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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리포트] 뭔가 잘못가는 '테크노-유토피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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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플랫폼에 광고 탑재한 비즈니스 모델이 원죄"

"사회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기업가 되길 꿈꿨던 실리콘밸리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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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실리콘밸리의 상징적 인물중 하나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 10시간에 걸쳐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저커버그는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발생한 가짜 뉴스, 러시아의 개입, 증오 연설, 개인정보 유출 등의 잘못을 일일이 열거하며 "우리의 책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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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청문회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EPA=연합뉴스]



과거에도 IT 업계에 대한 소비자나 학계, 언론의 우려와 비판은 끊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 우려와 비판이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나오고 있다.

바로 이 기술을 디자인한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초기 아이폰 제작에 참여했던 다수의 사람은 "이 기계가 너무 중독적"이라고 말한다.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는 그의 창작물이 "무기화되고 있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페이스북의 초대 사장을 지냈던 숀 파커도 소셜 미디어를 "심리 조작의 위험한 형태"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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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파커 전 페이스북 사장
[EPA=연합뉴스]



그는 "소셜 미디어가 우리 아이들의 뇌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계시다"고 개탄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테크노 유토피아(Techno-Utopia)'를 구축하려 했던 실리콘밸리의 창조자중 일부가 자신들의 죄를 열렬히 고백하며 '테크(Tech) 교(敎)'를 배신하는 새로운 분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된 것일까?

증오와 분열을 심화한 가짜 뉴스, 개인정보 유출은 비단 페이스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위터, 유튜브, 스냅챗 등 모든 소셜 미디어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인터넷이 가진 비즈니스 모델이 원죄"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저커버그도 인정했듯이 무료로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비즈니스 모델은 광고뿐이다. 그 광고를 위해서는 많은 이용자를 플랫폼에 끌어들여야 한다. 이용자 정보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연결을 통한 커뮤니티(공동체) 구축'을 외친다.

하지만 테크 칼럼니스트인 노아 쿨윈은 최근 블로그 글에서 "커뮤니티 구축 약속은 그 반대로 사회적 원자화를 촉진하는 비즈니스 로직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마이크로 타게팅'이라는 번지르르한 말은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의 선호도와 편견을 정확히 충족시키는 개인 겨냥 광고이며, 이를 실현하는 플랫폼은 인간들을 한데 묶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원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현실(VR)의 선구자격인 재론 래니어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실리콘밸리 초창기에 우리는 모든 것이 공짜이길 원했다. 우리는 히피 사회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기업가 정신을 사랑했다. 스티브 잡스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자유주의자가 되길 원했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분노는 수익성 높은 참여를 끌어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감정이었다.

지난 미국 대선 때 레딧과 4챈은 이슬람과 흑인 혐오에 가득 찬 인종주의적 극우주의자를 양성하는 공간이었고, 트위터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메가폰이었으며, 최대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은 러시아 댓글 부대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선택한 무기였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회적 분열을 부추기고 극단화시키는 일에 소셜 미디어 공간은 철저히 이용됐다.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던 테크노 유토피아 정신은 실종됐고, 돈벌이를 위해 이용자들이 중독성을 갖도록 고안된 기술은 결국 미국 사회를 분열과 증오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페이스북 이용자 8천7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태 이후 미국에서는 소셜 미디어 규제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들이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하는 한 어떤 규제도 이용자 정보 보안을 온전히 지켜내긴 힘들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용자들이 상품과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일상의 큰 부분이 된 페이스북을 유료로 전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테크 컬럼니스트 쿨윈은 "강력한 규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실리콘밸리 다수 종사자들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운동이 필요하고, 또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가장 두려운 가능성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은 너무 부유하고, 너무 힘이 세며, 이들이 개발한 기술은 너무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 그가 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였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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