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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브랜드 복고시대 "나!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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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꺼진 브랜드도 다시 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시장에서 흔적을 감췄지만, 소비자에게 인지도와 호감도가 있는 브랜드를 되살리는 셈이다. 리브랜딩은 마케팅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인지도를 단숨에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실패 가능성도 높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브랜드 복고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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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초 피처폰 시장을 쥐고 흔들었던 모토로라의 '레이저(RAZR)'가 부활할 전망이다.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이 레이저의 재출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IT전문지 테크레이더에 따르면 양 회장은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Mobile World Congress) 2018'에 기자들과 만나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제품이 곧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해당 제품이 모토로라의 레이저가 맞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난 이미 그 질문에 대답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레이저의 부활을 시사했다. 레이저는 스타택(StarTAC)과 함께 모토로라의 대표 브랜드다. 2004년 출시 후 4년 동안 1억3000만대가 팔려나가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스마트폰 시장에 대응하지 못하고 쇄락의 길을 걸었다. 결국 모토로라는 2012년 구글에 인수된 데 이어 2014년 레노버를 새주인으로 맞았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레이저의 재출시설이 불거질 때마다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레이저는 10여년의 세월을 넘어서 왕좌를 다시 쥘 수 있을까.

# 1990년대 '탱크주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우전자가 12년 만에 돌아왔다. 2006년 대우전자가 최종 파산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름을 다시 꺼낸 건 대유그룹이다. 대유그룹은 2월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하면서 옛 사명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포스코대우(옛 대우인터내셔널)에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동유럽ㆍ중남미 등 해외에서 높은 대우전자의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우전자 관계자는 "브랜드명이 간결해지고, 과거 대우전자를 기억하는 고객이 많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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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 브랜드가 줄소환되고 있다. 옛 브랜드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는 '리브랜딩(Rebranding)'이 활발해지고 있어서다. 리브랜딩에 힘을 쏟은 대표적인 업체는 아모레퍼시픽이다.

아모레퍼시픽은 1988년 출시했던 무자극 화장품 브랜드 '순정'을 지난해 재출시했다. 20여년 만이다. 한자를 떼고 영문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무색ㆍ무향ㆍ무알코올 등 출시 당시 내걸었던 '저자극 화장품'이라는 특징을 살려 민감성 피부케어 제품으로 출시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당시 소비자와 현재 타깃층은 다르지만, 1970년대부터 민감성 화장품을 연구해온 회사의 히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순정의 재출시 이유를 설명했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수십년간 경쟁 관계를 이어온 조선무약의 '솔표' 상표권 250여건을 인수했다. 조선무약은 1925년 창업해 '솔표 우황청심환' '솔표 위청수'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0년대 청심환 시장점유율 1위를 달렸지만 경영 악화로 2016년 최종 파산했다. 이때 인지도가 높은 '솔표' 상표권은 매물로 나왔고 광동제약이 인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광동제약은 지난 5일 액상 소화제 '솔표 위청수 에프'를 재출시했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솔표의 인지도가 높아, 청년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리브랜딩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에 있다.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 드는 비용이 막대한 데다 효율성마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리브랜딩'의 매력을 부각한다는 얘기다. 서용구(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브랜드에 있어서 인지도를 높이는 건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하지만 사람들의 주위를 끄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인지도를 갖춘 브랜드를 다시 내놓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지도 높이는 손쉬운 방법

리브랜딩 성공사례도 많다. 2013년 리브랜딩된 애경의 루나(LUNA)는 2013~2016년 연평균 190% 매출액 성장률을 기록했다. 홈쇼핑 전문 브랜드에서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메이크업 브랜드로 콘셉트를 바꾼 게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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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패션 브랜드 톰보이도 2010년 리브랜딩을 통해 재기의 날개를 폈다. 톰보이는 1977년 설립돼 패션 1세대로 전성기를 구가하다 2010년 부도를 맞았다. 2011년 신세계 인터내셔널에 인수된 이후 리브랜딩에 성공했다. 신세계톰보이는 기존 톰보이가 가진 40여년의 헤리티지는 유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바꿨다.

로고와 콘셉트, 제품라인, 매장, 인테리어를 전면 교체하고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제품 라인도 다섯가지로 확대했다. 그 결과, 신세계톰보이의 매출액은 2011년 259억원에서 2017년 1444억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리브랜딩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많은 브랜드가 리브랜딩을 시도하지만 단명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휴대전화 브랜드 스카이(SKY)는 대표적인 예다. 스카이는 SK텔레텍이 1998년 처음 출시했다. 'It's different'를 외치며 특별함을 강조한 스카이는 SKT에 한해 판매됐음에도 누적 판매 500만대 이상을 기록했다. 일명 '맷돌춤' 광고로 2000년대 초반 인기 절정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5년 팬택에 인수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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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은 10여년 만인 2016년 '스카이 IM-100(아임백)'을 다시 내놨다. 모델명도 스카이의 귀환을 알리는 'I am back'에서 따서 지었다. '맷돌춤' 광고 모델과 음악을 그대로 가져와 향수를 자극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팬택의 목표치인 30만대에 못미치는 13만여대가 팔렸다. 결국 팬택은 스카이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지난해 매각됐다.

리브랜딩 실패작도 부지기수

임왕섭 브랜드 컨설턴트는 "스카이의 실패는 팬택에 인수될 때부터 예정됐던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스카이는 희소성, 특별함과 같은 브랜드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매스 브랜드인 팬택에 인수되면서 고유의 가치를 잃어버렸다"면서 "오히려 프리미엄 전략이나, 프리미엄과 매스 제품을 따로 출시해 투트랙 전략을 썼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브랜딩은 인지도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패 확률도 크다. 브랜드가 가진 가치가 무엇이고 그것을 달라진 시대와 달라진 고객에게 어떻게 적용될지 고민하지 않으면 '리브랜딩'은 독毒이 될 확률이 높다"고 조언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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