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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선생님이 웃으며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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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초등교과서 수록 반응 / 박종철 열사 누나 “젊은 교사들 내용 정확히 몰라…현대사 바꾼 고문치사사건을 농담 비슷하게 강의” / 네티즌 “초등 5∼6학년 충분히 배울 나이”, “초등생이 받을 충격도 고려해야” 엇갈려

“엄마! 외삼촌(고 박종철 열사)이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역사 선생님이 웃으면서 가르쳤어요.”

2019학년도 초등학교 국정 사회교과서 ‘시안’에 1987년 1월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당시 25세)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처음으로 소개돼 학부모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박 열사 가족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일보

지난 1월 14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리 모란공원묘원에서 박 열사 3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박 열사 누나 은숙(57)씨는 25일 “큰 애가 지금 22살인데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인 10년전 쯤 한 번은 집에 돌아와 ‘선생님이 외삼촌 고문치사 사건을 농담처럼 말씀하시더라’며 눈물을 뚝 뚝 흘렸다”고 밝혔다.

은숙씨는 학교에서 싸움이라도 한 줄 알고 자세히 물어보니, “외삼촌 고문치사 사건을 얘기하시던 선생님이 웃으면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말하자 일부 애들은 따라 웃고, 진지한 면이 하나도 없어 너무 속상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어린 아들이 외삼촌의 아픈 과거를 다 알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은숙씨는 이어 “동생이 경찰 수사관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지 만 31년이 지났고 지금 학교에는 젊은 교사, 연세든 교사가 계시는데 40대 중·후반 이후 교사들은 당시의 실제상황을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지만 젊은 교사들은 사실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서 밖에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다”며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경찰이 은폐하고 검찰이 두둔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교과서에서 세세히 충분히 설명한다면, 교사들마저 민주화 과정의 가슴 아픈 역사를 우스꽝스럽게 설명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김세균(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장) 서울대 명예교수가 박 열사 사망 31주기인 지난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돌리라는 포스터를 앞세운 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제공


사단법인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이사 이강원(55)씨도 “우리 세대에는 독립운동 역사가 중요했고, 지금 어린이들 입장에서는 현대사가 중요하다”며 “지금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들어가고 중등과정 분량이 늘어난다면 처절했던 민주화 투쟁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서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네이버에서 아이디 soft****를 쓰는 네티즌은 “근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이 대통령직선제이고, 국민이 처음으로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게 됐는데 그 이유가 바로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었기 때문에 촉발된 거였지... 교과서에 실리는 게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pipe****는 “팩트라고 무조건 가르치는 게 우선인 가. 초등학생들이 받을 충격도 생각을 해야지 ㅉㅉ”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현직 역사교사라고 밝힌 jinw****는 “초등에서는 5. 6학년 때 사회교과서에서 역사를 배우는데 이 나이면 충분히 배울 요소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유태인 학살사건을 더 어린 나이에 학살방법까지 배운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내년도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는 앞으로 각계 의견 수렴과 전문가토론회 등을 통해 수정·보완작업을 거쳐 올해 말까지 최종 확정된다.

세계일보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20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 사랑의 요양병원’에 노환으로 입원 중인 박 열사 부친 박정기(89)씨를 예방, 과거정권의 폭압정치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왼쪽부터 문무일 검찰총장,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박종부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박정식 부산고검장, 누나 박은숙씨)


한편, 박 열사는 1987년 1월 14일 새벽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인근 하숙집 골목에서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 박 열사는 이날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09호실에서 운동권 선배인 박종운씨의 소재를 밝히라는 수사관들에 “행방을 모른다”며 저항하다 물고문 끝에 숨졌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허위조사 결과를 발표해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고 검찰은 이를 두둔, 사건을 은폐하는데 동조한 사실이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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