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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IF] 건축박사 개미에게 배우는 로봇들… 단순 명령만으로도 에펠탑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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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온 세상이 미세한 발걸음 소리로 가득 찬다. 지구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동물인 개미들이 일제히 굴 밖으로 나와 먹이를 찾는 소리다. 미국 워싱턴 자연사박물관의 테드 슐츠 박사는 지구 표면에 있는 생명체의 무게를 다 합친 것의 약 5분의 1이 개미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1억년 이상 지구 생활을 견뎌온 개미에게서 군집(群集) 로봇의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개미가 자신들의 몸을 이어 다리와 탑, 뗏목을 짓는 원리를 알아내면 단순한 지능을 가진 로봇들로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개미의 건축학 개론은 무엇일까.

◇다리에 투입된 개미 20% 이내로 유지

군대개미는 일정한 거주지가 없다.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한다. 나뭇가지를 기어가다가 막다른 곳에 이르면 서로의 몸을 이어 다른 나뭇가지로 다리를 놓는다. 뒤에 오는 개미들은 동료들의 몸으로 만든 다리를 밟고 건너간다. 미국 뉴저지 공대의 시몬 가니에 교수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이론 생물학 저널'에 군대개미가 다리를 만드는 원리를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제1 원칙은 '다른 개미가 등을 밟으면 그 자리에 멈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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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든 개미들. 동료가 등을 밟고 올라서면 멈추고, 등에 주어지는 힘이 줄어들면 다시 움직이는 단순 원리로 최적의 다리를 만든다. /Quanta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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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개미는 초속 12㎝의 속도로 행군한다. 1초에 몸길이의 10배 이상을 가는 셈이다. 키 170㎝ 성인으로 치면 100m를 6초도 안 돼 주파하는 엄청난 속도이다. 길이 끊어진 곳에 이르면 맨 앞의 개미는 멈춘다. 뒤따라오는 개미는 오던 속도가 있어 앞의 동료를 밟고 올라선다. 다음에 맨 앞에 선 개미도 역시 멈추고 다시 그 위로 동료가 올라서면서 점점 다리가 길어진다.

가니에 교수 연구진은 군대개미가 한 번 행군에 40~50개 정도의 다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리 하나 만드는 데 평균 50마리 정도의 개미가 필요했다. 이렇게 따져보면 한 군집의 20%가 늘 다리에 몸이 묶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미가 행군을 하는 목적은 먹이다. 다리에 묶인 개미가 많을수록 먹이를 구할 개미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두 번째 교량 원칙이 나온다. 바로 '등이 가벼우면 다리에서 벗어나라'였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 개미들은 자기 등을 밟고 지나가는 동료가 평소보다 줄어들면 바로 정지 동작에서 벗어나 다리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니에 교수는 "등이 가볍다는 것은 다리를 만드는 개미가 늘어나면서 정작 다리를 지나가 먹이를 구하는 개미들은 줄어든다는 의미"며 "등에 가해지는 무게를 기준으로 다리에 들어가는 개미가 전체의 20%를 넘지 않도록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개미 에펠탑

개미들은 나뭇가지를 타고 수직으로도 이동한다. 밑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게 꼭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닮았다. 미국 조지아 공대의 데이비드 후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7월 '영국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에 불개미 군집이 만든 에펠탑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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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개미의 탑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재생된다. X선으로 촬영하면 중심부에서는 개미들이 계속 밑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왼쪽). 개미들은 탑 바닥에서 굴 같은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오른쪽). /미 조지아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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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불개미의 탑을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다가 우연히 표면이 흐릿하게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뭔가 계속 이동한다는 뜻이었다.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일부 개미에게 방사성 물질이 든 먹이를 주고 X선으로 촬영했다. 그러자 사선 방향으로 개미들이 계속 올라가고 수직 방향으로는 하강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수직으로 내려온 개미들은 굴과 같은 통로를 통해 탑 밖으로 벗어났다. 후 교수는 "개미의 탑은 사람의 피부처럼 계속 새로운 개미들로 표면이 교체됐다"고 설명했다.

개미들은 언제 탑을 오르거나 내려갈까. 개미는 자신 몸무게의 750배까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탑에서 개미가 지탱하는 최적의 무게는 동료 3마리 분이었다. 그보다 무거워지면 동료와의 연결을 끊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빈 자리는 다시 다른 개미가 채운다. 이를 통해 가장 안정된 탑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방수개미의 공기방울로 뗏목 유지

불개미가 홍수를 만나면 자신들의 몸으로 뗏목을 짓는다. 여왕개미와 애벌레, 알들을 뗏목 가운데 빈 공간에 안전하게 보호한다. 후 교수는 2011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불개미의 뗏목이 수 주일씩 군집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원리를 밝혀냈다. 비결은 바로 방수(防水) 기능이었다.

개미의 몸 일부는 물을 밀어내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가슴 쪽에 공기 방울이 만들어졌다. 공기 방울들이 모여 뗏목을 이루면 10만 마리가 연결돼도 가라앉지 않았다. 반면 물비누를 뿌리면 바로 무너졌다. 비누는 표면장력을 줄여 개미의 몸 주변에 공기 방울이 생기지 못하게 한다.

개미의 건축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논문 발표 후 로봇공학자들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고 밝혔다. 개미 대신 초소형 로봇으로 탑과 다리, 뗏목을 만든다면 복잡한 계산 없이도 최적의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버드대 연구진은 흰개미가 집을 지을 때 흙이 이미 쌓여있으면 바로 옆에 흙은 내려놓는다는 단순 원리를 모방해 담을 쌓는 로봇을 개발했다. 개미처럼 '옆 로봇과 닿으면 멈춘다'는 식의 간단한 원칙 몇 가지로 1000대가 넘는 초소형 로봇들이 매스게임 하듯 알파벳 모양대로 정렬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하늘에 선보인 드론(무인기)의 군무(群舞)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됐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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