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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7번이나 이사해야 했던 국립중앙박물관 수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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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역사 속 오늘] 오늘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 4월 19일

경복궁 경내 국립박물관 시대 막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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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기의 춘궁리철조여래좌상(보물332호)이 대형크레인에 의해 옮겨지고 있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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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유물 9만 9622점·보험가액 7000여 억 원·이사비 52억 원·이전 작업 연7700여 명 동원”

8개월에 걸친 유물 ‘대이동’ 작전은 규모로 보나 금액으로 보나 전례 없는 수준이었다. 오늘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 4월 19일, 경복궁 안 국립박물관 시대가 막을 내렸다. 용산에 위치한 새 박물관으로 이전 개관에 앞서 사상 최대 규모의 유물을 새 수장고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됐다.

유물들은 5t 차량 490여 대 분량으로 국보와 보물만 396점에 달했다. 한지-솜포-소창지-오동나무 상자-알루미늄 상자 순으로 4~5겹 포장한 유물은 무진동 차량으로 옮겨졌다. 운송 차량에는 박물관 직원과 무장 호송원이 탑승했고, 경찰이 이들을 앞뒤에서 경호했다. 크기가 큰 유물들은 전시실 벽을 헐고 특수 차량으로 통째로 옮겨졌다. 이로써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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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종 보신각종(보물 제2호, 24톤)이 서울 용산구 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15세기 조선 초에 만들어진 보신각종은 제야의 타종 행사로 유명했으나 균열 문제로 1986년부터 타종을 중단한 채 보존해 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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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립박물관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여러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면서 일곱 번에 걸쳐 이사를 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시 한국 사회가 겪었던 혼란과 격동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 혼란기에 유물을 일괄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유물의 안전 관리에 빨간불이 여러 차례 켜졌고, 권력의 압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치욕의 역사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박물관은 1909년 11월 대한제국 황실이 창경궁에 문을 연 제실 박물관이다. 황실은 1908년 당시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 등 황실 고가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박물관을 만들었다. 애초 설립 당시에는 대중에게 공개할 목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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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동물원과 함께 있던 경성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제공 (왼쪽). 제실박물관 조선부 신설을 보도한 신문 기사. <부산일보> 1933년 2월 23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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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관람을 위한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일본에 의해서였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일본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꾸며 위락시설로 바꿨다. 아울러 창경궁 경내에 박물관도 추가로 세워 동물원, 식물원과 함께 일반에 동시 공개했다. 1912년 3월 당시 소장품은 1만 2230점에 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은 창경궁에 세운 박물관에서 이왕가(李王家)의 미술품을 마음대로 빼내었다. 빼낸 미술품은 다시 덕수궁 석조전에 이왕가미술관을 지어 전시했다. 1919년 10월부터는 이곳에서 일본의 근대미술품도 함께 전시하며,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장소로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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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지어진 조선총독부 건물. 경복궁의 미관을 심하게 해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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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은 1910년부터 경복궁의 300여 채 전각들을 헐었다.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어 박물관을 들였다. 그 규모는 약 522.3㎡(158평)에 지나지 않아 경복궁 전각들을 유물 전시와 사무기능으로 함께 사용했다. 전각들이 전시에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재에도 취약해 유물의 훼손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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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조선총독부 건물에 일본 개국신화에 관한 벽화를 그려놓았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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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본은 35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곳의 문화재를 끝없이 약탈해 갔다. 해방 뒤 1952년 3월 7일치 ‘미 국무부 한국 국내 상황 관련 문서’를 보면, “한국 측이 주장하는 구체적 청구권 내역은 (...중략) 상당한 정당성이 있으며, (...중략) 일본의 공공기관에 있는 한국의 예술 문화재를 반환할 지도 모른다”고 적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약탈 문화재의 반환은커녕 현재까지(2017년 기준) 이 가운데 112점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7번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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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서울 탈환 뒤 어린이들이 부서진 북한군 탱크 위에 올라가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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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있던 문화재들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이전된다. 당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문화재 약탈을 막은 것은 박물관 직원들이었다. 직원들은 매일 문화재 포장에 시간을 끌면서 9월 28일 서울 수복 때까지 문화재 북한 이송을 막았다. 결국 포장돼 보관된 문화재가 하나도 없자 인민군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후 문화재들은 미국 헌병의 열차편으로 호송돼 부산에 마련된 임시 국립박물관 본부에 보관됐다. 해방 이후 발행된 미국 외교 기밀문서를 보면, 당시 미군의 한국 내 문화재에 대한 조처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제 3 부 금융 40 항 c. 소유에 관계없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예술품 또는 문화재 .

허가장이나 기타 지시 문서로 허가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폐쇄 또는 동결된 재산도 거래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 ( 중략 ) 일본인 , 친일파 또는 군의 영향력이 개입되지 못하도록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게 해주어야 한다 .

* 위 문서는 한국 내 작전참모부장 헐 (J.E. Hull) 중장에 의해 비망록에 삽입되어 맥아더 장군에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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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의 모습. 사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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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휴전 이후 문화재는 다시 안전하게 경복궁 경내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0월 경복궁 부지가 구 황실 재산사무총국으로 넘어가자, 문화재는 1954년 1월 남산 분관 자리로 이동해야 했다. 이후 남산 분관도 연합참모본부로 바뀌자 1954년 12월에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해 이듬해인 1955년 6월 개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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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전경.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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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는 국립박물관 명칭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경됐다. 그러면서 덕수궁에서 다시 경복궁 신축 건물(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로 이전했다. 그러나 1982년 정부 과천 청사가 들어서면서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이 비게 되자, 건물을 개조한 뒤인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전 개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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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철거 당시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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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9년 만인 1995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다. 이로 인해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시 경복궁 경내의 구 사회교육관 건물(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로 이전 개관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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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가족공원에 세워질 국립중앙박물관의 200분의 1 축소모형 공개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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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91년 한·미 반환 협정에 따라 미군 쪽으로부터 용산 기지 골프장을 돌려받았다. 이곳에 용산가족공원을 조성한 정부는 공원 내 박물관 이전 개관을 계획한다. 공사 기간은 1997년 10월 31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약 8년이 걸렸다. 55년 동안 일곱 번에 걸친 이사를 끝으로 2005년 10월 28일 마침내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박물관 시대가 열리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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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날, 시민들이 전시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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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30만㎡(약 9만 평)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규모의 박물관이다. 관람객 수 또한 아시아 1위, 세계 10위에 해당한다. 국보급 유물만 약 33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무료 관람, 사진 촬영 OK!, 품절 대란 굿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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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물 중 백제금동대향로를 관람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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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는 크게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로 나뉜다. 특별전시를 제외한 모든 관람은 무료다. 조명과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는 사진촬영은 모두 허용된다. 6개 전시관 모두 하루 3차례 해설을 제공하며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도 전시 안내를 들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누리집에서는 소장품 해설은 물론 사진과 동영상, 3D, 디지털 탑본으로도 관람할 수 있다. 아울러 박물관 유물을 활용한 문화상품 이른바 ‘굿즈’는 사무용품에서 패션, 생활, 공예까지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인기 상품은 품절 대란까지 일으킬 만큼 반응이 뜨겁다.

관람시간은 월, 화, 목, 금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수, 토요일은 야간 개장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의 박물관 미술관>/서상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미국외교기밀문서(FRUS)

-주한 미국대사의 한일협정에 관한 동향보고

-한국의 미군 점령지역 내 민간 행정업무에 대하여 태평양방면 미군 최고사령관에게 보내는 최초의 기본 훈령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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