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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캐나다 한인 이민자 실업률 8%, 타국출신보다 왜 높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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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주호석의 이민스토리(8)
중앙일보

이민 온 지 5년 이하 이민자의 실업률은 캐네디언 실업률의 두 배 가량 높은 12%으로 나타났다. [사진 주호석]




영주권을 취득하고 캐나다 땅에 첫발을 내딛고 나면 이민자 누구에게나 피하지 못할 과제가 주어집니다. 바로 돈을 버는 일입니다. 돈을 벌어야 가족의 생계를 꾸리면서 이민생활을 지속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이 많아 굳이 캐나다에서 돈벌이하지 않아도 평생 경제적인 어려움 없는 이민자에겐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의 이민자가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취직하거나 본인 스스로 사업을 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취직이든 사업이든 철저히 준비하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못한 게 현실입니다. 또 설사 한국에서 나름 준비를 하고 온다 해도 막상 캐나다에 와보면 준비했던 것이 현실과 거리가 먼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이민자에게 돈 버는 일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이민자만 돈 벌기 어려운 게 아니지요. 어디에 살든 돈 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다 압니다. 하지만 돈 버는 여건이 지극히 불리하고 안 좋은 이민자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이민자는 취직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지난 2016년 8월 기준으로 캐나다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률 통계에 의하면 이민 온 지 5년 이하의 이민자 실업률은 12%로 캐나다에서 태어난 캐네디언의 6.6%보다 무려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낯선 땅에서 돈 벌어 생계를 유지하려는 이민자에게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인 이민자 실업률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보다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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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자 실업률. [자료제공 캐나다통계청, 제작 김예리]




한인 이민자의 경우 비교 가능한 다른 아시안 국가 출신 이민자보다 실업률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부터 2016년까지의 센서스 자료에 의하면 한인 이민자의 실업률은 8.4%로 나타났습니다. 반면에 일본인 6.4%, 중국인 7.9%로 나타났고 필리핀 사람의 경우는 5.2%로 실업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처럼 한인 이민자의 실업률이 높은 것, 다시 말해 취업을 잘 못 하는 것은 무엇보다 언어장벽이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상대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필리핀 이민자의 실업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중국 출신 이민자도 영어 능력이 크게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국계는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자체 커뮤니티가 하나의 경제단위로 충분한 규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일자리도 많고, 비즈니스 기회도 많은 편입니다. 밴쿠버의 경우 전체 인구 230만명 중 18%에 해당하는 41만명이 중국계 이민자입니다.

반면에 한인 이민자는 캐나다 전체를 통틀어 19만명, 밴쿠버는 4만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구가 적은 데다 제대로 규모를 갖춘 한인 기업도 많지 않아 이민자가 언어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기회도 매우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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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대졸이상 이민자 비율. [자료제공 캐나다통계청, 제작 김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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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자의 취업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걸림돌은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의 학력이나 경력, 소비수준이 캐나다 현지의 평균 수준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한인 이민자의 학력은 최고 수준입니다. 캐나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캐나다 전체 인구 대비 학사학위 이상의 대졸자 비율이 23.2%인데, 한인 이민자의 경우 그 비율이 72.2%로 3배 이상 높습니다. 중국계 69.7%, 필리핀계 67.6%보다 높고 독일계 26.3%, 영국계 49.9%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문제는 고학력인 데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이민자일수록 캐나다에서 취업하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고학력 전문직은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고 경력을 쌓은 캐네디언이 독차지하고 있어 이민자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민자는 자신의 학력 및 경력 수준에 걸맞은 직업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치과의사 출신 한인 이민자, 건축회사서 막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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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캐나다 이민자는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보수가 낮은 육체노동을 하게 된다. [사진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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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력과 경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한국에서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의 직업을 구해야만 하는 게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이민자가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험하고 보수가 낮은 육체노동을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대학 나와 대기업 간부로 일하던 이민자가 택시 운전을 하고, 치과의사 출신이 소규모 건축회사에서 헬퍼로 막노동하고,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 슈퍼마켓에서 생선 손질을 하는 게 이민사회의 현실입니다.

또 설사 그런 일을 한다 해도 지속해서 오래 하기가 어렵다는데 더 큰 문제입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 안 하던 육체노동을 하다 보면 몸 어디선가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 안 쓰던 근육이나 관절을 무리해서 쓰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몸이 아프면 '내가 이런 궂은일 험한 일 하려고 이민 왔나?'하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인 이민자는 이민 올 때 얼마 정도의 돈을 가지고 오는 게 보통입니다. 가지고 오는 돈의 액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취직하지 않더라도 당장 먹고 살 만한 정도의 돈은 준비해 오지요. 그런데 돈이 취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돈이 비빌 언덕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이 떨어질 때쯤 돼서야 취직의 절실함을 느끼게 되고, 그제야 취직의 문을 두드려보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필리핀 출신 이민자는 대개 이민 오자마자 일을 시작합니다. 투잡, 쓰리잡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이민 올 때 무일푼 빈손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오자마자 돈 버는 일이 매우 절실할 수밖에 없겠지요. 필리핀 이민자의 실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민사회에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전해져 옵니다. '돈을 100만 달러 가지고 온 사람이 10만 달러를 갖고 온 사람보다 훨씬 먼저 돈을 까먹는다'는 것입니다. 10만 달러를 가지고 온 사람은 비빌 언덕이 없기 때문에 오자마자 매우 절실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아 일찍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는 데 반해 100만 달러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절실함이 덜해 오히려 즐기면서 여유 있게 지내며 금방 탕진해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인 이민자가 취직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에서 얻던 소득과 캐나다에서 받게 되는 소득 간에 존재하는 큰 괴리현상입니다. 이민자는 취직하더라도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시작하고 보수는 엔트리 레벨, 즉 시작단계의 초임을 받게 됩니다. 보통 시간당 10달러 조금 넘는 보수를 받게 되지요. 그걸 한 달 단위로 계산해보면 한국의 직장에서 받던 월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습니다.

일은 힘든데, 보수는 쥐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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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고되고 힘든데 적은 보수 때문에 취직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민자가 많다. [일러스트 김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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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고되고 힘든데 보수는 쥐꼬리만큼 받는 것입니다. 거기에 실망해 취직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민자가 꽤 많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작부터 보수를 많이 지급하는 캐나다 직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캐네디언이 씀씀이가 매우 작고 과소비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소득과 소비에 거품이 전혀 끼어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무슨 옷 하나가 유행을 하면 전 국민이 같은 옷을 사 입는 한국의 현상은 캐나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주호석 밴쿠버 중앙일보 편집위원 genman2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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