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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집 얻느라 또 빚…“결혼요? 아기요? 계획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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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30영수증 ‘벌벌 청춘’

③ 독립하자니 빚이 불었다

학자금 대출로 시작 ‘적자 인생’

주거비 문턱서 빚의 수렁으로

‘살인적’ 집값 홀로 부담 못해

부모집 얹혀사는 ‘캥거루’ 되거나

월세 분담하려 결혼 아닌 동거

대출 다 끌어와도 전세 못 얻어

‘유전결혼 무전미혼’ 현실로





‘취업은 아직 멀었니?’ ‘넌 언제 독립할래?’ ‘결혼은 생각도 안 하니?’

‘헬조선’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 청년들에겐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질문들입니다. 일을 구하는 것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또 평생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요?

<한겨레>는 독립적 경제 주체로 이행하는 시기, 즉 ‘이행기’에 놓여 있는 청년들의 삶을 한 달치 영수증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누구보다 ‘노오력’하지만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들의 영수증에 대해 우리는 쉽게 ‘그뤠-잇’과 ‘스튜-핏’을 외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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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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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이 그러더라고요. ‘요즘 신혼집을 전세로 시작하자고 해도 싫어하는 마당에, 네 애인 정말 대단하다’고….”

올해 말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임상현(가명·35)씨는 신혼생활에 대한 기대감 대신 한숨짓는 날이 더 많다. ‘신혼집’ 걱정 때문이다. “제 형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집은 지금 살고 있는 한달 43만원짜리 투룸 월세 정도가 최선이에요. 결혼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 그럴듯한 신혼집을 마련하자면 결국 대출을 더 받아서 카드빚의 노예가 되는 수밖에 없겠죠.”

임씨가 취업 전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명목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은 1500만원. 2016년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 무기계약직으로 취업한 뒤 조금씩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은 아득하기만 하다. “한달 월급이 180만원인데, 대출금 40만원 상환하고, 월세 내고 나면 생활비 쓰기에도 빠듯해요. 모아둔 돈도 없고요.” 형편 때문에 출산 계획은 남 일이 된 지 오래다. “아이를 갖지 말자는 주의는 아닌데, 언제 낳고, 어떻게 키우고…, 그런 계획은 없어요.”

학자금 대출로 처음 ‘마이너스’ 인생을 시작한 청년들의 다음 관문은 주거와 관련된 대출이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펴낸 ‘이행기청년의 금융지원 모형 개발 연구보고서’(이행기청년 보고서)를 보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청년 136명 중 만 34살 이하가 보유한 평균 대출액(1500만원) 가운데 부동산 구입(437만원), 보증금 마련(397만원) 명목의 대출이 각각 29.1%, 26.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만 24살 이하 청년들은 교육비 대출(441만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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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오래’ 캥거루가 되고 싶어요 ‘살인적인’ 집값 앞에 청년들은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가 된다. 대학원 생활과 비영리단체 활동을 병행하는 정재욱(가명·30)씨는 서른이 될 때까지 단 한번도 독립한 적 없이 부모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정씨가 대학원에서 버는 아르바이트 수입과 한달 월급을 합치면 200만원 남짓. 월세가 들지 않아 ‘남들보다는’ 다행이지만, 정씨 명의로 빌린 학자금 대출이 2000만원이라 부담이 크다. 정씨는 학자금 대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자 간간이 프로젝트 연구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추가 수입이 생기면 학자금 대출부터 갚는다. 하지만 내년 봄 대학원에 복학하면 다시 7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이 늘어날 예정이다. “갚아도 갚아도 빚은 수천만원인데 월급은 간신히 200만원이 될까 말까 해요. 이런 상황에서 독립을 꿈꾸기란 불가능한 것 아닌가요?”

정씨처럼 성인이 되어도 부모 품을 못 벗어나는 한국 청년은 10명 중 6명꼴이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 19차 연도(2016년)’를 보면, 20~34살 성인 청년층의 56.8%(631만명)가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으로 나타났다.

‘캥거루족’이 많은 상황은 한국 청년들이 덜 힘들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우리나라 청년의 다차원적 빈곤 실태와 함의’를 보면, 한국의 청년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견줘 과소 추정되는 이유로 ‘부모와의 동거 비율이 높기 때문’이 꼽힌다. 함께 사는 부모의 소득이 있을 경우 청년의 빈곤과 경제적 무능력은 가구 단위로 측정되는 빈곤율에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실의 청년들은 취업이 힘들고 주거비가 비싸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 의존하고 있는데, 빈곤율은 실제 청년의 경제적 능력보다 과소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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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나 홀로 부담’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거비 부담에 내몰린 청년들은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강원도 춘천에서 자라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 취업한 김소윤(가명·27)씨가 그런 경우다. “춘천에서 서울까지 통근은 도저히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서울 집값이 비싼 걸 알았지만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김씨가 찾은 돌파구는 남자친구와의 동거였다. “저도 남자친구도 다 서울에서 일해요. 각자 집을 구하려면 집값이 두배로 드니까, 제가 먼저 그냥 같이 살자고 했어요.” 서울 송파구에 있는 낡은 투룸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사는 김씨. 남자친구는 보증금 2800만원 가운데 1800만원을 은행에서 빌렸고, 이자로 한달 6만원을 내고 있다. 대신 김씨는 공과금과 식비 등 생활비를 한달에 30만원 정도 부담한다. 김씨가 말했다. “이런 이유로 동거를 택하고 싶진 않았죠 당연히. 그런데 동거가 현실적으로 주거비를 절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거든요. 저 말고도 ‘집’ 문제 때문에 동거하는 사람들 많을걸요?”

청년들의 주거 상태는 보유하고 있는 부채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행기청년 보고서를 보면, 주거에서 독립한 청년들의 부채는 액수도, 질도 캥거루족 청년들보다 나빴다.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과 ‘전월세에 사는 청년’의 부채 총액은 각각 890만원, 895만원으로 비슷했지만, ‘전월세에 사는 청년’의 신용대출과 카드대출을 합한 평균 금액(111만원)은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59만원)보다 두배 가까이 많았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스카(활동명) 상근활동가는 “사회생활 경험이 없거나 부동산 자본이 없는 청년들이 금융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대부업체와 같은 악성 부채”라며 “가장 돈을 필요로 하는 세대가, 금융자원에 접근하기 위해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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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때문에…결혼도 양육도 ‘모르겠어요’ 경기도 성남의 월세방에 거주하는 김서희(가명·30)씨가 13년 만난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이유도 ‘집값’ 때문이다. “대학생 때부터 자취를 했는데, 싼 집만 찾아다니며 월세살이를 한 지도 10년이 넘어요. 셰어하우스, 월세방…, 형편에 맞는 집을 찾아다니느라 이사를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도 주거비 포함해 대출이 2000만원 가까이 있어요.” 민간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씨는 한달에 180만원을 버는데, 이 중 대출금 상환과 월세로만 75만원이 나간다. 올해 안에 남자친구와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김씨는 “맞벌이하는 조건으로 결혼까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출산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2015년 10월에 결혼을 한 송유진(가명·31), 박성현(가명·33)씨 부부도 집 때문에 없던 빚이 생긴 경우다. 서울시 양천구의 전세 빌라를 빌리기 위해 송씨 명의로 전세금의 절반인 7000만원을 빌렸기 때문이다. “대학 때 생긴 학자금 대출은 부모님이 갚아주셨지만 대신 결혼은 제힘으로 해야 했어요. 집을 구하려면 수천만원의 대출을 안 받을 수 없었죠.” 오는 4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는 부부는 1억원이 넘는 대출을 또 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7월에 아이가 태어나거든요. 아기를 생각해서 서울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라도 구하고 싶었는데, 최대 한도로 대출을 받아도 매매는커녕 전세금도 부족하더라고요.”

청년들의 ‘유전결혼 무전미혼’의 경향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16년 펴낸 ‘저출산과 청년 일자리’ 보고서를 보면, 20~30대 남성 노동자에게서 임금 수준과 혼인율 사이 상관관계가 특히 두드러졌다. 2016년 3월 기준 20~30대 남성 노동자 가운데 기혼자 비율은 임금 상위 10%에선 82.5%인 반면 하위 10%는 6.9%에 불과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연구 결과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청년들이 결혼을 못한다는, 즉 임금 수준과 혼인율 사이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자산이 축적되지 않은 가운데 안정적인 소득원인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한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혼과 출산까지 포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엔포(N포)세대’, ‘사회 밖 청년’, ‘이행기 청년’….

이 시대 청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대부분 ‘불안정한 시기’의 의미를 함축한다. 학교에 계속 붙어 있을 순 없지만 취업은 아득하고, 부모님한테 계속 얹혀살 순 없지만 독립은 꿈도 못 꾼다. 결혼과 육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문제는 취업, 결혼 등을 준비하는 ‘불안정한 시기’가 길어지면서 빚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행기 청년이 이용할 수 있는 채무 경감 제도를 만들어 청년의 채무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해 7월 공개한 ‘2017년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15~29살 사이 청년층이 취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꾸준히 늘었다. 첫 취업을 임금근로자로 시작한 경우, 2017년 기준 첫 취업 평균 소요기간은 11.6개월로 2016년보다 0.4개월 증가했다.

취업·독립 등을 준비하는 이행기가 길어질수록 빚도 늘었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공개한 ‘이행기청년 금융지원 모형 개발 연구보고서’(이행기청년 보고서)를 보면, 651만원인 만 24살 이하의 평균 빚은 만 25~29살에서 1011만원으로, 만 30~34살에선 1477만원으로 늘어났다. 학자금 대출로 출발한 빚이, 취업 준비 중 생활비 등으로 늘고, 직장을 잡은 뒤엔 주거 독립을 위해 확장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행기 청년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채 경감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 고금리 대출의 이율을 낮춰주는 ‘대학생·청년 햇살론 전환대출’은 대학생·대학원생과 만 29살 이하 청년만 이용할 수 있고, 고금리 대출을 시중은행의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도 급여소득자나 자영업자가 지원 대상이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스카 활동가는 “청년들이 부채를 탕감하는 제도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생·청년 햇살론 전환대출이나 바꿔드림론의 지원 대상을 늘리고, 학자금대출 이자 지원도 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카 활동가는 “청년들이 부채를 갖게 된 것은 청년 개인이 잘못해서 생긴 결과가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고비용 구조를 저비용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펴낸 ‘이행기청년 보고서’는 “이행기에 놓여 있는 청년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안착하려면 등록금과 주거비를 낮추고 저소득으로 인한 근로빈곤을 해소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영섭 내지갑연구소 소장은 “대부분의 서민금융 지원 정책이 대학생, 노동자, 자영업자로 구분하여 설계되어 있고, 청년의 이행기가 길어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구직자, 프리랜서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이행기 청년들을 위한 지원 정책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하준태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기획실장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취업준비 기간을 버틸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그 기간이 길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서울시 청년수당처럼 ‘이행기’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안전망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영 황금비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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