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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꽃·들풀 가득한 일터, 詩가 절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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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공무원 출신 시인, 조연환·최병암·김청광씨

문인 등단한 전·현직 직원 27명 "시 쓰며 자연 향한 애정 깊어져"

"아이고 최 시인, 오랜만입니다. 최근에 낸 시집 좋습디다."

지난 10일 대전 한국산림아카데미 사무실. 조연환(70·전 산림청장) 한국산림아카데미 이사장의 너스레 섞인 인사에 최병암(52) 산림청 산림복지국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청광(73·전 산림청 국장) 한국산림문학회 이사장과도 악수했다. 세 사람은 모두 산림청 공무원 출신 시인이다.

조연환 이사장은 19세 때 9급 공무원으로 산림청에 들어와 청장까지 지내고 2006년 퇴임했다. 2001년 공무원문예대전 시 부문 대상을 받았다. 2000년 한맥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청광 이사장은 산림청 국유림관리국장 등을 지내고 2003년 퇴직했다. 1993년 산림청에 입사한 최병암 국장은 2010년 계간 문학지 산림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두 달 전 첫 시집 '나무처럼'을 냈다.

조선일보

왼쪽부터 김청광 한국산림문학회 이사장, 최병암 산림청 산림복지국장, 조연환 한국산림아카데미 이사장.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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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은 시인 공직자를 꾸준히 배출해 '시인(詩人)청'이라고도 한다. 세 사람을 포함해 산림청 출신 등단 시인은 총 15명. 소설·수필까지 넓히면 등단 문인이 27명이다. 김 이사장은 "숲을 일터로 삼다 보면 나무와 꽃, 들풀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 하게 돼 시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들이 속해 있는 한국산림문학회는 산림청 내 문학 동호회에서 출발했다. '해방 이래 최악 산불'이라 한 2000년 동해안 산불이 계기가 됐다. 당시 산림청 사유림지원국장이던 조연환 이사장은 "새까만 산을 보며 가슴 아파하던 이들이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시와 수필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며 "반응이 좋아 산림청 공직자·산림조합장 30여 명이 뭉쳐 문학회를 꾸렸다"고 했다.

2009년 정식 사단법인 문학 단체가 됐고, 현재 회원 232명 규모로 커졌다. '국민 정서 녹화'를 목표로 분기별 문예지 산림문학을 발간하고, 매년 녹색문학상을 수여하며 신인 작가도 발굴한다.

조 이사장은 "시는 업무에 방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큰 도움을 줬다"고 했다. 관리 대상에 불과했던 나무와 숲을 시적 대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애정이 깊어졌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발간한 시집에서 봄 끝자락에 꽃피우는 이팝나무를 보면서 더디게 성장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시를 썼다.

최 국장 역시 "공직자로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데 시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하는 선배나 부서를 옮기는 동료들에게 헌시 100여 편을 20여 년간 선물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감나무, 연꽃 등 그 사람을 보면 떠오르는 식물을 생각하며 시를 씁니다. 이제는 동료들이 헌시를 '예약'할 정도예요."

김 이사장은 "경쟁과 탐욕으로 정서가 황폐해지는 시대에 문학이라는 청정한 나무를 국민 마음에 심어드리고 싶다"고 했다.

[대전=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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