시간은 주말 기준 오전 8시~오후 6시. 주중에는 개장 시간이 30분 늦다. 폐장 1시간 전에는 입장해야 한다. 입장료 어른 1만원. 화담숲 안에서 모노레일이 운행한다. 화담숲을 한 바퀴 도는 순환코스 요금은 어른 8000원. 발이봉 중턱 2승강장까지 편도 요금은 어른 4000원. 모노레일 순환코스를 타면 20분 만에 내려오지만, 5.2㎞ 길이의 탐방로를 다 걸으면 2시간쯤 걸린다. 031-8026-6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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