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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면 부담, 안주면 섭섭… 청첩장 전달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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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6> 청첩장,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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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앞둔 예비신부의 최대 난제


다음 달 ‘5월의 신부’가 됩니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이제 큰 숙제는 다 마쳤다’ 싶었는데, 웬걸요. 가장 큰 숙제가 남았더군요. 바로 청첩장 돌리기입니다. 그간 지인들에게서 많은 청첩장을 받았지만 이걸 두고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지 미처 몰랐어요. 도대체 어디까지 어떻게 돌려야 할지 막막합니다.

예비신랑과 저는 원래 정말 친한 사람에게만 돌릴 생각이었어요. 주변에서 “청첩장이 세금 청구서 같다”는 얘길 적잖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또 어떤 분은 이러시더라고요. “한국 사회에서 청첩장 못 받으면 서운하다”고요. 대체 어찌해야 할지….

부모님들께서는 청첩장 주문 매수를 고민하는 저희에게 “지금까지 쓴 돈이 얼마인데 고민을 하느냐”며 ‘통 크게’ 600장을 주문했어요. 그것도 부족했는지 추가로 200장을 더 찍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결혼식인지, 부모님 결혼식인지 헷갈릴 정도예요.

요즘은 퇴근 이후 머리가 지끈거려요. 고교 친구, 대학 친구, 성당 모임, 회사 사람 등 그룹별로 청첩장을 건네며 밥을 사야 하기에 약속시간 정하는 게 일이에요. 다들 바빠서 약속 잡기가 얼마나 힘든지 단톡방에 불이 나요. 친구들은 그 자리가 반갑기는 할까요? 저 역시 매일같이 축하주를 마셔야 하니 얼굴이 누렇게 뜰 지경이에요. 도대체 왜 이렇게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요?

■ 초대장이지 청구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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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뿌리기는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난제 중의 난제다. 너무 돌리면 ‘축의금 고지서냐’는 뒷말이 나오고, 너무 안 돌리면 ‘서운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너무’의 기준은 뭘까? 문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달 28일 결혼하는 박종환 씨(33)는 매일 청첩장을 건네는 민망함과 싸우고 있다. 박 씨는 “‘회사 임직원과 거래처 주요 인사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게 기본’이라는 부장님 말씀에 따라 청첩장을 돌리러 다녔다”며 “그런데 가끔 ‘왜 나한테까지…’라는 눈빛을 쏘아대는 이들이 있어 머쓱하다”고 했다.

돌리는 방식도 부담이다. 밥을 사면서 청첩장을 전하는 게 예의인 것처럼 여겨지면서다. 올해 1월 결혼한 김경수 씨(31)는 “결혼 두 달 전부터 거의 매일 점심 저녁 자리에서 청첩장을 돌렸다”며 “아예 회사 근처에 가성비 좋은 참치집을 정해 일주일 내내 가기도 했다. 하도 다녀 참치가 싫어졌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렇게 청첩장 전달과 함께 밥값으로만 수백만 원이 깨지기 일쑤다. 김 씨는 “부모님들도 각자 ‘밥 사기’에 나서 결혼 직전까지 가족들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4, 5년 전부터 등장한 모바일 청첩장은 새로운 고민거리다. 지난해 5월 결혼한 김은지 씨(31·여)는 “대학 은사님께 모바일 청첩장을 보냈더니 ‘받는 이의 이름과 주소를 손으로 써 청첩장을 직접 전하는 게 예의’라고 꾸짖음을 받았다”며 “그래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 종이 청첩장을 드리려 연락했더니 ‘그냥 모바일로 주면 되지…’라고 해 어리둥절했다”고 했다. 청첩장 제작업계에 따르면 신혼부부 10쌍 중 6쌍이 모바일 청첩장을 이용하고 있다. 결혼 문화 연구자인 박혜인 전 계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바일은 예의 없고 종이 청첩장만 격식 있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며 “모바일도 미리 전화를 한 후 전달한다든지 성의를 표하면 편리함과 예의를 모두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청첩장은 애초 우리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전통혼례는 가까운 친척과 동네 이웃들을 불러 ‘마을잔치’ 성격으로 열렸다. 1935년 동아일보에 실린 백낙준 당시 연희전문학교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 일제강점기 일본 등에서 유학한 신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서양식 청첩장이 국내에 소개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백 교수는 “요새 서양풍속을 따라 혼인 청첩장을 여러 군데로 발송하는데, 정작 서양에서는 청첩과 통지를 엄격히 구별한다”며 “청첩은 꼭 참가할 친족이나 친우들에게 보내고 통지는 그 외의 사람들에게 결혼했다는 사실만을 알린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적 불명’의 청첩장 문화로 “(우리나라에선) 결혼식장에 어중이떠중이 그저 알건 모르건 막 모여든다”는 것이다.

‘일단 보내고 보자’ 문화는 근래에 결혼식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허례허식의 상징이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뿌린 만큼 (축의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청첩 규모는 더 늘어났다. 청첩장 제작업체인 바른손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결혼한 10만 쌍이 주문한 평균 청첩장은 371장이었다. 이 중 13%는 청첩장이 부족해 평균 123장을 추가로 주문했다.

하객 100명 내외 규모의 스몰웨딩 전문업체 ‘웨딧’의 한신 대표는 “작은 결혼식을 원하는 젊은층의 가장 큰 장벽은 부모님”이라며 “부모님이 ‘장부’에 적은 이들을 다 초대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스몰웨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영순 우리예절교육원장은 “청첩장 배포의 원칙은 없지만 모바일이든 종이든 어떤 형태로 초청을 해도 ‘기쁜 마음으로 와줄 사람’까지만 배포하는 게 기본”이라며 “청첩장을 줄지 말지,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하는 관계라면 상대가 청첩장을 ‘축의금 고지서’로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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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