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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이슈] '별세' 최은희, '납북→탈북' 영화같은 삶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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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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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산증인’ 원로배우 최은희가 타계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지난 16일 오후 5시 30분경 타계했다. 유족은 “이날 오후 병원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갔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 고인은 남편 신상옥 감독이 2006년 4월 타계한 뒤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져 오랜 시간 투병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故)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연기에 입문한 이후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1954년 신상옥 감독과 결혼한 뒤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을 비롯한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영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특히 고 최은희는 납북부터 탈북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산 주인공이다. 고인은 안양예고 교장을 지내던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고, 이후 고인을 찾으러 홍콩으로 떠난 신 감독 역시 북한에 끌려갔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이 북한 영화의 발전을 위해 두 사람을 납북했던 것.

두 사람은 김정일의 주선으로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촬영소 총장을 맡고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총 1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최은희는 그 당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이었다.

북한의 신임을 얻은 두 사람은 19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여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8년 만에 북한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비엔나의 미국대사관으로 무작정 달려 들어가 CIA 요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탈북에 성공한다. 당시 최은희와 신 감독은 신변 안전을 이유로 미국에 한동안 정착, 199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이에 대해 아들 신정균 감독은 “부모님의 탈북 성공 후 미국에서 국적 세탁 후 숨어 살았다”며 “한국인이 거의 없는 마을에 들어가 일본인으로 국적을 세탁하고 일본 이름을 가진 채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해가 지면 꼭 커튼을 쳐야 안심하셨고, 밤에 작은 소리에도 깨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셨다”고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이다.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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