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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산 있어서 선거운동 힘들다"…'제멋대로' 기초의원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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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의원 지역구 기초의원 선거구는 어떻게 4인에서 2인 선거구로 쪼개졌나

서울시의회가 25개 자치구 기초의회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막판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지역구의 기초의원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 통과시켜 특혜 논란이 번지고 있다. 선거구획정의 기본 원칙인 표의 등가성은 훼손되고 야당 원내대표 눈치를 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서울시의원들의 민원 해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일보

20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79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서울시 자치구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정수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가결되는 상황. 노동당, 녹색당, 민중당, 정의당 등 소수정당 당원들이 이를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25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서울시의회 제279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자치구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정수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수정안’(이하 수정안)이 발의됐다. 수정안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획정안을 제출한 조례안을 소관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가 수정하고, 이를 또 본회의에서 재수정한 것이다.

상임위를 거쳐 시의회 본회의에서 수정안이 제출된 것은 예산안을 제외하면 이례적인 것으로 2012년 이후 처음이었다. 수정안에는 행정자치위원회가 수정한 내용에서 김 대표의 지역구인 강서 을(등촌3동, 가양1·2동, 방화1·2·3동, 공항동)의 기초의원 선거구 변동 내용이 추가됐다. 기초의원 3명을 뽑는 강서 라·마 선거구가 2인 선거구 강서 라·마·바로 쪼개졌다. 한국당 강서을 당협위원장인 김 대표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초의원 공천권이 2곳에서 3곳으로 늘어난 셈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공천 영향력이 절대적인 2인 선거구의 경우 ‘공천=당선’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의 경우 서울 159개 구의원 선거구 중 2인 선거구는 111개, 4인 선거구는 한 곳도 없었다. 그 결과 서울시 구의원 419명 중 민주·한국당 소속이 아닌 의원은 노동당 1명, 무소속 3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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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있어서 선거구 분할?… 표의 등가성 무시한 선거구획정

이례적인 본회의 수정안은 한국당 황준환 시의원의 이의제기에서 비롯됐다. 강서 을 지역구 중 공항동, 방화1·2동 지역의 시의원인 황 시의원은 행정자치위원회(이하 행자위)에서 수정한 선거구획정안에 대해 “다른 지역구는 모두 2인 선거구로 바꾸는데 왜 강서구만 3인 선거구를 그대로 두냐”며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행자위는 서울시 선거구획정위 안에서 4인 선거구 7곳을 없애고 2인 선거구를 91곳에서 108개로 늘리고, 3인 선거구는 53곳에서 51개로 줄였다. 황 시의원의 문제 지적에 시의회 제1당인 민주당과 제2당인 한국당 지도부는 이를 수용해 재수정안을 본회의에 올렸다.

민주당 김동욱 시의원은 “해당 지역구에서 ‘중간에 산이 있어서 산을 오가느라 선거운동을 힘들다’는 불만을 제기했다”며 “이를 수용해 선거구를 조정하기로 합의했다”고 해명했다. 한국당 이상묵 시의원은 “황 시의원이 행정자치위원회 소속이 아니라 사전에 의견 반영이 안 됐다”며 “면적과 인구수를 보니 다른 지역과 인구편차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포공항을 끼고 있는 강서 을 지역구에는 산이 없었으며 수정되면서 인구비례 원칙에 따라 1인 1표의 가치를 평등하게 하는 ‘표의 등가성’ 원칙은 오히려 후퇴했다.

선거구 사이의 유권자 수의 편차가 적을수록 1인당 표의 가치가 동등해진다. 예를 들어 의원 1인당 인구수가 4만명인 A지역과 2만명인 B지역의 1인당 표의 가치는 B지역의 유권자가 A지역보다 2배 높은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인구비례 원칙에 의한 투표가치의 평등은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적이며 일차적인 기준”이라며 “자치구 시·군의회의 선거구획정은 평균인구수로부터 상하 60% 편차를 허용기준으로 삼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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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와 장병완 원내대표 등 참석 의원들이 20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기초광역의원 선거구획정을 규탄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김 대표의 강서 을 지역구의 기초의원 선거구는 2인 선거구인 강서 라(공항동·방화1동·방화2동)·강서 마(가양 1동·방화 3동)·강서 바(등촌 3동·가양 2동)로 획정됐다. 행자위 선거구획정안에서 강서 라(공항동·방화1동·방화2동) 선거구가 3인 선거구에서 2인 선거구로, 강서 마(등촌3동, 가양1동, 가양1동, 방화3동) 3인 선거구가 2인 선거구로 분할됐다.

선거구가 나뉘면서 기초의원 1인당 유권자 수의 편차는 오히려 커졌다. 19명의 기초의원을 뽑는 강서구의 기초의원 1인당 인구수(2017년 8월31일 기준) 3만1709명이다. 행자위 선거구획정안의 강서 라 선거구의 기초의원 1인당 인구수는 3만2669명으로 인구편차(기초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와 차이)는 103%, 강서 마 선거구는 3만5797명으로 112%였다. 그러나 본회의 수정을 거치면서 선출하는 기초의원 수만 1명 줄어든 강서 라 선거구의 인구편차는 155%로 증가했다. 2인 선거구로 쪼갠 강서 마와 바 선거구의 인구편차는 90%, 80%로 줄었다. 본회의에서 선거구획정안이 수정되면서 강서 을 지역구 안에서 기초의원 선거구 인구편차가 9%포인트에서 75%로 확대됐다.

◆“발의 의원에 누가 이름 넣고 싶었겠나”…지역구 의원에 종속되는 광역·기초의원

표의 등가성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본회의에서 수정안을 발의한 것에 대해 한국당 소속 A시의원은 “소속당 후보자의 당선에 유리한 선거구획정을 위해 무리하게 수정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며 “수정안 발의자 이름에 안 올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이름 올린 의원들도 있다”고 토로헀다.

익명을 요구한 B시의원은 “민주당과 한국당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황 시의원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일사천리로 본회에서 재수정한 안을 의결했다”며 “야당의 원내대표 지역구가 아니었다면 이미 양당이 합의한 안을 다시 본회의에서 수정해서 의결하겠냐”고 지적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공천권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에 종속되는 광역의회·기초의회 의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선거구 문제에 이해관계가 얽힌 의회에서 선거구획정안을 수정할 수 없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서울 강서을 지역구 기초의원 선거구 변동

구분 / 선거구 이름 / 선거구 지역 / 선출 의원 수 / 의원 1인당 유권자 수 / 강서구 기초의원 1인당 유권자 수 대비 인구편차

2014년 지방선거 / 강서 마(가양1동, 방화1동, 공항동) / 2명 / 5만2352명 / 156%

2014년 지방선거 / 강서 바(방화2·3동) / 2명 / 2만5121명 / 75%

2014년 지방선거 / 강서 사(등촌1·3동) / 2명 / 2만8683명 / 86%

2014년 지방선거 / 강서 아(염창동, 가양2·3동) / 2명 / 3만7087명 / 111%

서울시 선거구획정위 획정안 / 강서 다(공항동, 방화1·2동) / 3명 / 3만2669명 / 103%

서울시 선거구획정위 획정안 / 강서 라(등촌3동, 가양 1·2동, 방화 3동) / 4명 / 2만6848명 /85%

서울시의회 1차 수정안 / 강서 라(공항동, 방화1·2동) / 3명 / 3만2669명 / 103%

서울시의회 1차 수정안 / 강서 마(등촌3동, 가양1·2동, 방화3동) / 3명 / 3만5797명 / 112%

서울시의회 2차 수정안 / 강서 라(공항동, 방화1동, 방화2동) / 2명 / 4만9004명 / 155%

서울시의회 2차 수정안 / 강서 마(가양 1동, 방화 3동) / 2명 / 2만8468명 / 90%

서울시의회 2차 수정안 / 강서 바(등촌 3동, 가양 2동) / 2명 / 2만5227명 / 80%

자료: 서울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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