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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고통과 상처, 같이 아파해줄 때 치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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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장자연 사건 다룬 연극 ‘빨간시’ 연출한 이해성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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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받지 못한 고통은 계속 떠도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면 수면 위로 올라오죠.”

연극 연출가·극작가인 이해성은 ‘고통을 사유하는 사람’이라고 할 법하다. 공기 중에 흘러다니는 누군가의 고통을 붙들어, 오래도록 응시하고 무대 언어로 옮긴다. 이는 “치유되지 않은 고통은 얼룩으로 남아 있다니까” 같은 대사가 된다. 보는 사람을 고통의 심연까지 끌고 내려가는 이야기가 된다. ‘해원’의 제의가 된다.

이해성이 이끄는 극단 ‘고래’가 다시 무대에 올리는 <빨간시>(4월20일~5월13일, 나루아트센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고(故) 장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겪은 폭력과 고통, 침묵과 말의 이야기는 수십년의 간극을 넘어 현재와 만난다. 크게는 유력 일간지 기자인 동주가 성상납으로 자살한 여배우 사건의 ‘목격자’로 괴로워하다가, 저승사자의 실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할머니 대신 저승에 가며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이해성을 만났다. 그는 바로 이곳에서 2006년 열린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기 수요시위가 작품의 시작점이었다고 했다. 들어봤지만 충분히 알지 못했고, 혀를 찼지만 가슴을 치게 되지는 않았던 증언들이 가슴에 박혔다. 몸이 아플 정도로 이 이야기를 ‘앓았다’. 근처 카페로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우연찮게 참석했다가 충격을 받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고엔 할머니들 이야기만 담았는데,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고민하던 중 장자연 사건이 터졌고, 두 이야기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흘러간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두 가지를 연결해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지난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조사를 권고한 데는 “2011년 초연 때 바라던 일인데 일단 다행”이라고 했다.

작품을 이끄는 화두는 욕망-고통-폭력의 삼각구도, 그리고 ‘말’이다. 두 축은 서로 얽힌다. 동주는 ‘침묵하는 목격자’가 됐다는 생각에, 장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여배우 수연은 “가슴을 찢어서 토해낸 말” “목숨을 실어서 쓴 말”로도 해결되지 못한 일들에 울부짖는다. 저승의 옥황과 염라는 “무명은업이되고 업은인식을낳고 인식은마음이되고몸이되고…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를 뒤집고 해체하며 주문처럼 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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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렬한 장면은 할머니의 독백이다. 수십년간 ‘침묵의 성’을 쌓아온 그녀가 15분간 홀로 말을 쏟아낸다. 담담한 어조 속에 그날의 비명과 아수라장이 살아난다. 관객을 ‘연민하는 구경꾼’으로 남아 있기 어렵게 하는 말들이다.

“할머니들이 겪은 일을 재현이 아닌 ‘말’로써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더 깊이 있게 공명하는 방법이라고 봤어요. 너무 길고 잔인한 내용이라 반대도 많았지만, 밀어붙였죠. 이 장면을 연습하며 모두 굉장히 힘들었어요. 울다가 연습이 중단되곤 했죠. 장면을 완성하기까지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고통을 공유한 시간이 배우의 몸에 쌓이니 담담함이 나오고, 그 담담함 안에서 깊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지요.”

작품 속 말들은 아프다. 이해성은 이 아픈 말들을 치유의 과정으로 봤다. 그는 “고통과 상처는 다른 사람들이 같이 아파해줄 때에야 치유가 시작된다는 믿음이 갈수록 확고해진다”고 했다. 여기엔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극중 인물들이 마지막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말을 꺼내놓는 것도 이런 믿음에서다.

“남의 고통을 껴안으려는 마음을 갖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깊이 알면 공감하게 되는 기본적인 선의가 사람에겐 있다고 봅니다. 그 선의를 끄집어내는 것이 예술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이 누구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원과 위로와 치유에 가닿기를 바랐어요.”

폭력과 말.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해성은 할머니들의 고백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던 ‘원조 미투’”라고 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극단 내에서도 미투 운동 관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됐다고도 했다.

“저를 포함해 위계적 언행들에 대해 더 조심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됐어요. 미투 운동은 우리 내면의 민주화로 가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혁명적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한다는 면에선 이제 ‘나’라는 자아개념의 틀이 깨지는 시기, 우리의 영혼을 확장하는 시기가 온 게 아닌가 합니다.”

<빨간시>부터 <비명자들2> <불량청년> 등 시대의 고통을 말하는 그의 작업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곤 하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그는 “엄연히 실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일 뿐”이라며 “사회적 진실과 미학적 진실을 다 좇아야 예술의 진정한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단원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소녀상 앞 수요시위 현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고통을 사유하는 사람’은 그렇게 ‘고통의 곁에 서는 사람’과 겹쳐졌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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