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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한령 해소 100일···여전한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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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갈등 일단락됐지만 관광업·문화콘텐츠 수출 등 여전히 고전



한한령(限韓令)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한·중 정상회담과 지난 2월 초 열린 한·중 경제장관회의를 계기로 사드(THAD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은 표면적으로 일단락됐지만 한파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가 중국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힌 롯데에 대한 ‘응징’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거센 보복을 견디다 못한 유통공룡 롯데는 결국 중국 롯데마트를 포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야심작이자 창업주 신격호 전 회장의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인 중국 롯데마트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현지 매각을 추진 중인 중국 롯데마트는 벌써 7개월째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만년 적자의 ‘쓴 맛’을 본 롯데는 마지막까지 속을 썩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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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 든 롯데, 매각 진행도 지지부진

물론 중국 롯데마트가 오롯이 사드 보복 때문에 현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철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중국 롯데마트는 롯데그룹의 오래된 ‘골칫거리’였다. 지난해 26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중국 롯데마트는 해마다 1500억원 안팎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에 허덕였다. 중국에서는 점포 수를 늘리는 한국식 ‘외형 키우기’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마트 내 물건 진열방식부터 직원 서비스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현지화에 실패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롯데쇼핑이 중국에서 마트 사업을 털고 나갈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조치가 흔들리던 중국 롯데마트에 치명타를 날린 건 사실이다. 중국 관영매체는 일제히 롯데 불매운동을 부추겼고, 영업정지 명령이 잇따랐다. 중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보복은 중국 롯데마트의 추락을 가속화했다. 전체 99개 점포 가운데 74곳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자, 롯데는 이내 나머지 13개 점포도 문을 닫고 중국 내 마트를 팔겠다고 선언했다. 사드 보복사태 이후 7000억원의 긴급자금을 투입하며 버텼던 롯데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가까스로 영업을 하고 있는 마트의 매출도 작년에 비해 80% 떨어졌다”며 “일괄 매각이든 분리 매각이든 어떤 방식이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상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를 향한 중국의 보복조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롯데가 3조원을 투자해 중국 선양에 짓고 있던 롯데타운 공사는 중단됐고, 마트 영업정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사드 보복으로 롯데그룹이 입은 손실이 2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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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국 게임에 대한 불허 지속

한한령은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관광업계는 여전히 맥을 못추고 있다.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30만512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6만5243명보다 46% 줄었다. 중국 단체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중국 전담 여행사들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당초 161개 중국 전담 여행사들 가운데 한 곳이 전담사업권을 반납했고, 다른 한 곳은 아예 여행사업을 접었다. 베이징(北京)과 산둥(山東)성 등 일부 지역에서 단체여행 상품이 풀렸다고 하지만 실제 여행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한국여행업협회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시장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변한 게 없다”며 “전담 여행사 가운데 40%는 간판만 걸어놓고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커 특수를 기대했던 평창 동계올림픽도 빛을 보지 못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평창올림픽 티켓을 직접 구매한 중국인 관광객은 1만96명으로 집계됐다. 당초 20만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이 올림픽 기간 중 강원도를 찾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관광객은 크게 못 미쳤다. 2만10명이 올림픽 경기장을 다녀간 일본에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중국 관광객 유치에 실패하면서 양양국제공항 역시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고, 준비했던 크루즈 역시 한 편도 띄우지 못했다.

한한령으로 중국 수출길이 막힌 문화콘텐츠 사업도 여전히 올스톱이다. 게임업계는 지난해 3월 이후로 중국으로 게임 수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게임 인·허가) 발급을 하지 않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의 콘텐츠 담당부처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은 지난 2월에도 한국 게임을 허가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등 게임업계도 경제인사절단으로 동행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업계에서는 한한령은 핑계일 뿐 게임 수입을 막는 일련의 조치들이 자국의 게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와 방송, 애니메이션 등 다른 문화콘텐츠 산업분야도 여전히 중국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콘텐츠 쪽에서 중국 수출 재개로 볼 만한 움직임이 없다”며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드를 빌미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특정 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한한령의 ‘횡포’에 맞설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에 한한령은 실체가 없는 유령에 불과하다.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는 한한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련의 보복조치들은 공식문서를 통하지 않고 구두지침으로 전달했다. 마트 영업중지와 한국산 제품 통관 불허는 시설법 위반과 안전규정 미준수 등 조치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남겼다. WTO 제소도 여의치 않다. 한·중 정상회담과 한·중 경제장관회의로 간신히 해빙 모드로 돌려놓은 상황에서 제소는 양국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소를 해도 결론이 나기까지 3년 정도 걸린다”며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두 나라가 화해하려는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나섰다가는 관계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꼬아놓은 매듭을 간신히 풀어놓은 지금 섣불리 강공을 펼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 중인 한·중 FTA 서비스ㆍ투자 후속협상은 놓쳐서는 안될 기회다.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번 FTA 협상을 통해 두 나라 간 교역에 필요한 튼튼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한·중 FTA 후속협상을 다룬 보고서에서 “사드 갈등처럼 우리 기업이 다른 이유로 유사한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자자 보호장치도 시급하다”며 “두 나라 중 한쪽이 요청하면 협의를 의무화하는 협의 메커니즘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반기웅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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