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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슈] 대종상 첫 여우주연상?…故 최은희의 특별한 이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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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최은희의 빈소가 16일 오후 서울 성모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2018.4.16/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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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원로 배우 최은희가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50~60년대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추앙받았던 그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파란만장했다. 그중에서도 '역사'에 남을 특별한 '수상 경력'을 중심으로 최은희의 인생을 정리해봤다.

◇ 제1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최은희는 1962년 시작된 제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상록수'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54년 영화 '코리아'를 계기로 신상옥 감독을 만난 최은희는 신감독과 결혼 후 한국 영화사에 남을 작품들을 많이 찍었다. 그중에서도 60대 작품들은 '한국 영화의 고전'이라 불릴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 받았다.

'꿈'(1955)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로맨스 빠빠'(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벙어리 삼룡이'(1964) '열녀문'(1962) '빨간 마후라'(1964) 등이 대표적이다.

제1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은 역시 신상옥 감독의 제작사였던 '신필름'의 작품 '연산군'이었고, 남우주연상 역시 '연산군'에 돌아갔다. 감독상과 시나리오상 또한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가 받았다. 그야말로 영화계 전체가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의 것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에도 최은희는 '청일전쟁과 여걸민비'로 1965년 제4회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1966년 제5회 때도 여우주연상의 수상자로 호명됐다.

◇ 납북과 탈출…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는 1976년 이혼한다. 신상옥 감독이 당시 신인 배우였던 오수미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후 최은희는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고, 1978년 학교 문제로 홍콩에 체류하던 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다. 같은 해 신상옥 감독이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에 갔다가 납북되면서 최은희와 재회한다.

두 사람은 김정일의 지원 아래 북한에서도 영화 활동을 계속했다. 최은희는 이때 찍은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소금'은 1930년대 만주의 간도 지방을 배경으로 아버지가 일본군에 죽은 뒤 외아들이 반식민지 무장투쟁에 가담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찾기 위해 소금짐을 지고 나서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1930년대 경향파 작가 강경애의 원작 단편소설을 영화화했다. 북한 영화로서는 최초로 동시녹음을 사용했고, 함경도 사투리를 그대로 살렸다.

◇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1986년 탈북에 성공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는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99년 영구 귀국한다. 이후 신상옥 감독이 지난 2006년 세상을 먼저 떠난다.

영구 귀국한 후 최은희는 영화계 원로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12년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에서 공로예술인상을, 2014년에는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편 故최은희의 장례식장은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17일부터 조문객을 받고 있다. 발인은 19일 진행되며, 시신은 안성천주교공원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족은 신정균 감독 등 2남 2녀가 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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