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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가계부채 3종세트 시행-하] 저성장 늪에 빠져 빚만 늘어…상환 능력 떨어지고 경기는 더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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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정부가 지난해부터 줄줄이 내놓은 각종 부동산 대출규제에 이어, 이달 말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까지 시행될 예정이어서 부동산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26일부터 부동산임대업자에게 신규 대출을 내줄 때 RTI를 따져 대출 적정성을 가늠할 예정이다.

RTI는 연간 부동산 임대소득을 연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이자비용에는 임대업 대출 이자는 물론 임대건물의 기존 대출 이자까지 포함한다.

임대소득은 임대차계약서와 감정평가서, 시세 등을 근거로 산출하며 보증금에도 평균 예금금리를 적용해 소득분으로 더한다.

원칙적으로 주택 임대업의 경우 RTI 비율이 1.25배 이상일 때, 비주택 임대업은 1.5배 이상일 때 대출을 내주도록 했다.

다만 은행은 RTI 기준에 미달해도 임대업자에게 다른 사업 소득이 있거나 추후 상환 능력이 인정되는 경우 대출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외 상속에 따른 불가피한 인수나 1억원 이하의 소액 대출, 중도금 대출 등은 RTI 심사에서 빠진다.

부동산 시장은 그간 정부가 내놓은 다주택자 규제로도 이미 돈줄이 말라붙어가는 상황이다.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을 통해 서울 강남 4구와 세종 등 투기지역 내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가구당 한 건으로 제한했다.

서울 14개구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이미 주택담보대출이 1건 있는 차주에게는 DTI를 30%로 엄격하게 적용해왔다.

올해부터는 신(新) DTI를 도입, 다주택자가 추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DTI 산정 만기를 15년으로 제한했다. 실제로 만기 30년짜리 대출이라고 해도 15년 만기로 간주해 원리금 상환액을 계산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LTV와 신DTI 규제 등이 비교적 주택담보대출이 쉬웠던 아파트 매매 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이었다면, 이번 RTI로 이른바 꼬마빌딩이나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 시장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이 같은 대출 규제는 레버리지 규모가 큰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한 상업용 부동산전문 컨설팅 기업에 따르면 일반 개인 투자자들이 그나마 진입할 수 있었던 꼬마빌딩 거래량이 조사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달 서울 내 50억원 미만 초소형 빌딩 거래 건수는 441건으로, 전월(885건)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연간 상업용 부동산 거래금액이 23조5315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이같은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분양시장은 호조세를 띨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가 300만원 이하의 소액 신용대출이나 중도금, 이주비 등 집단대출, 서민금융상품 대출을 받을 때는 DSR를 따지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존 주택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자금줄이 막힌 상황에서 되레 분양시장으로의 쏠림현상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주택시장 진입 어려워져…분양시장 '풍선효과' 나타날 수도

26일부터 개인사업자 대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시행됨에 따라 자영업자들이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은행이 1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에 대해서 자영업자의 소득대비대출비율(LTI)을 살펴보고, 특정 업종을 관리 업종으로 지정해 업종별 한도에 가까워지면 대출 기준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자영업자 대출에 도입되는 LTI는 주택담보대출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비슷한 개념이다.

자영업자의 소득에 견줘 대출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분모의 소득은 자영업자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하되 근로소득과 같은 다른 소득이 있으면 합산한다.

분자의 대출은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과 개인사업자 대출을 더한 금액으로 계산한다.

은행은 26일부터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1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에 대해 대출자의 LTI를 산출해 여신 심사에 참고지표로 활용하기로 했다.

대출 규모가 10억원 이상이면 LTI가 적정한지 따져보고 심사의견을 서류에 남긴다.

당장은 LTI가 높다고 해서 대출을 거절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단, LTI 자료가 축적되면 나중에 대출을 규제하는 관리지표로 사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LTI 지표 운영 현황, 규제의 필요성 등을 봐가며 향후 LTI 비율을 관리지표로 활용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6년 기준 자영업자의 1인당 평균 대출은 3억2000만원, 소득은 4300만원으로 LTI는 약 7.5배로 집계됐다.

은행은 또한 개인사업자 대출에 대해 관리대상 업종을 지정, 업종별 한도를 운영할 예정이다.

대출 규모·증가율 등을 고려해 매년 3개 이상의 관리대상 업종을 선정하고 업종별 한도를 설정하라는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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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업종별 한도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한도에 도달하면 대출 취급 기준을 강화하도록 했다.

사실상 한도 내에서만 대출을 해주라는 뜻이다. 단, 정책자금 지원과 같은 불가피한 경우 예외적으로 한도 이상으로 신규 여신을 취급하도록 했다.

◆시장금리 1%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부담 9조원 증가

최근 국내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확산한 것은 미국 금리 인상이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올해 총 4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국내 금리도 결국 따라오를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이미 1450조원을 돌파한 상태로, 시장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9조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상환 불능자가 속출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장기연체된 소액 부채 6조원을 탕감해 주기로 했지만, 이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만 키울 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DSR, RTI 제도를 새로 시행하기로 했다. 빚 증가를 막으려는 고육지책이지만, 대출만 조인다고 가계 빚 문제가 해소될지는 의문"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치솟는 것은 경제성장률이 빚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왔다. 저성장 늪에 빠져 빚만 늘리니 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경기는 더 추락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질 좋은 성장을 통해 소득을 늘리는 것"이라며 "우리 경제 전망이 암울한 것은 미국 금리인상, 고금리·고유가 등과 같은 악재가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부채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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