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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같은 조직 상하관계 아니면 미투 아니다? #미투에 대한 편견 5가지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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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친절한 기자들]

“피해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수록 폭로 줄어들 것”

“남성 내부 권력구조의 문제도 함께 제기할 수 있어야”


한겨레

그래픽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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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겪은 성폭력 경험을 용기 내 폭로하는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이어지면서, 이와 동시에 피해자들을 비난하거나 ‘미투’ 운동 그 자체를 폄훼하는 등의 발언도 함께 확산하고 있다. ‘더(the) 친절한 기자들’은 ‘미투’를 둘러싼 편견 5가지를 정리하고, <한겨레>와 <한겨레21> 기사 등을 통해 쟁점을 다시 짚어봤다.

■ ‘미투’는 남성 혐오다?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바라본다거나 ‘남성혐오’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미투’는 단순히 남성 개인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됐다기보단 한국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돼 온 강간문화, 가부장적인 구조가 만들어낸 ‘잘못된 남성성’을 바꿔나가는 흐름으로 봐야한다.

한겨레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정용일 기자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는 <한겨레21> 대담에서 “지금 문제는 특정 남성들이 그렇게 된 게 아니란 거다. 한국 사회는 ‘강간 문화’를 사회적으로 묵인해왔다”고 짚었다. (▶관련기사 : “가공된 인격이 괴물 낳아”)



“이윤택 연출가도 밑에서 굉장히 많은 여성이 그걸 받쳐줬다. 남성 문화가 만든 게 아니고 남성들끼리만 만든 것도 아니다. 여성도 적극 가담했다. 이게 바로 성폭력을 묵인해온 문화다. 특정한 남성만 괴물이 되는 게 아니라 괴물들 사이에서 괴물이 아닌 소수가 살고 있단 느낌도 든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을 얘기하면 ‘그건 구조다, 가부장적 질서가 있어서 어쩔 수 없던 측면이 있다’ 이렇게 얘기해왔다. 막상 미투 운동이 시작되니까 일각에선 ‘우리나라에 그동안 없었던 걸 수입해 시끄럽게 한다’고 한다. 그게 바로 묵인된 강간 문화다.”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작가 손아람 씨는 ‘어떤 여자와 잤느냐’가 영웅담이나 무용담이 되는 문화를 꼬집었다. 손씨는 “이런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선 더 심한 농담이나 더 심한 악의를 행사해야 한다. 한국 남자들은 다들 익숙하다”고 했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박권일 씨도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여성을 동등한 존재라고 아예 생각하지 않아왔으니까 당연히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한국 사회의 남성 문화에는 리더 노릇 하는 사람이 늘 있다. 모든 집단이 위계에 익숙하다. 집단에서 가장 낮은 이는 언제나 여성 역할이다. 남성 집단에 서툴고 그래서 민폐를 끼치고, 약한 존재를 ‘이년아, 저년아’라고 여성화해서 부르는 것은 단적이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박권일





”남성들 사이에서 능력을 인정하는 기준에 ‘소유’가 있다. 부모가 재산이 많다고 바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기 노력으로 성취한 능력은 바로 인정한다. 차를 사거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것들. 여성도 그 대상인 것 같다. 소유물이다. 어떤 여자를 소유했다는 걸 또래 집단이 권력으로 인정해주는 거다.”

-작가 손아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우리는 민감을 탄압하고 둔감을 예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투 열풍도 바로 그런 풍토가 조성해온 ‘둔감한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짚었다. (▶관련기사 : [강준만 칼럼] ‘민감’이 죄인가?)



“정의에 대해 민감한 것이 죄인가? 하긴 우린 때론 그런 민감성이 죄인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 익숙해져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정의에 대해 민감한 사람마저 이른바 ‘프로불편러’의 범주에 넣으려고 안달한다. 민감한 사람의 모든 행동이 다 바람직하거나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민감보다는 둔감을 높게 평가하면서 둔감을 사실상 ‘대범’이나 ‘포용’으로 착각해온 그간의 관행을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성폭력을 하지 않았다. 성폭력범은 나쁜 사람이다’ 보통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일부에선) ‘이건 남성에 대한 공격이야’ 이렇게 말을 한다”며 “(성폭력이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피해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걸 통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어야되는지 (그 고민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런 폭로가 (오히려)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피해자들이 지금까지 제기했던 성폭력에 대해 법과 제도가 일관되게 수사하고 처벌하는 일이 반복됐더라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왜 남성들을 공격하냐’고 성별 구도로만 받아들이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한겨레

안희정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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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조직 내 상하관계가 아니면 미투가 아니다?

일각에선 “‘미투’가 권력형 성폭력을 의미한다”고 규정하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같은 직장 상사나 교수처럼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 않을 땐 “미투가 아니지 않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이는 이미 존재하는 성별 권력관계를 함께 보지 못한 결과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미투운동의 사회적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서 “성별(gender) 자체가 권력관계를 내장하고 있다”며 “남성 지배사회에서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직장 내 상하관계가 아니더라도, 넓게 보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불평등이 이미 존재하고, ‘남성’이란 성 자체가 사회 내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등한 지위에서 이분법적으로 ‘적절히’ 배분된 역할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은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며 새로운 권력관계를 생성하는 원인입니다. 남성(성)만 인간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여성(성)은 열등한 것, 부차적인 것, 성적인 것, 심지어 ‘낮은 사회적 지위’ 자체를 의미합니다. 중학교 남학생이 여성 교사를, 남성 환자가 여성 의사를 성희롱할 수 있는 이유이지요. 물론 그 남성과 여성은 성별 질서 뿐만 아니라 계급, 인종, 성적 정체성, 장애여부 등 다양한 차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성별권력 관계에서 파생하지만, 다른 차별구조와 교차해 더 심화되거나 약화되기도 합니다. ‘성폭력은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조직 및 집단 간 차이와 특수성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나영 교수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성폭력에 대해서도) 일종의 ‘맨스플레인’(man+explain의 합성어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가르치려 드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를 구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보기에 ‘진짜 피해자’같지 않으면 ‘맨스플레인’이나 ‘펜스룰’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왜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전혀 조직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력 폭로) 이야기를 하는지 공감하지 않고, 공감할 필요가 없고, 언짢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남성들이 성별 권력관계에서 강자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3.8 세계 여성의 날’을 나흘 앞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행사장에 곳곳에 미투(Me too) 문구가 적힌 게시물이 놓여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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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이 아니면, 익명으로 폭로하면 미투가 아니다?

폭로 방법에 따라, 또는 성폭력 범죄의 양상에 따라 가해 지목자나 제3자가 ‘미투’에 포함될 자격이 있는지 규정하는 일도 벌어진다. 익명으로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경우 “믿을 수 없다”며 피해자들의 신분을 공개하길 요구하거나, 강간이 아닌 성추행·성희롱을 폭로할 땐 “미투 급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극적인 피해 사례만 좇는 경우다. 성폭력 경험을 털어놓기 어려운 사회를 지적하기보다 “왜 이제서야 폭로하냐”며 피해자를 다그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한겨레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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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에 동참했던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피해 사실을 밝히는 일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성폭력의 정도를 나누는 시선을 꼬집었다. 그는 “미투 방식을 누가, 언제 법적으로 정해서 내게 강요할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이 의원은 또 “(나는) 13년 전 일도 잊히지 않는다”며 “(성폭행 피해는) 시간이 지나도 딱지가 생기거나 내성이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관련기사 : “서 검사 마음이 지금 내 마음”)



“페북에 서 검사에게 연대 의사를 표시하고 나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고 적었다. 그런데 기자가 ‘미투는 구체적으로 사례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미투 방식을 누가, 언제 법적으로 정해서 내게 강요할 수 있나. 페북 글을 쓴 이후 계속 ‘언제 누가 그랬냐’는 것만 질문할 것 같았다.”

“‘피해가 어마어마한가’라는 질문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심각하게 당했냐”고도 묻더라. 심각하고 심각하지 않은 게 어디 있나. 사람들은 성추행에도 용인할 수 있는 수치가 있다고 본다. 사회생활 하는 여성이면, 그 자리에 동석했으면, 그 분위기를 함께 즐겼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심각성을 드러내야 내 얘기에 더 호응하고 사안의 문제점을 인식하겠다는 얘기인가.”

“내 피해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얘기를 삼간 적은 없다. 이 사건 이전부터 동료 국회의원들한테 여러 번 얘기했다. 다만 이걸 공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은 다르다. 나도 모르게 피해자성이 나를 더 지배하는 것을 인식하고 나도 놀랐다. 누군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 못할 건 없지만 100% 확신한다. 가해자를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나는 그 과정에 갇힐 것이다.”

-이재정 의원

김혜정 부소장은 “‘미투’ 이전에도 성폭력은 법에서 금지돼 있는 행위였는데, 그 때도 피해자들은 ‘피해자답지 않다’는 판단을 받으면서 법과 제도를 통해 구제받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미투’라는 형태로 폭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며 “또 ‘이건 진정한 미투가 아니야’라며 개별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자의적인) 기준을 만들면 (피해자들은)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 미투는 MB와 삼성을 가리려는 공작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공작’ 발언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김 총수는 지난달 24일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을 가리켜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를 분열시킬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9일에는 또 “제가 공작을 경고했는데 그 이유는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며 “안희정에 이어 봉도사(정봉주 전 의원)까지, 이명박 각하가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고도 했다.

한겨레

손아람 작가. 정용일 기자


손아람 작가는 <한겨레21> 대담에서 이같은 발언에 대해 “정말 화나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성추문을 덮기 위해 삼성을 터뜨린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며 “그런 말을 듣는 여성이나 피해자들이 어떨지 공감능력이라고는 없는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관련기사 : “가공된 인격이 괴물 낳아”)



“정치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이 가족과 치정 관계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란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두 문제는 누구나 갖고 있단 얘기다. 이를 뒤집으려면 음모가 된다. 그 룰을 누군가 깨려고 한다. ‘피해자를 동원해서 이 원칙을 깨려는 세력이 있다’는 말을 통해 피해자가 소거되고, 여성들이 겪어온 아픔과 문제들이 다 사라진다. 그거야말로 공작이다.”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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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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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미투 공작설’을 강하게 비판하며 “피해자나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 “진보 분열이 ‘미투’ 탓인가”)



“만약 진보 진영이 이 일로 타격 입게 되면 그건 ‘만진 놈’의 잘못이다. 진보든 보수든 그 사람들(가해자)이 속한 집단은 타격을 입을 거다. 김 총수의 발언은 미투로 고백하는 건 좋지만 이걸로 우리가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거다. 어떻게 안 흐트러지나. 분열은 안 된다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강요하는 거다. (김 총수의 발언은) 바꿔 말하면, 만약 분열되면 그 원인은 미투 운동이란 거다. 잘못된 말이다.”

-금태섭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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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박권일. 정용일 기자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박권일 역시 <한겨레> 칼럼을 통해 김 총수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문제는 그 (김어준씨의 공작설) 여파로 ‘미투’ 고발자들이 모욕감을 느끼거나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했고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씨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라며 “이 모든 상황들이 강간 문화라는 문제에 있어 굉장히 나쁜 신호”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나쁜 신호)



“이 상황들은 ‘착각’을 유발할 수 있다. ‘아하, 김어준 정도 발언은 괜찮구나’라는 착각, ‘사과만 하면 공직도 계속할 수 있네’라는 착각. 더 고약한 착각은 따로 있다. “‘거악과 싸워온 전사’들이니 ‘사소한’ 흠결은 눈감아줘야지.” 이것은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며 개혁당 성폭력 사건을 조개나 줍는 부차적인 일로 만들어버린 유시민씨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저런 착각은 ‘국가 경제에 기여했으니 재벌 회장님들 비리에 관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기 쉽다. 착각은 깨져야 하고, 나쁜 신호는 꺼져야 한다. 옳음에는 피아(彼我)가 없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한겨레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 및 정부 대책 마련 촉구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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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에 대응하는 방법은 펜스룰 뿐이다?

“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단 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원칙, 일명 ‘펜스룰’이 ‘미투 운동’의 대응법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이러한 교류의 단절이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세상 읽기] 펜스룰이 대안이라고?/홍성수)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역시 “직장 내 고위직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은 상황에서 여성을 배제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번 일을 정말 해결하고 싶다면 여성을 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여성을 이끌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성적 학대를 그만두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며 “경험 많은 직장 내 리더들과 소통할 기회는 남녀에게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조직의 상층부를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과의 개별적·비공식적 교류가 차단되면,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여성들에게 불리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출장 같은 공식 업무에서 여성이 부당하게 배제되거나 채용·승진에서 탈락한다면 그건 아예 불법적 차별이다. 이것이 미투운동이나 반성희롱·반성폭력 운동이 지향하는 ‘성평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홍성수 교수

‘펜스룰’을 반증하는 사례도 있다. <쿼츠>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지위에서, 공통의 목표를 갖고 함께 일할 때 성별 간 장벽이 무너지고 편견이 사라진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관련기사: A Norwegian experiment proves there’s one surefire way to change men’s ideas about gender)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젠더 통합이 사고방식을 바꿀까?’란 제목으로 지난 2월 발표한 이 연구는 2014년 노르웨이 군대에서 실시한 실험을 토대로 한다. 당시 연구진은 노르웨이 군 훈련소에서 153개 분대 중 57개 분대를 남녀 혼성으로 구성해 8주 동안 훈련을 함께 받도록 했다. 그러자 입소 전보다 남성 군인들의 성평등 의식이 훨씬 향상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남성 군인들에게 훈련 전후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남성과 여성이 함께 팀일 때 결과가 더 좋다’는 답변이 입소 전(63%)보다 14%p 늘었고, ‘남성과 여성은 가정 일을 균등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답변은 66%에서 74%로, ‘나는 여성스러운(feminine) 면이 있다’는 답변은 58%에서 72%로 늘어났다.”

연구진은 “입소 뒤 남성과 여성 간 성평등에 대한 의식 격차가 크게 줄었다. 이는 혼성 그룹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지위와 목적을 부여하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릴 수 있음을 알려준다”며 “여성과 함께하는 환경에 있는 남성들은 여성이 팀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면을 직접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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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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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화 책임연구원은 “과거 노예나 흑인,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혁명을 했듯이 ‘미투’ 역시 임계치를 넘어선 약자들의 저항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를 희화화하면서 ‘여자들이랑 밥도 먹지 말자’고 하기 보다 강남역 살인사건, 아니 그 이전부터 태동한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여성들의) 몸부림이 반영된 진지한 움직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정 부소장은 “남성 내부에도 권력구조가 존재한다. 그 구조 속에서 겪은 문제를 함께 제기하고 바꿔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가 나온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미투’는 현재진행형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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