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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억울해서 학교에 어떻게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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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에만 집착하는 학교와 기업

학벌 획득 강박에 휩싸인 학생들

학벌주의 방치는 사회 존립 위협

몇 해 전 교양과목을 가르칠 때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는데 한 학생이 나를 붙잡아 세웠다. 1주일 전에 제출한 과제에 대한 피드백과 관련해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10분이면 충분하겠거니 생각하고 시작한 대화가 1시간 가까이 지루한 입씨름으로 이어졌다. 결국 서로 간에 메우기 어려운 인식의 간극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다. 무척 허탈하고 뒷맛이 쓴 경험이었다.

입씨름의 단초를 제공한 건 계층 간 교육격차의 해법을 둘러싼 이견이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교육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교사의 열정에 주목해 보길 주문했다. 교사가 저소득층 학생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면 지금보단 교육격차가 완화되지 않겠느냐는 뜻에서였다. 부모에게 충분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에겐 교사가 마지막 희망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학생의 생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교사가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교사의 열정이 놀라운 성과를 가져와 모든 학생이 만점에 가까운 성취도를 보이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교사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들 대다수 학생이 만점에 가까운 성취도를 거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을 걱정하고 학생 성취도의 전반적 향상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걸 도통 납득하기 어려웠다.

학생의 주장에도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다만 논리가 단선적인 외곬 시각에 기반한 까닭에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학생은 성적이 특출한 학생이 크게 늘면 다들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답답해했다. 나는 우수 학생이 많아진들 문제될 게 없다고 되받았다. 대학이 선발경쟁에서 탈피하여 교육경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마련되어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논거와 함께. 당위와 논리를 버무려 본격적인 설득에 나서려 하자 대화 내내 답답해하던 학생이 대뜸 말을 끊었다. “글쎄, 좋은 성적을 받고도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간 학생들은 억울해서 학교에 어떻게 다니냐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학생을 탓하고 싶진 않다. 그 학생은 위선과 가식 뒤에 숨지 않고 학벌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의 한 자락을 날 것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다. 기실 학벌 획득의 강박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이 땅에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굳이 구분을 하자면 학벌 때문에 과분하게 누리는 이와 속절없이 당하는 이만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종종 고등학교를 탐방하곤 한다. 책상물림으로 불리는 게 싫거니와 연구에도 분명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은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학부모가 선호하는 학교일수록 학교 경영자가 명문대 진학자 수에만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학부모의 기대와 열망이 학교 경영자의 고민에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무겁다. 사회는 또 어떤가.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채용비리를 접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국내 유수 금융기관이 출신 학교에 따라 이중삼중으로 지원자를 차별하고 특정 대학 졸업자의 합격을 위해 면접 점수까지 조작했다는 보도를 접하곤 할 말을 잃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학벌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상당히 낮게 봤다. 전체 응답자의 62.0%가 앞으로도 학벌주의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학벌주의가 심화할 것이라는 응답이 17.8%인 반면, 약화할 것이라는 응답은 15.0%에 불과했다. 가정, 학교는 물론 사회까지 학벌에 대한 교조적 집착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특별히 놀라울 건 없는 결과다. 다만 지금의 학벌주의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리라는 건 잊지 말아야 한다. 학벌주의를 타파하지 않는 한 망국적 사교육 경쟁과 저출산 문제 해소 또한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