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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기고] 가리왕산 활강 경기장을 숲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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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장

서울경제


이번 겨울 지구촌을 스포츠의 열기로 달군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자원봉사자 등 많은 사람의 노력 덕분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올림픽 후 경기장들이 어떻게 복원·관리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올림픽 개최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가리왕산을 경기 후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등에서 거세게 반대했다. 올림픽이 끝난 지금 더 이상의 자연 훼손을 막고 가리왕산의 자생 수종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알파인 경기는 시속 90~140㎞로 활주하는데 가리왕산의 평균 경사각은 29°로 가장 경사가 급한 곳은 40°를 넘는다. 경사가 심한 지역에서 흙 위에 쌓인 눈이 지온에 의해 아래쪽부터 녹게 되면 단단한 눈덩어리가 아래쪽으로 밀리면서 흙이 쓸려 내려갈 수 있다.

또 경기를 위해 눈을 1m 이상 다지고 그 위에 물을 뿌려 단단하게 했다고 한다. 이중 삼중으로 다져진 눈이 일시에 녹아 하부의 오대천으로 유입되면 상수원보호구역이 오염되고 남한강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인근 천연기념물 열목어 서식지의 피해도 우려된다.

더 심각한 것은 여름철에 호우나 장마가 시작되면 활강장 급경사지의 토사 유출이나 산사태 발생 위험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이다. 원래 계획에 없던 리조트 2개동이 경기장 하단부에 지어진 것도 걱정되는 이유다.

복원도 중요하지만 해빙기, 장마철 전에 조치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은 암반 지역으로 원래 식물이 뿌리내리고 살아갈 흙이 부족한 곳이다. 다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흙이 만들어지고 식물이 온전히 들어오기까지 수백 년이 소요될 것이다. 더욱 어려운 조건은 가리왕산이 있는 강원도가 화강암반 지형이라는 것이다. 화강암이 비바람에 부서져 1㎝ 정도의 흙으로 바뀌려면 최소 100여년이 걸린다. 복원 과정에서 흙이 모자라 외부에서 흙을 가져온다면 그 흙에 있던 외래 식물과 교란 식물의 씨앗들이 생태계를 교란·훼손시킬 가능성도 있다.

가리왕산 복원은 조경적 개념보다 산림생태적 복원 관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먼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기반인 흙의 손실을 막고 흙을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를 진단하고 식물을 어떻게 복원 조림하고 가꿔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것인가를 산림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 아래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산림 복원은 나무와 씨앗을 심었다고 자연 생태가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가리왕산 복원은 많은 생명체가 함께 어우러져 살고 미래 세대가 그 숲을 누릴 수 있도록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되돌리는 데 의미가 있다.

눈 녹듯이 짧았던 축제는 끝이 났고 자연을 위한 준비는 이제 시작이다. 국제기구와의 합의보다 제 나라 환경과 국민과의 약속을 더 무겁게 여기라는 한 신문기자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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