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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화·들·짝] 미국의 새로운 ‘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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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 정부는 이제 새로운 두 가지 긴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하나는 세계를 상대로 한 경제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러시아의 도전을 막으려는 패권(방어)전쟁이다. 경제전쟁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크게 올리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주된 목표는 중국이다.

두 전쟁은 잘 굴러갈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허점이 많다. 우선 경제전쟁을 뒷받침할 미국 내 동력이 불확실하다. 긴 전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하다. 긴 전쟁이 상정하는 전략 목표와 실제 정책 사이의 모순도 곳곳에서 불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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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초부터 8년 동안 집권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두 가지 ‘긴 전쟁’을 선언한 바 있다. 대테러 전쟁과 탈석유 ‘전쟁’이 그것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두 전쟁의 목표는 상당 부분 달성됐다. 우선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점으로 위세를 떨치던 이슬람국가(IS)가 최근 주요 근거지를 모두 잃으면서 대테러 전쟁은 큰 고비를 넘겼다. 미군이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 등에 배치돼 있으나 테러 문제는 미국 안보의 1순위에서 밀려나는 분위기다. 올해 초 나온 국방전략 보고서는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대한 최대 도전으로 ‘장기 전략적 경쟁자의 부상’을 꼽았다.

탈석유 전쟁의 목표는 외국, 특히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을 줄여 경제와 안보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은 지하 깊숙한 셰일층의 가스를 뽑아내는 기술을 실용화하면서 석유자급률을 크게 높였다. 탈석유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한 세대 동안 외국산 석유에 그렇게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이제 새로운 두 가지 긴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하나는 세계를 상대로 한 경제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러시아의 도전을 막으려는 패권(방어)전쟁이다.

경제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크게 올리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일본·중남미 등 지구촌 모든 나라가 대상이지만 주된 목표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 5660억달러 가운데 3분의 2인 3752억달러를 차지한다.

미국의 대중국 공세는 무역적자 축소를 넘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산업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Made in China) 2025’를 겨냥한다. 중국의 기술 자립을 막아 미국을 넘볼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곧 미국발 경제전쟁은 트럼프의 즉흥적 성향이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단기 전술을 넘어서, 미국의 국가 전략과 함께 간다. 트럼프의 핵심 참모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명시한다. 그는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중국과의 대타협은 불가능하므로 ‘힘에 의한 평화’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패권전쟁은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군부와 안보 전문가들에 의해 구체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강한 미국’이라는 구호와 더불어 연간 7천억달러에 가까운 국방예산을 밀어붙이는 등 큰 틀에서 이들과 호흡을 같이한다.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최대 위협으로 여긴다. 군사적으로 볼 때,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유럽에선 러시아가 냉전 때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며, 두 나라 모두 중동에서 세력 확대를 꾀한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무기 면에서는 특히 중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해군 전력 증강을 큰 위협으로 본다.

이에 맞서려면 아시아, 유럽, 중동 등 세 곳의 미군 전력을 모두 강화해야 한다. 경무장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한 대테러 전쟁 전략은 이에 맞지 않는다. 무기와 기지, 정규군을 중시하는 오랜 지정학적 전략으로 돌아가, 한반도에서 남중국해·인도양·중동을 거쳐 동유럽과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이르는 긴 봉쇄선을 만들어 유지해야 한다. 미사일·잠수함·핵전력 등의 수준을 높이고 국방비도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이런 전략은 연이어 나온 국가안보전략, 국방전략, 핵태세 검토 보고서 등의 기조를 이룬다. 각 지역을 담당하는 미군 사령관들이 최근 의회에 제출한 연례 보고서는 이를 진전시키고 있다. 미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남중국해에서 되풀이되는 ‘항행의 자유’ 작전, 러시아에 가까운 동유럽 나라들에 대한 미군 전력 강화, 중동의 이란-시리아-러시아 벨트에 맞서는 새 전선 구축 시도 등이 이런 판단과 맥락을 같이한다. 지난주 부임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대중국 무력충돌도 불사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새로운 두 긴 전쟁의 핵심 목표는 패권의 지속이다. 두 전쟁은 잘 굴러갈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허점이 많다. 우선 경제전쟁을 뒷받침할 미국 내 동력이 불확실하다.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기성 정치에 식상한 공화당원뿐만 아니라,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 민주당원도 무역전쟁을 지지한다. 공화당의 전통적 텃밭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지난달 보궐선거에서 이긴 코너 램 민주당 하원의원이 그런 사례다. 민주당 안에서 진보파로 꼽히는 셰러드 브라운 오하이오주 연방상원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조처를 지지했다. 이들이 보기엔 트럼프보다 중국의 중상주의가 훨씬 더 나쁘다.

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의 주류는 경제전쟁에 거세게 반대한다. 공화당 주류는 자유무역을 자신들이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요소로 꼽는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기부터 주류가 된 민주당 우파의 시각도 대체로 비슷하다. 이들은 무역장벽으로 국제 교역이 줄면 물가가 오르고 실업자가 늘어나며 기술 발전이 지체되는 등 경제위기가 온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이들을 ‘세계화주의(globalist) 기득권층’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이들의 기반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의 조처에 대해 대놓고 반대하진 않지만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세력도 만만찮다. 이들은 수십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과 금융자본을 위한 것일 뿐 다수 미국인은 고통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무역장벽보다 중요한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구조를 바꿀 산업·조세·복지·공공 정책이다. 이런 노력과 무관한 무역전쟁은 부분적 효과가 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긴 전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하다. 미국의 패권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그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지구촌 다수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앞세운다. 트럼프는 눈에 걸리는 모든 것을 일단 때리고 보는 두더지 게임을 벌인다. 안정적인 동맹도 없고, 단기 이익이 중장기 관계를 압도한다.

긴 전쟁이 상정하는 전략 목표와 실제 정책 사이의 모순도 곳곳에서 불거진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사실상 봉쇄하는 수준으로 가려면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미-유럽 관계는 경제에 더해 안보에서도 갈등이 생기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도 미국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수시로 압박한다. 구조개혁이 따르지 않는 경제전쟁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난타전 양상의 무역전쟁은 미국 경제의 부활은커녕 지구촌 전체에 상처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미국 다국적 기업과 금융자본의 힘은 유지되더라도 다수 미국인은 패자가 될 것이다.

미국의 긴 전쟁은 냉전 시절과 비교해도 명분이 약하다. 두 전쟁에 두루 통할 수 있는 최선의 구호는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 정도다.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에서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전쟁 수행방식과 동맹국과의 관계 등에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는 개방적이지 않고 일방적인데다 자유와도 거리가 있다.

미국의 보수적 주류 정치학을 대표해온 새뮤얼 헌팅턴 전 하버드대 교수는 냉전 종식 직후 문명충돌론을 제기하면서 이슬람 문명권과 유교 문명권(중국)의 결합을 최대 잠재 위협으로 꼽았다. ‘중·러의 결합과 이슬람권 진출 강화 위협론’은 이런 사고의 확대판이다. 이런 판단이 얼마나 현실과 일치하는지, 그것이 현실이더라도 긴 전쟁이 타당한 것인지, 미국의 역량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은 심각한 의문이다. 미국이 지구촌의 공존공영에 기여하는 전략 아래 진지하게 국제 협력을 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전쟁 승리는커녕 혼란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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