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44566736 0012018041744566736 07 0701001 5.17.14-RELEASE 1 경향신문 0

삐딱한 세상에서 삐뚤어지지 않음을 보여준 ‘고등래퍼’들

글자크기
Mnet의 10대 대상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고등래퍼2>가 13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에서는 5명의 최종 진출자들이 경연을 통해 우승자를 가렸다.

마지막 무대답게 진출자들은 자신의 삶과 생각을 솔직한 가사에 담아 표현했다. 이 무대를 위해 아껴둔 말을 한꺼번에 풀어낸듯 했다. 청소년 래퍼들의 가사에는 기성세대가 감지 못한 사회 변화의 기운이 스며있었다. 래퍼들이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찾아간 장소와 가사를 통해 청소년들이 이끄는 미래의 변화를 살핀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학교 밖에도 길이 있다-김하온

줄곧 유력 우승후보로 꼽혀온 김하온이 <고등래퍼2> 1위를 차지했다. 김하온은 지난해 자퇴한 ‘탈학교 청소년’이다.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찾아간 곳은 1년 전까지 다녔던 고등학교였다. 자유분방한 차림의 김하온은 교복 입은 친구들 사이에서 쑥스러워한다.

‘자퇴생’에 대한 기성세대의 이미지는 ‘부적응자’ 혹은 ‘사고뭉치’다. 하지만 김하온을 맞이하는 작년 담임 교사의 태도는 따스했다. 담임 교사는 김하온의 자퇴 의견서에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꿈을 이루기 위해 철저한 시간 관리로 창작활동을 하는 등 의지와 노력이 엿보임”이라는 견해를 써줬다. 1년 만에 만나는, 이제는 수험생이 된 친구들도 김하온을 반갑게 맞이했다. 방송에선 1년 전 친구들이 열어준 ‘자퇴 파티’ 영상도 나왔다. 김하온은 교실에서 친구들이 선물한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고, 친구들은 학교 바깥으로 새로운 길을 떠나는 김하온을 축복했다.

기성세대는 학교를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자랐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학교에 다니든 안 다니든, 청소년에겐 ‘학생’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히 여겨졌다. 하지만 김하온은 학교 바깥에도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보여줬다. 학교 안에서도 탈학교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김하온은 학교 바깥에서 보낼 삶에 대한 계획을 세워 부모를 설득했다. 부모는 김하온의 의지와 계획에 수긍했다. 아버지는 김하온의 ‘탈학교 계획표’를 복사해 김하온에게 주고, 자신도 한 장 갖고 다녔다고 한다. 김하온이 마지막 무대에서 부른 노래 ‘붕붕’에는 “어디로 가는지 몰라 Just swerving (…) 날아가서 구름 밟아 나는 발자국을 남겨”라는 가사가 나온다. “진리를 찾아 떠나 얻은 것을 바탕으로 저만의 예술을 하고픈 여행가”라는 김하온의 자기 소개에 어울리는 가사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혼 가정도 행복하다-배연서

배연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배연서가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찾은 곳은 강원도 강릉의 부모님집이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여동생이 사는 곳이다.

배연서의 가정사는 조금 특별하다. 어머니는 친모지만, 아버지와 여동생은 새로 얻었다. 이날 부른 노래 제목 ‘이로한’은 배연서가 개명 절차를 밟고 있는 새 이름이다. 마치 파이널 무대를 위해 남겨두기라도 한듯, 배연서는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각오를 랩 가사에 눌러 담았다.

“시작은 엄마랑 나, 둘이 힘들게만 사네”. 화면에는 어린 배연서와 지금보다 젊은 어머니 단 둘이 찍은 사진이 나온다. “19평짜리 임대 아파트/창문을 열면 보여지는 논과 밭을 두고서/ 서울시 마포구 어느 곳에서/준비 중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여기에/성은 이, 이름은 로한이라고 하네”. 그에겐 “확신하는 날 믿어준 아버지”와 “내가 책임지고 업어갈 내 여동생”과 “날 버리지 않고 키워준 엄마”가 있다.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시기, 재혼 가정 청소년의 삶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세상의 편견이다. 배연서는 자신의 청소년기가 마냥 행복했다고 회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거를 되새기며 괴로워하기보다는 ‘두 개의 성’ ‘두 개의 이름’ ‘두 개의 삶’ ‘두 개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겠다고 다짐한다. 파이널 무대 녹화장에 온 배연서의 어머니, 아버지는 첫 소절부터 줄곧 눈물을 흘린다. 멘토로 참여한 래퍼들과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영문을 모르는 귀여운 여동생만이 웃으며 오빠를 응원한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방은 자랑스럽다-조원우

조원우는 <고등래퍼>에 3위를 차지한 강자다. <고등래퍼2>에 다시 출연해 파이널 무대에 진출했고, 결국 5위를 차지했다.

조원우를 규정하는 건 지역 정체성이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지역에서 알아주는 래퍼가 된 조원우는 자신이 “대구시장보다 유명하다”고 농담한다. 마지막 방송에서 찾은 장소도 대구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동성로 중앙파출소 앞 등 랩을 했던 야외공간을 찾아 처음 랩에 입문했던 시절을 돌아본다.

서울은 강하다. 사람이든 돈이든 빨아들인다. 사람과 자원을 잃은 지방은 자꾸만 힘을 잃어간다. 하지만 조원우는 지방을 사랑하고, 고향에 자부심을 갖는다. 파이널 무대에서 부른 곡명 ‘053’은 대구 지역 번호다. 랩에서 조원우는 방구석에 있다가 처음으로 랩 대회에 참여한 과정, 대구 언더그라운드 래퍼와의 교류, 1평짜리 스튜디오에서의 작업 과정을 차근차근 풀어놓는다. 무더운 대구를 뜻하는 ‘대프리카’같은 어휘도 나온다. 무대에서 조원우는 ‘DAEGU’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받아들고는 관중석으로 던진다.

조원우는 ‘나의 도시’라고 연신 외친다. 멀리 있는 서울을 바라보는 대신, 발딛고 있는 지방을 자랑스러워 한다. 정치인들은 ‘지방분권’을 외치지만, 기성세대가 이 구호에 호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조원우 같은 청소년들은 다르다. 지방에도 힘이 있음을, 청소년 래퍼는 보여준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 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