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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땡땡이 치고 야구장 간 소녀, KBO 얼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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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 첫 여성 홍보팀장 남정연

“선수·경기 기록 뭐든 물어보세요”

금녀 구역 더그아웃 이젠 편히 누벼

중앙일보

2001년 KBO에 입사한 남정연씨는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첫 여성 홍보팀장이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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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 그 절반은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필드에서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프로야구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 가운데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첫 여성 홍보팀장이 나왔다. 2001년 KBO에 입사해 18년 차가 된 남정연(41)씨다.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의 첫 여성 홍보팀장이다.

남정연 팀장은 KBO 입사 이래 기획·운영·홍보팀을 거쳤다. 그중 홍보팀에서만 16년간 일했다. 지난달 팀장이 된 그를 지난주(14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만났다. 남 팀장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프로스포츠 첫 여성 홍보팀장인데, 잘해서 다른 종목에서도 여성 홍보팀장이 나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야구는 감독·코치·선수 모두 남자다. 그래서일까. 1982년 프로야구 출범에 맞춰 발족한 KBO도 대다수 직원이 남성이다. 남정연 팀장이 입사한 2001년 당시, 직원 25명 중 여성은 4명이었다. 현재는 직원 40여명 중 8명이 여성이다. KBO에 가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한 건 삼성 라이온즈 열혈 팬인 아버지다. 남 팀장은 “어릴 때 TV 채널 선택권을 가진 아버지가 프로야구 중계만 보는 게 불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프로야구 중계만 보고 있었다”며 웃었다. 고등학교 땐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잠실야구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당시 좋아했던 선수는 LG 트윈스 포수 김동수(50)다. 남 팀장은 “도루를 막고 포수 마스크를 벗은 모습에 반했다. (KBO) 입사 후 현장에서 만났는데 떨렸다”고 말했다.

KBO에 입사하고도 현장에서 감독·선수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남정연 팀장은 “15년 전만 해도 더그아웃이나 라커룸 근처는 ‘금녀의 구역’이었다. ‘여자가 들어오면 재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더그아웃 앞에 서 있다가 구장 관리인에게 혼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00년대 후반 야구장에 여자 아나운서가 등장하면서 차별의 벽이 무너졌다. 남 팀장도 요즘은 편하게 현장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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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연 KBO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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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주로 남자 직원들이 담당하면서, 남정연 팀장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바로 기록 찾기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최다 홈런, 최소 실점 등 기록은 그 자체로 야구의 역사다. 누구나 “(프로야구) 기록이 궁금하면 남 팀장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는 “기자들은 뭐든 홍보팀에 물어본다. 대답하기 위해 기록을 찾고 공부했다. 온종일 서고에서 기록지를 뒤져 의미 있는 기록을 찾아내곤 했다”고 전했다. 지금은 모든 기록이 데이터베이스(DB)화돼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도 그는 가끔 서고 문을 연다.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인 셈이다.

프로야구 경기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열린다. KBO 직원들은 일반 직장인과 일상이 다르다. 그래서 여자 직원은 대부분 결혼하면서 퇴사했다. 미혼인 남정연 팀장은 “한창 일할 시기인데,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젠 KBO 최초의 정년퇴직(만 60세) 여직원을 꿈꾼다”며 웃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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